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율, 외형률이라는 수상한 말
시조부흥론자들이 고시조(시조창)에서 시조의 기본형을 도출
하고 한국시 리듬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음수율을 전개했듯이,
새로운 리듬이 자유시 쪽에도 요구되었습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시론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자유시 담론을 주도했
던 이들은 먼저, 자우시의 ’시적 리듬‘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했
고,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내재율‘입니다.
근대 초기 자유시의 리듬은 ‘내재율(內在律)’, ‘내용률(內容律)’,
‘내심률(內心律)’, ‘내율(內律)’등 논자마다 다양하게 명명되었는데,
여기서 ‘내(內)’라는 개념이 이 어휘들을 포괄하는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인의 감정돠 정서를 반영하는 리듬을 ‘내
재율’로 명명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아사무사(알 듯 모를 듯)한 마
음을 표현하거나 그런 감정을 시로 느끼는 것이 바로 ‘내재율’이죠.
내재율과 외형률으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내재율(內在律) : 자유시에서 내용이나 언어의 배치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잠재적 운율로,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은근히 느낄 수
있는 운율을 의미한다. 글자 수가 일정한 시조처럼 운율이 겉으로 드
러나는 외형률과 대응된다. 일정한 형식을 취하지 않는 현대시는 대
부분 내재율을 가지고 있다.
외형률(外形律) : 운율은 시를 읽을 때 흥겨움을 주는 말의 가락으로,
이 중에서 외형률은 시의 겉으로 드러난 운율을 말한다. 우리 문학의 경우
시조나 향가에서 외형률을 찾아볼 수 있다. 외형률에는 글자수를 일정하
게 배치하여 생기는 음수율(音數律), 일정한 위치에 일정한 음을 규칙적
으로 배열하여 생기는 음위율(音位律), 음의 장단(長短), 음의 강약(强弱)
, 음의 청탁(淸濁), 음의 고저(高低)에 따라 생기는 음성률(音聲律) 등이
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눈 크게 뜨고 사전적 정의를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외형률은 마음 안쪽이 아닌 바깥에서 느껴
지는 것인가요? 외형률은 시를 보자마자 바로 리듬을 느끼는 것이
고, 내재율은 바로 드러나지 않고 일고 음미해야 느낄 수 있다는 말
인가요? 그러면 시조는 감상할 필요도 없이 보는 순간 바로 리듬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요?
2015년 이후 개정된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외형률과 내
재율이 처음 등장합니다. 교과서마다 다르지만, 윤선도의 고시조
나 성삼문의 고시조 또는 김상옥의 현대시조 「봉선화」등이 외형률
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나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은 내재율일까요, 외형률일까요?
이들 작품은 일정한 패턴(반복)이 있습니다. 시조의 특정한 4
마디 반복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3마디(음보)반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작품도 외형률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돌담에/속삭이는/햇밭같이 .......→ 3음보(+음위율)
풀 아래/웃은 짓는/샘물같이 ....... → 3음보(+음위율)
나 보기가/역겨워/가실 때에는 .... → 3음보(+음수율)
말없이/고이보내/드리우리다 .... .→ 3음보(+음수율)
산 너머/남촌에는/누가 살길래 ...... → 3음보(+음수율)
해마다/봄바람이/남으로 오네 ...... → 3음보(+음수율)
특히, 김소월의 작품에는 특별히 ‘7.5조’라는 민요조를 적용합
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과서(+문제집+학원)는 이렇게 정리합
니다. 음보율, 음수율, 음위율 등의 반복이 확실하면 외형률 인정!
그러나 ‘외형률=정형률’로 보고, 외형률이 시 전체에 영향을 주거
나, 시 전체가 같은 패턴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곧바로 내재율로
보내버립니다. 다시 말해. ‘외형률=정형률’의 공식을 가지고, 정형
률은 외형률인데, 이 정형률이 없으면 바로 내재율이 되어 버립니
다. 내재율이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고, 정형률(외형률)인지 아닌지
만 판단하면 끝.
여기서 정형률은 시 자체가 따라야 할 율격 혹은 규칙이 있다
는 말로 정의합니다. 일본의 하이쿠나 유럽의 소네트처럼 말입니
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조(+고전시가)가 ‘짜잔’하고 등장. 들쑥
날쑥하지 않고 아주 잘 정제된, ‘3/4/3/4-3/4/3/4-3/5/4/3’의 음수
율(+음보율)을 가진 시조(특히 고시조)를 예로 들어 이것이 바로
정형률이자 외형률입니다. 하고 서둘러 정리합니다.
확실한 율격을 가진 시조는 누가 봐도 정형률(외형률). 일정한
단어, 어절의 반복,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 동일한 종결 어미의
반복 등은 내재율, 가끔 현대시(자유시)가 보여주고 있는 아주 일
정한 반복은 예외. 이렇게 정리하면 끝.
일정한 글자수 혹은 동일한 음보의 반복은 외형률인데, 시조
(+고전시가)가 이를 대표하며, 자유분방한 현대시는 내재율, 그러
나 현대시의 일정한 글자수 혹은 음보의 반복에서는 헷갈립니다.
‘외형률=정형률’이기 때문에, ‘정형률이라고 보기에는 시조처럼 확
실하지 않지, 그러니 그냥 내재율이겠네’하고 깔끔하게 해결.
진짜 큰 문제는 이렇게 ‘외형률 VS 내재율’이 곧 ‘고전적인 것
VS 현대적인 것’ 또는 ‘촌스러운 것 VS 세련된 것’의 문제로 손쉽게
치환된다는 점입니다.
현대시조 입문서, ‘오늘부터 쓰시조 김남규, 헤겔의 휴일
1.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16~20쪽 중에서.
첫댓글 내재율과 외형률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