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 강론>(2023. 11. 1. 수)(마태 5,1-12ㄴ)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인』
교회에서 시성식을 하고 성인으로 선포한 분들만 ‘성인’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는 분들은 모두 ‘성인’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는 것도 신앙생활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인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묵시록은 “그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묵시 7,9).”
이 말의 바로 앞에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은(묵시 7,4),
실제 숫자가 아니라 성인들의 완전성과
영적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함께 언급되어 있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도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열두 지파가 상징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숫자가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떻든, 하느님 나라는 아주 적은 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자격을 갖추기만 한다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수는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좁은 문’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근거로 들면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3-24).”
이 말씀에서 ‘좁은 문’은 적은 수의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문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입니다.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는
“희망하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만일에 인류 전체가 회개하고 자격을 갖춘다면,
전부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반대로 인류 전체가 자격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부 다 못 들어갈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몇 명인지,
못 들어가는 사람이 몇 명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누가 들어가게 될지, 누가 못 들어가게 될지,
그것도 지금은 모릅니다.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금은’ 확정된 상태가 아닙니다.
포기하지도 말고, 자만하지도 말고,
끝까지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인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게 될까?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묵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15-17).”
그곳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곳이고,
사랑과 기쁨과 평화만 가득한 곳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면 예수님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고,
수많은 순교자들과 성인들이 또 그 뒤를 따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예수님 뒤를 따르는 생활이기도
하고, 사도들과 성인들의 뒤를 따르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남녀노소 누구든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린이들도 할 수 있고, 병든 이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성인들’도 지상에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끝까지 충실하게 믿었고,
믿는 대로 살았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의 선조들’에 대해서 말한 다음에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2,1-2).”
[출처] 모든 성인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