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아랄해 모습
아무 다리야 강과 시르 다리야 강에서의 물 유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아랄해의 면적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했다. 원래 아랄해는 호수의 깊이가
카스피해처
럼 깊지 않아서 물의 수위가 줄어들면 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당장 면적만 봐도 1998년에는 28.687km², 2004년에는
17.160km², 2008년에는 6.800km²로 줄어버렸다(...) 약 50년만에 면적이 1/10로 줄어버린 것.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게 위성사진으로도 명백히 보이니 2012년에는 6.800km²보다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게
다가 호수가 그냥 감소하는 정도여도 문제가 있지만 이로 인해 기후 자체가 변하게 되었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마른 호수 바닥은
낮에는 끓어오르듯 뜨거워지고 밤에는 얼어붙듯 차가웠다. 이로 인해 여름이 줄어들고 더 뜨거워졌으며 강우량이 줄어들고 서리가 끼지
않는 날의 수가 줄어들어 목화 재배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의 숲들은 황폐화되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던
각종 동물들 역시 사라졌다.
또 다른 문제는 아랄해가 염호였다는 점.
물이 없어 점점 말라가면서 아랄해의 염도는 개발 이전보다 3배 가깝게 올라가버렸으며 본래 호수였던 곳이 마른 곳은 소금 사막이
되어버렸다. 소금기 섞인 모랫바람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만연했고 이 바람은 500km 이상 날아가 주변국 농토까지 위협했다.
토양에 날아와 묻은 소금들을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비했으며 이러한 소금물들은 토양에 침투하거나 다시 아랄해로 흘러들어가
염도를 가중시켰다. 게다가 관개시설이 열악하였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증발되는 물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작 목표였던 목화 재배량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단적인 예로
고려인들의 콜호스(집단농장)인
김병화 콜호스는 50년대~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정부가 지정해준 쌀과 면화 생산 목표의 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괴물같은 농장이었다. 7개년 계획을 4개년 만에
초과달성하
는 위엄을 보여주었을 정도. 그런데 이 농장은 80년대 아랄해의 사막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진행되자 생산량이 소련 평균을
밑돌 정도로 몰락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인근의 카라칼파크인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독립을
요구할 재력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
한 높아지는 염도 외에도 목화 및 쌀을 재배하기 위해 뿌려진 각종 화학 비료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아랄해로 들어가게 되었고 호수의
오염 자체도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오염은 아랄해를 식수로 이용하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아랄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카라칼파크스탄 지역의 1989년 당시 어린이 사망률은 세계 최고였다. 또한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그래서 관련된 일자리 6만 개가 사라져 주민들은 도시로 떠났다.
결
국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北)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南)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면화 산업을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상태에서
환경전문가들은 2020년에는 아랄해가 완전히 말라붙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한 마디로 말해
헬게이트가 도래한 셈이다.
아랄해의
좆망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함께 소련의 2대 환경재앙으로 꼽히며 산업화와 생산량 달성만을 위해 달려오던 소련 공산당이
영원히 까일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소련은 목화를 위해 아랄해를 성급하게 개발했지만 정작 목화 재배도 실패하였으며 아랄해와 지역 주민에게는 지옥 같은 환경만을 남겨주었다.
첫댓글 으음
자세한 내용 고맙습니다.
잘봤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긴 늦었군요..
인간의 이익을 위한 자연훼손의 결과..
참혹하네요.. 어리석다.. 참..
50년만에 거대호수가 너무 쉽게 사라지네요 역시 인간은 지구에게 큰 골치 덩어리이군요
아랄해 중심이였던 항구도시 아랄스크입니다.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