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영정, 친일 논란 이제 그만
DealSite경제TV 기사 입력 : 2023.02.17. 07:00
글 : 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전 현대미술관회 회장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아직도 친일파 운운하는 사람들”(조선일보, 2023.2.3.)이라고 지적해서가 아니라, 이젠 “친일파 운운하면 신물 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근래 친일파 논란의 중심에는 우리 모두의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영정을 제작한 화가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3~2001) 화백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장우성 화백은 친일파이고, 그 친일파가 그린 성웅의 영정은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우성 화백이 친일파인 이유를 열거한 몇 가지 논거에 수긍하기보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됩니다.
특히 젊은 장우성이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화백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붓 다루기’나 그림의 ‘구도를 잡는 기본기’를 배웠을 터인데, 그런 사실을 두고 친일 화가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의 소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왠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국내 민중신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고 심원(心園) 안병무(安炳茂, 1912~1986) 교수는 오래전(1959, 하이델베르크) 필자에게 “개[犬]가 만든 학문이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필자는 이 충언을 소중히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동·서양 학계의 공통된 지침이기도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장우성 화백이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銃後, 전쟁터의 후방이라는 뜻)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心魂)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했다고 친일파라 합니다. 작가가 최우수상을 받아 감격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사한 게 ‘큰 흠’이 된 것입니다. 월전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로부터 1944년에 이르기까지 연속 수상한 바 있습니다.
어떤 경연에서든 특상이나 최우수상을 받아본 사람들이 ‘감격해하는 모습’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으며, 옛날과 오늘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컨대 매우 감동해서 흥분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논쟁의 초점은 화가 장우성이 제작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에 담긴 화풍(畫風)이 조선 시대 화법(畫法)에 반(反)하는지 또는 일본 고유의 전통에 따르거나 일본 화풍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지 등으로 옮겨야 합니다. 일본 초상화와 우리나라 초상화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 초상화에는 제작 지침이 있습니다. 히키메가기하나(引目鉤鼻)기법이라는 지침이 그것인데, 아랫볼이 불룩하고 둥근 얼굴에 두꺼운 눈썹, 가늘게 일직선으로 그은 눈, ‘〱’자형 코, 그리고 조그마한 붉은 점을 찍은 입으로 이루어진 얼굴 묘사법입니다. 각기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코는 어떻게, 눈은 어떻게 그리라는 지침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생소합니다. 그만큼 일본과 우리나라의 ‘초상화 그리기’ 기법은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조선 초상화는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린 반면, 교토대박물관 소장 일본 도쿠가와 초상화는 안면이 백색으로 처리되어 있고, 허리에 긴칼[長刀]을 움켜쥐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 초상화는 피사인(被寫人)의 안면(顔面)을 흰색으로 처리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의 초상화를 비롯해 다른 무인(武人)들의 초상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외에 일본 초상화에서 크고 작은 일본검(日本劍)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일본 화가가 그린 조선인의 초상화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한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을 일본 화가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 1636~1713)가 화폭에 옮긴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도 가끔 피사인이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초상화는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처럼 피사인이 방바닥에 앉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 화가는 바닥에 앉아 있는 자세의 조태억을 그렸습니다. 또한 피사인의 입술을 눈에 띌 만큼 붉게 묘사했습니다. 일본 초상화 특유의 인위성입니다.
반면, 조선 시대 화가는 한결같이 피사인의 모습을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렸습니다. 1688년 숙종(肅宗) 14년 3월 7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기록되어 있기를, “한 가닥의 털,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혹시 달리 그리면 즉 다른 사람이다[一毛一髮 少或差殊 卽便是別人者]”라는 초상화 제작 지침을 조선의 화가는 예외 없이 따랐습니다. 또한 조선 초상화에서는 일본과 달리 어떤 크고 작은 칼[刀]을 볼 수 없습니다.
월전은 1933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70세의 조부 만낙헌(晩樂軒) 장석인(張錫寅, 1863~1938)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에서 500여 년간 끈질기게 전해온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화법으로 할아버지를 화폭에 옮겼습니다. 할아버지를 그리면서 조금도 미화한 흔적을 볼 수 없습니다. 정직하되 ‘아름답지’ 않게 그린 것이어서 더욱 빛난다고 하겠습니다. 즉, 일본풍이 아니라 조선풍을 따른 것입니다.
장우성 화백이 그린 성웅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에서 우리는 어떤 친일적인 화법의 작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뛰어난 장수임에도 칼조차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오래전부터 끈질기게 거론되어온 성웅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월전 장우성 화백이 조선 시대 초상화 기법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입니다. 이른바 친일 냄새가 전혀 없고, 따라서 그 작품을 퇴출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우성, 이순신(李舜臣) 영정, 1953,
비단에 채색, 193 x 113cm, 아산 현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