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소개
<가족 게임>(1983), <실락원>(1997) 등을 연출한 모리타 요시미츠(1950. 1. 25 ~ 2011. 12. 20)는 일본 사회의 생생한 단면과 인간의 욕망을 다양한 장르 속에 그려낸 중요한 감독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월 15일(금)부터 24일(일)까지 모리타 요시미츠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합니다. 멜로, 코미디, 호러 등 서로 다른 장르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당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날카롭게 직시했던 모리타 요시미츠의 세계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970년대 말부터 영화 연출을 시작해 병으로 세상을 떠난 2011년까지 이십여 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모리타 요시미츠는 다채로운 개성의 여러 영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회의 뒤틀린 면과 그 안에서 더욱 강하게 분출되는 인간의 욕망을 선명하게 그려낸 점입니다. 모리타 요시미츠의 주인공은 어떤 환경, 어떤 조건 속에서도 기존의 경직된 사회와 불화를 일으켰으며, 그안에서 비록 꺾이고 상처 받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해서 되물으며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모리타 감독은 그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따뜻하게, 때로는 기괴하게 묘사하며 시대의 단면을 생생하게 포착하였습니다. 전통 가치의 붕괴를 폭로한 <가족 게임>, 90년대 젊은이들의 내면을 묘사한 <하루>, 일본의 현대사를 유쾌한 태도로 되돌아보는 <남쪽으로 튀어> 등 이번에 상영하는 여덟 편의 영화들은 모리타 요시미츠가 영화의 눈으로 세계를 어떻게 재현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작들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모리타 요시미츠의 영화를 리메이크하거나 같은 원작을 공유한 작품이 많아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화제 기간에는 특별히 모리타 요시미츠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 온 미사와 가즈코(三沢和子) 프로듀서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배우자이기도 한 모리타 감독에 관한 기억과 영화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이번 회고전을 통해 모리타 요시미츠를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생애(클릭)
모리타 요시미츠의 영화 인생
미사와 가즈코 (三沢和子 / 프로듀서)
모리타 요시미츠가 극장용 영화로 데뷔한 건 1981년. 당시는 대부분의 감독이 조감독 출신들이었다. 모리타는 자주영화(*自主映画 - 자체제작 영화, 인디 무비, 오더 시네마, 인디펜던트 영화 등으로 불리는, 상업 영화가 아닌 영화)계에서는 알려진 편이었지만, 상업 영화계에서의 러브콜은 있을 리 만무했다. 8mm 영화 <라이브 인 치가사키>가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 가타오카 요시오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세의 가도카와 하루키와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책임 프로듀서였던 하라 마사토에게 보여 주었고, 그걸 본 가도카와가 “번뜩이는 게 있긴 한데 이런 8mm로 뭘 알 수 있겠나. 35mm로 갖고 오라.”며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런데 모리타 요시미츠는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정말로 돈을 빌려 데뷔작 <비슷한 것들>을 만들었다. 모리타는 그냥 무모한 정도가 아니라, 돈을 빌려서 제작비를 마련해도 배급이 정해질 때까지는 절대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개봉되자마자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고, <비슷한 것들>과 모리타 요시미츠의 등장이 일본 영화계에 준 충격은 지금까지도 그에 버금가는 작품이 없다고 일컬어질 정도다.
