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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7일(금)
* 시작 기도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주님...
주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명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보기 좋으며 화려하고 넓은 문을 얼마나 선호했는지요?(마 7:13-14).
이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지만 좁은 문은 비록 좁고 협착할지라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지식과 관념으로만 알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무너질 모래 위에 지은 집이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인 줄 알고 있습니다(마 7:24-26).
그런데 진리 안에 세우는 것이 어찌 그리 잘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는 빤한 데 드러나는 행동은 거침없이 겉으로 보기에 좋고 화려한 집을 지으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여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벌써 26년도 2월이 다 지나갑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하셨사오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기 원하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충만히 허락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마 18:10-20
제목 :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 역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담론이 계속 이어진다.
아무리 작고 값어치 없어 보이는 초라한 자라도 결코 업신여기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 아버지를 항상 뵈옵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너희의 생각은 어떠한지 말해 보거라.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맨다면 너희는 길을 잃지 않은 99마리를 산에 두고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서 그 한 마리를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99마리보다 그 찾은 한 마리로 인해서 더 기뻐할 것이다.
이처럼 작고 초라한 자라 할지라도 그들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만약 너희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가서 단 둘이 있을 때에 그의 잘못을 가르쳐주어라.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 말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그를 다시 찾아가거라.
그래서 네가 하는 모든 말에 두세 사람의 증인을 동참시켜라.
만약 그들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교회에 말을 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그를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너희들에게 진심으로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지만,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그 또한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다시 진심으로 말을 하는데, 너희들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 하여 무엇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 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또한 두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며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들이 보기에 번듯한 양복을 입고 넥타이와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사람을 보면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허름한 옷을 입고 겉으로 보기에 거지와 같은 모습의 사람을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길 것이 분명하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아무런 힘이 없는 어린 아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워놓고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이런 힘없는 어린 아이 하나라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 것을 당부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어린 아이들이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들을 보호하는 천사가 늘 하늘에서 하늘 아버지를 뵈며 그 어린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를 임명해 두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은 그 수호천사를 자기들의 신으로 믿기도 하였다.
천사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하다.
(히 1:4) 그가(예수 그리스도)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 명하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고 하셨다.
또한 그 천사들은 바람이나 불꽃과 같은 사역자로 삼으셨다(히 1:6-7절).
(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오늘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분명 천사들은 존재하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 곧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보낸 영들이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천사 혹은 수호천사 운운하면서 이 천사들의 능력이 우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런 천사들을 신처럼 섬기곤 한다.
우리가 섬길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천사를 숭배하는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바르게 가르치고자 하였다.
히브리서 1-2장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유대인들이 다시금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조짐이 보이자 히브리서 기자가 너희 유대인들이 신으로 섬기는 천사는 결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너희들을 섬기라고 보내주신 사역자들이라고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천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물론 육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는 능력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도 그런 천사들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와 천사는 비교 불가인 존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 자신이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천사들을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사역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고 천사에 대한 부러움이 사라졌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천사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아주 어린 아이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그 작고 초라한 어린 아이라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그들을 지켜 보호하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런 예화를 말씀하신다.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맨다면 주인된 자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99마리를 꼴을 먹이는 산에 그대로 두고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잃어버린 가축인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는 자들 중에 그 믿음의 길을 잃고 이탈하여 다른 길로 나간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잃어버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한 마리 양을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웃들을 불러 함께 잔치를 벌인다.
그 잔치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잃어버린 양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다고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서 잔치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의 문제가 아니다.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이토록 기뻐하신다.
그 무엇보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이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말씀이 바로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말씀이다.
또한 한 영혼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비록 목사이지만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였다.
그저 부목사나 담임목사로 사역을 할 때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보다 헌금하는 한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자이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새 가족으로 귀부인이라도 올라치면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최고의 예우를 하여 대접을 하였다.
그 이유는 교회에 헌금을 좀 할 수 있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교회에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도 허름하고 꾀죄죄한 사람이 오면 물론 그 사람도 우리 교회에 온 새 가족이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고백하건대, 화려하게 차려 입은 귀부인을 대하는 자세와는 사뭇 다른 것은 분명하다.
