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마르다" (요한19,28)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의
하나로 '목마르다'는 말씀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육신의 갈증 뿐 아니라
영혼에 대한 갈증,
사랑의 갈증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 말씀이 들어있는
요한 복음 19장 28절
전체 안에서 이 말씀을 알아 들어야 한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목마르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하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목이 마르셨다.
정오경의 팔레스티나 지역은
보통 사람도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서 있기 힘들 정도의 더운 날씨이다.
하물며 십자가에 못박혀서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탈수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목마르다"고 하셨다.

바로 시편 69장 22절 후반부의 말씀이다.
"그들은 저에게 음식으로 독을 주고
목말라할 때 초를 마시게 하였습니다."
원문의 '목말라할 때'라고 번역된
'딥산'(dipsan)과
'목마르다'라고 번역된 '딥소'(dipso)가
동사 '딥사오'(dipsao)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한 '목마르다'라는 말씀으로 인해
예수님께 가져온 음료에 대해서
요한 복음 19장 29절에선 '신 포도주'로,
시편 69장 22절에선 '초'로 다르게 번역했지만,
70인역(LXX)에서는 동일하게
'옥소스'(oxos)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육신의 깊은 데서부터 느껴지는
심한 갈증으로 인해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저주하거나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던 메시아에 대해
예언된 구약의 시편 말씀을 기억해 내시고
그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의 갈증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을 표현하는 한 마디 말에 있어서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신다.
한편, 요한 복음 4장 34절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와
요한 복음 19장 29절의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에서
'완수하는'에 해당하는
'텔레이오소'(telleioso)와
'이루어지게'에 해당하는 '텔레이오테'
(telleiothe)는 그 원형이 '텔레오'(telleo)로 같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이 어떤 죽음을 당하실 것을
미리 알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요한13,1)
따라서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목마름은
탈수 현상으로 인한 육신의 목마름을 넘어선,
성부 하느님의 일을 이루시려는(telleioso)
갈급함으로 인한 영적 목마름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과 머리는
온통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과 뜻과
계획만으로 가득차 있으며,
어떻게 하면 온전히 그 말씀에 순종하며
이루실 것인가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으로 애타 하신다.
십자가상에서 다 죽어 가시면서도
철저히 하느님 아버지 중심,
구약의 당신께 대한 예언의 말씀의 성취에
온전히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예수님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다.
우리 인간들 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내 뜻에 하느님도 이웃도 세상도
다 맞추어 주길 원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