이듬해, 아이돌 영화, 로망 포르노 2편, ATG(*Art Theater Guild의 약자. 1961년부터 80년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영화사) 영화 <가족 게임>의 의뢰가 연이어 들어왔고, ATG는 촬영이 시작되는 1년 후까지 다른 작업을 하지 않도록 요구했지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이유로 3편을 전부 만들기로 한다. 이 중에서 로망 포르노 2편을 만들면서 닛카츠 촬영소의 시스템에서 배운 것들은 모리타가 자주영화계 출신임에도 훗날 일본 영화계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세트장 촬영 경험이 <가족 게임>의 완성도를 높인 것도 사실이다. <가족 게임>은 1983년 일본 영화계의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고, 뉴욕에서도 공개되어 화제를 일으키며 모리타는 시대의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지금은 가장 인기작이 된 <두근두근하게 죽는다>(1984)는 <가족 게임>만큼 평단의 이해를 받지 못했다. 이후의 모리타가 “시대를 너무 앞질렀다!”고 평가 받았던 작품들 중 하나다. 곧이어 당시 젊은 감독의 등용문이라 불리었던 가도카와 영화사에서 <메인 테마>(1984)를 제작하여 크게 히트했고, 이듬해에는 <가족 게임>에 이어 다시 배우 마쓰다 유사쿠와 함께 협업한 나츠메 소세키 원작의 <소레카라(그 후)>(1985)를 발표(칸영화제 감독주간 상영)하고 다시 한 번 각종 상을 휩쓸며 감독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모리타는 미디어의 ‘젊은 거장’이라는 호칭에 만족하지 않고 그동안 쌓아올린 신용과 명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듯, 문제작 <이기적인 사람(そろばんずく)>(1986)을 발표하여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이후 버블 경제기의 분위기를 반영한 <사랑과 헤이세이의 색남>(1989)과, 같은 해에 마치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견한 듯한, 인간의 고독과 미니멀 라이프를 그린 <키친>(1989)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를 소유하지 않았던 시대에 발표한 작품으로 주인공들이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만나는 <하루>, 그 직후에 만든 <실락원>, 유사한 소재를 다룬 <39 형법 제39조>(1998)를 만든 후에 나온 완전히 정반대의 느낌인 영화 <검은 집>(1999)으로 이어진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영화감독 인생에서 스스로 쌓아올린 실적이라는 껍질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구축하는 것,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그때 그때의 사회에 부족하다고 느낀 것,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 여긴 것, 그리고 늘 “인간” 그 자체를 영화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권위 있는 조직이나 사람에게 결코 비위를 맞추거나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스태프와 관계자라면 아랫사람에게도 평등하게 대하는 표리일체의 인품은 영화사나 촬영소에서 늘 환대를 받았다. 덕분에 도호, 도에이, 쇼치쿠, 가도카와, 닛카츠, 아스믹 에이스 외에도 주요 제작사의 영화를 평생 끊이지 않고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 때 모리타는, ‘영화는 가장 위에 있는 사람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 선전이나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고 모두가 자신의 베스트를 끌어낸다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늘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화를 내거나 큰소리 치는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로케 당일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트러블이 발생해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역발상으로 영화에 이용했다. (예를 들면, <검은 집> 촬영 당시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유리창 한 장이 깨지고 촬영이 중지될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공포의 전조로 그 장면을 그대로 사용했다). 어느 차량 스태프의 일화. “우리 이름을 기억해 주고 말을 걸어준 유일한 감독입니다.”
자주영화를 찍던 시절, 모리타는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내야 했기에 편집과 더빙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이미 편집을 계산하며 촬영한 덕분에 불필요한 컷은 찍지 않았다. 실제 현장은 대체로 한 번으로 끝냈다. 두 번째부터는 카메라 없이 드라이 리허설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최적인 타이밍에 촬영에 들어가는 것. 모리타는 감독이 되기 전, 잠시 영화관에서 일한 적이 있기에 영화에 대한 평판이 좋아도 관람객이 적으면 낙담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홍보했다. 일본의 영화사 대부분과 함께 영화를 만든 적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리타는 감독으로서 혜택 받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당시 소위 메이저라 불리었던 영화사에서는 개봉 전의 영화 선전에 활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해외활동의 전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또 모리타 본인이 쉬지 않고 계속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외에 모리타의 영화를 알리는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일본 국내에서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명한 감독이지만, 해외에서는 상영의 기회조차 없었을 정도로 불균형이 발생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차에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협력을 얻었고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일본국제교류기금, 링컨센터와의 협력으로 2022년 12월 뉴욕에서 실시한 회고전 상영은 큰 호평을 받았다. 2023년 봄부터 파리일본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집상영 역시 주말마다 많은 관람객으로 큰 반향을 보이고 있다(2024년 봄까지 상영 예정).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모리타 요시미츠의 작품 8편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특집 상영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뉴욕과 파리 상영에 이어, 모리타 요시미츠와 그의 작품이 한국의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상영작 목록
1 | 비슷한 것들 | 모리타 요시미츠 | 1981 | 일본 | 103min | Color |
2 | 가족 게임 | 모리타 요시미츠 | 1983 | 일본 | 107min | Color |
3 | 두근두근하게 죽는다 | 모리타 요시미츠 | 1984 | 일본 | 105min | Color |
4 | 소레카라(그 후) | 모리타 요시미츠 | 1985 | 일본 | 130min | Color |
5 | 하루 | 모리타 요시미츠 | 1996 | 일본 | 118min | Color |
6 | 실락원 | 모리타 요시미츠 | 1997 | 일본 | 119min | Color |
7 | 검은 집 | 모리타 요시미츠 | 1999 | 일본 | 118min | Color |
8 | 남쪽으로 튀어 | 모리타 요시미츠 | 2007 | 일본 | 114min | Col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