유교에 뿌리는 둔 과거 조선 사회는 남녀 차별이 심했습니다.
여자에게는 책을 읽거나 글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고,
남자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분리되어 주로 안채에서만 생활했으며,
함부로 밖에 다닐 수 없었고, 나갈 때는 꼭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당시 조선에 온 미국선교사 스크랜턴은 여성들을 위한 여의사와 여성 전용병원이 필요함을 느끼고
감리교 여성해외선교부에 여성병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1887년 10월 여의사 하워드가 한국에 도착했고,
이화학당에 한국 최초의 보구녀관이라는 여성 전용병원이 생겼습니다.
하워드는 한국에 와서 2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최선을 다해 고통당하는 여성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다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서 본국으로 떠났고, 그의 뒤를 이어서 셔우드 선교사가 왔습니다.
셔우드도 최선을 다해서 한국 여성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어느 날 열여섯 살의 소녀가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화상으로 손가락 3개가 손바닥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화상 때문에 소녀는 시집을 갈 수 없었습니다.
셔우드는 소녀의 손가락을 손바닥에서 떼어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하지만 손에는 심한 흉터가 남게 되었습니다.
셔우드는 피부 이식 수술로 소녀의 피부를 떼어 소녀의 피부에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와 가족들은 자신의 몸에서 피부를 떼어내는 것을 반대했고,
피부 이식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셔우드와 다른 여선교사들은 이 소녀를 위하여 자신들의 피부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을 본 다른 한국인들도 피부를 제공했습니다.
그제서야 소녀도 자신의 피부를 떼내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모두 30여개의 피부 이식수술을 했고 결국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셔우드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 여자에게 자신의 피부까지 떼어준 여자’로 알려졌고
이것이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후 셔우드는 같은 의료선교사인 홀과 결혼하여 평생 한국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술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척박한 조선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고,
온갖 비난과 핍박에도 자신의 피부까지 떼어 줄 정도로 헌신한 여러 선교사님들의
노고로 우리나라는 해외선교사 파송 제2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님들은 생명까지도 위험 했던 당시
조선 땅에 편안함을 버리고 무엇을 위해 왔을까요?
바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좋은글
첫댓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신 주님 닮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