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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388) - 일본대학생들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과일이 제 맛을 내는 등 가을기운이 완연하다. 찬이슬 내린다는 백로 다음날(9월 9일), 풍광이 수려한 문경새재를 넘었다. 일행은 한국체육진흥회 회원 38명과 NPO법인 '한중일(韓中日)에서 세계로'의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길 탐사에 나선 일본 대학생 26명 등 64명.
아침 6시 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버스가 대기 중이고 참가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출발예정시각인 7시가 지나도 전날 주문한 도시락이 안 온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포기한 체 출발, 사연을 확인하니 배달 날짜를 토요일로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주문사항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영업자세가 미덥지 않다.
평일이라 고속도로가 잘 뚫려 오전 10시 약속장소인 수안보 쪽 산길 휴게소에 이르니 일본대학생들이 먼저 와서 기다린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노소가 한데 어울려 걷기에 나섰다. 일본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선발한 참가자들 중 더러는 한국어를 익히기도 하였는데 쌍방의 소통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두루 동원된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다는 청년과 영어, 일본어를 섞어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 시간쯤 걸어 문경새재 가장 높은 곳의 제3관문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나눈다. 미술을 전공한다는 발랄한 여대생이 흥을 돋우며 춤사위를 벌이고 이에 감응한 어머니뻘의 걷기회원이 짝을 이루어 한데 어울린다. 제3관문부터는 내리막 길, 잠시 쉬었다 걷는 발걸음들이 한결 가볍다. 내리막길 중간쯤의 정자를 중심으로 주변에 둘러 앉아 점심을 든다. 일본대학생들이 준비한 점심메뉴는 군대에서 드는 씨 레이션, 도시락 차질로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걷기회원들은 간식꺼리로 자리를 함께 하였다. 학생들이 잘 익은 문경사과를 한아름 내놓기도.
제3관문에서 휴식을 취한 후 출발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다
점심을 들고 내려가는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점점 늦어진다. 걷기로 단련된 노장들보다 청년들의 대열이 뒤지는 것은 예사로운 일, 이를 지켜보노라니 몇 년 전 남한일주 한일우정걷기를 에스코트하던 경찰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이 지긋한 분들의 걷기행진이라 속도가 더딜 줄 알았는데 대학생들보다 빨리 걷는다고.
네 시간여 같이 걸은 후 오후 2시경 제1관문 못 미쳐서 일본학생들과 작별하였다. 그들은 이후 부근에서 다른 스케줄이 잡혀 있다. 작별에 앞서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이 인사말을 전한다. '오늘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걸은 문경새재는 조선통신사가 걸어갔던 교류와 친선의 길이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이곳을 거쳐 왕실이 있는 서울로 진격한 침략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 역사의 교훈을 되살려 평화와 친선을 다지며 여러분과 함께 걸었다. 한일 간의 어두운 면을 교훈삼아 밝고 건전한 협력의 길을 여는 첨병이 되기 바란다.'
일본대학생들과 작별한 걷기회원들은 입구의 식당가에 있는 조묵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문경시내에 있는 청운각(박정희 대통령이 1937~1940년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묵은 하숙집을 기념관으로 만든 곳)까지 걸으니 오후 4시가 지난다. 잠시 청운각을 둘러보고 귀로에 올랐다. 남양주걷기회원들은 하남에서, 나는 강남 쪽 회원들과 강변역에서 내렸다. 남은 일행은 출발지점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향하고. 뜻 깊은 걷기에 참여하기 위해 밤기차로 올라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함께하느라 몸은 고단하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처럼 마음은 맑고 푸르다.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한국과 일본의 여러 곳을 담사하는 이 프로그램을 마련한 이는 재일동포 우시오 게이꼬 씨, 일본의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의탁을 받아 양국 대학생을 초청하고 파견하는 사업의 두 번째 행사다.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주최 측과 이에 동참한 일본대학생들, 유서 깊은 문경새재 걷기에 참가한 이들 모두의 건승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