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르는 노래가 나의 영적 현주소이다”
교회 사무실이 있는 빌딩 층의 화장실에 들어가니 No.2(큰 것)를 보려고 앉은 발이 밑으로 보였다. 손을 씻고 있으니 핸드폰에서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라는 노래 가락이 흘러나왔다.
우리 층에만도 사무실이 열다섯 개 정도인가 되어 다양한 인종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사람도 옛노래인 것을 보니 많이 나이든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수준도 평소 무슨 노래를 부르는가가 그 사람의 영적 현주소임을 알 수 있다.
오래 전에 처음 L.A에 나왔을 때, 여기에서는 제일 큰 교회 은퇴 장로님의 차를 탄 적이 있다. 시동을 걸자마자 듣고 있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청산에 살으리라”였다.
수십년 전 청년 때 먼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불렀던 그 노래를 평생 신앙생활하고 은퇴하여 80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운 데 아직 부르고 있다니 그 신앙의 수준과 교회의 수준을 알듯 하였다.
조영남은 빌리그래함 전도단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대형집회에 성가를 부르기도 하며 미국에서 트리니티 신학교 까지 다녔고, 그 어머니 권사님이 그렇게 자신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했다고 했음에도 나이 들어 화투 그림에 심취하고 유명화가 그림을 사칭하여 법정에 서는 등 물의를 일으켰는데, 그는 “내가 죽으면 장례식 때 이 노래(모란동백)를 후배들이 합창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나도 옛적에는 조영남만큼 좋은 목소리는 없다 하고 많이 들었었지만, 그가 부른 찬송가, 성가곡집도 있으나, 모란동백은 그 가사가 객사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시인 이제하의 노래를 그가 부른 것인데, “# 1.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로 시작하여,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2.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로 시작하여,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이다.
나는 그가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으로 죽기 전에 극적인 회개의 간증과 함께 그 좋은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해 본다.
나의 경우에도 19살 때 성령을 받았음에도 51살까지 하나님의 노래인 찬미와 경배는 도무지 알지 못하고, 그냥 노래를 기도와 바램으로만 불렀었다.
가장 좋아하던 “1.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를 부르면서도 주님과 동행하지 못했다.
“2.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내 영혼 평안해” 하면서도 평안하지 못해 정말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벗어나지 못해 기도로 불렀었다.
“3.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노래하면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했고 주님의 친구가 되는 법도 몰랐다. 그리고 그만큼 주님과 동행할 만한 정결함이 내게 없었다.
물론 몰라서이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 당시 내 신앙의 수준이, 영적수준이 주님과 동행하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와 친교하며 그를 기뻐하고 그를 경배할 수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이, 행동이 주님께 집중되지 못했고, 그냥 습관적으로 그것도 기도와 은혜를 구하는 수준이었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역사를 찬미하고 그를 영으로 경배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주께 노래하며 화답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선포하고 영으로 경배함이 가장 높은 수준의 노래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다른 노래들은 싱겁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그 한량 없는 영광을 늘 찬송하겠네, 빛나는 왕의 왕 영광의 주님… 위대하신 주, 내가 만민 중에 오 주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리 열방중에서…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아름답고 놀라운 주 예수 말로 할 수 없네 그 측량할 수 없는 위엄 주님과 같은 분 없네… 주님 앞에 내가 서 있네 주는 거룩하신 하나님 그 앞에 서 있네”는 수없이 불러도 벅차다.
거듭 거듭 적고 있다.
찬미(Praise, 찬양)는 하나님의 노래다(새 노래, 나의 노래, 사 43:21). 그의 이름, 성품, 역사를 노래하는 것이다.
경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선포하는 것이다.
“# 주는 거룩하시도다. 주는 존귀하신 분, 그는 영화로우시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위대하신 주, 빛나는 왕의 왕 영광의 주님…”
“경배를 올려드리면 영광이 내려온다! 영광이 내려오면 통곡이 일어난다!” 하셨다.
맨날 기도만 하지 말고 기도에 찬미를 더하자.
감사-찬미에다 더 높이 올라가 천사의 수준인 극진한 찬미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 보라.
그 앞에 굴복됨을 경험케 되고 엎드려 절하게 될 것이다
천사들의 튠으로, 이 땅에서 새 노래, 하늘의 노래를 부르는 영광을 맛 볼 것이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참 아름다운 영광이로다”는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가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직 삶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노래를 높이라. 결국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우리의 영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끌어 올릴 것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시 96:1-2).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계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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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빌더즈 전두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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