바로 성경은 이를 꼬집는다.
(약 2:1-4)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현대교회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교회도 철저히 있는 자와 없는 자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실정이다.
교회도 돈이 있어야 운영을 한다.
그 운영이란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운영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운영을 함으로써 자기 교회가 그 일대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큰 교회를 목회하면 그 목사는 자기 교인들만 아니라 안 믿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목회에 성공한 목사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런 명예나 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토록 작은 자 곧 어린 아이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건만, 나와 같은 세속적인 목사들은 끊임없이 돈 많고 옷 잘 입는 화려한 귀부인들을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한다.
이것이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나의 진면목이다.
나는 아닌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탐심이 가득한 이리와도 같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이 바로 나였음을 고백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 16:13-15)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돈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섬겨야 하고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작고 연약한 사람을 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보다 돈을 섬겼고 작고 연약하며 초라한 사람보다 돈이 많아 보이는 그런 사람을 더 가까이 대하고자 애쓴 자였음을 고백한다.
이런 나는 진리 안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닌 척 하면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섬기고 사랑하는 외식의 중심에 서 있는 자였다.
내가 바로 예수님의 질타를 받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하여 한국의 목회 실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유튜브는 세계 곳곳의 일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유튜브를 통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됐다.
부산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부교역자들에게 세상에서도 들을 수 없는 쌍욕을 퍼붓는 현장의 목소리를 아주 생생하게 듣게 되었다.
그 욕을 한 이유는 자기 교회의 성도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는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이쪽 주머니에 있던 것을 다른 주머니에 넣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교회로의 이동은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아끼는 한 권사는 VVIP 대접을 받는 분인데 여전도사가 그 권사를 홀대했다는 이유로 온갖 쌍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 권사가 VVIP 대접을 받는 이유는 헌금을 많이 해서란다.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깨닫고 내가 바로 죽어야 할 자임을 토로한다.
오늘 이 시간, 주의 말씀을 통하여 나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돌아본다.
내가 어떤 자인지,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아담 안의 생명만 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내게 생명을 주신 아들의 생명이 있는지 말이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나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이런 나를 주님은 심판하셨고 그 심판을 통하여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과 함께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또한 우리 주님의 무덤에 함께 장사되어 연합한다.
그 결과 나는 땅의 지체를 죽이고 오직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자로 살아간다.
이는 날 위하여 먼저 심판을 받으신 예수님으로 인함이다.
그 은혜가 나를 살리셨다.
그리고 오늘도 땅에 매몰되어 살지 않고 내 영혼은 만물 위로 올라가 거기 계시는 우리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이어나간다.
주의 영광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철저하게 외식의 탈, 양의 탈을 쓰고 살아왔던 이리와 같은 죄인을 주님께 고발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괜찮은 목사요 선교사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썩어 문드러진 죽은 짐승의 사체, 그 자체입니다.
독수리나 매들이 와서 그 죽은 짐승의 사체를 쪼아 먹듯이 악한 사탄의 밥이 되어 지금까지 살았던 나의 인생이 너무나 초라하고 죄송스럽기 그지없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긍휼이 아니면 살 수 없사오니 긍휼을 베푸소서.
죄로 더럽혀진 이 몸을 주의 보혈로 덮어 깨끗이 씻어 주시고 보혈의 옷, 그리스도의 옷,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입혀 주신 가죽옷으로 덮어주소서.
나의 본 모습인 그 실체 앞에서 오열합니다.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 나를 우리 주님께서 대신 죽으시고 나를 살려주셨으니 이제 나도 우리 주님과 연합한 자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작은 예수로 살게 하옵소서.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나를 받으소서.
비록 냄새나고 가련하며 초라한 자이나 냄새나는 탕자를 두 팔 벌려 덥석 안아주신 아버지와 같이 나도 주의 품속에 거하기 원합니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우리 주님의 품속이며 하나님 나라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임을 믿사오니 이 종이 새로운 길을 걷게 하소서.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