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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올가 토카르추크
올가 토카르추크.
인터넷 서점에서 최근에 그의 책들이 많이 소개가 되어,
어떤 작가인가 찾아보았단다.
몇 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탄 것은 알고 있어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외에 아는 것이 없었거든.
폴란드 출신 작가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폴란드 작가의 책을 본 적이 있던가.
인터넷에서 ‘폴란드 작가’로 검색을 해보니 작가들이 쭉 나오는데,
아는 사람은 올가 토카르추크 한 사람뿐인 것 같더구나.
그럼, 폴란드 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 하고…
그의 책들 소개를 읽어 보니
아빠가 이번에 읽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범죄 스릴러라고 하더구나.
음,,, 노벨문학상을 탄 분이 범죄 스릴러도 쓰시는구나…
책 소개를 읽어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구나.
다 읽고 난 소감은 우리가 아는 그런 평범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
인간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는 글..
범죄 스릴러를 쓰더라도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노벨문학상을 탈 만 하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단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기도 했대..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아빠가 발췌한 글만 네댓 쪽이 될 만큼,
좋은 문구들도 많았단다.
범죄스릴러에 발췌할 글들이 뭐 그리 많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랬단다.
제목이 좀 길고 외우기 어려워서,
(작가의 이름도 낯설어서 정확히 외우기 어려운데….)
누군가에서 추천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
작가 후기를 보니
소설의 제목을 두고 작가와 출판사의 의견 차이가 많았다고 하는구나.
결국은 작가의 승.^^
소설의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의 시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아빠는 모르는 시인임)
그의 시는 책 곳곳에 많이 등장한단다.
옮긴이의 글에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을 짧게 소개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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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윌리엄 블레이크는 창조적이고 전복적인 작품을 남긴 시인이면서 급진적인 사상가였고, 산업 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개탄한 아나키스트였다. 또한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에 얽힌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독특한 예언자적 전망을 피력하면서 이를 예술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상징체계를 통해 재창조한 선지자이기도 했다.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 시대에 블레이크는 고독하게 동판화를 새기며 시를 썼고, 유작인 <예루살렘>(1804~1820)의 시구처럼 “죽음의 세계로부터 생명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지향했고, 자연에 대한 통합적 사고와 전체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예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해 온 토카르추크가 블레이크의 시를 작품의 모토로 설정한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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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사건
주인공 야니나 두셰이코는 체코와 접경 근처인 폴란드의 한 고원에 살고 있단다.
이 지역은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만,
겨울철이면 모두들 떠나고 조용한 곳이 된단다.
야니나의 이웃은 야니나 말고 두 집만 더 거주고 있단다.
모두 1인 주택이야.
그 중에 괴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비에르 시친스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한밤중에 야니나를 찾아왔어.
여기서 잠깐, 주인공 야니나는 주변 사람들을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의 특징으로 자신이 붙인 별명으로 떠올린단다.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지만, 자신이 혼자 생각할 때는 별명으로 말이야.
마치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이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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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공식적인 이름과 성이라…… 이 얼마나 빈곤한 상상력인가. 그런 식의 이름은 기억하기 어렵고 개별적인 특성과는 너무 동떨어져서 해당 인물을 떠올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세대별로 유행하는 이름이 따로 있어서 갑자기 모든 사람이 마우고자타나 파트리크, 그리고…… 맘소사, 정말 듣기 싫은 이름이지만, 야니나라 불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타인을 지칭할 때 이름과 성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보다는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볼 때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표현이나 느낌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편을 선호한다. 의미를 상실한 단어를 아무렇게나 내뱉기보다는 이것이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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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그 이웃인 괴짜가 한밤중에 찾아왔어.
또 다른 이웃 왕발이 죽었다고…
이웃이긴 하지만, 야니나는 왕발을 무척 싫어했어.
동물들 학대하고 밀렵도 많이 하고 말이야.
한때 그가 밀렵을 한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있는데,
경찰은 그녀의 신고를 무시했단다.
왕발을 싫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죽었다고 하니,
그리고 괴짜가 같이 가자고 하니 갈 수밖에 없었어.
집에 가보니 목에 동물 뼈 같은 것이 걸려 질식사한 것처럼 보였어.
집 안을 들러보던 야니나, 목 잘린 사슴의 머리와 잘린 사슴의 네 다리를 보았어.
어찌나 잔인하던지…
그리고 그의 집에서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았는데,
그 사진을 보고 기겁을 하게 된 야니나… 무슨 사진이었을까.
…
야니나.
나이가 육십 대이지만, 젊었을 때 무슨 던지기 선수였던 것 같은데,
읽은 지 시간이 꽤 지났더니 기억이 안 난다.
요지는 나이는 좀 있지만 건강하시다는 것.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 점성술 공부를 많이 했어.
우리의 삶은 모두 별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을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언제 죽은 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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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별과 행성에 대한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 ‘우주의 영향력에 관한 채널.’ 이런 유의 방송 또한 화면이 지도들로 구성될 것이며, 우주의 영향력을 선으로 표시하고, 행성의 충돌을 구역별로 보여줄 것이다. “화성이 황도(黃道) 위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 저녁에는 명왕성의 영향력이 구역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러니 차를 차고나 실내 주차장에 두십시오. 칼은 치우고, 지하실로 내려갈 때는 조심하실 것을 당부합니다. 이 행성이 게자리를 통과할 때는 목욕을 피하시고, 가족 간의 다툼도 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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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학교 선생님으로 일했고, 지금도 파트 파임으로 선생님 일을 하고 있었어.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 디오니시오스라는 제자 있는데,
금요일마다 찾아와서 같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번역하는 일을 하곤 했단다.
..
괴짜.
전형적인 과묵한 중년 남자. 정리벽이 있다고 하는구나.
아들이 경찰이라서, 왕발이 죽었을 때 조사하러 오기도 했어.
과묵한 남자를 이야기하면서,
테스토스테론 자폐증이란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아빠도 테스토스테론 자폐증인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능력이 거의 사라진다는 증세가 있다는 것을 보고,
아빠는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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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
평소 유독 대화를 나누기 힘든 상대가 있는데 대부분은 남자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테스토스테론 자폐증을 경험한다. 사회적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이 점차 감소되고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약해지는 증상이다. 이러한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점차 말이 없어지고, 수많은 생각의 갈림길에서 길을 잃은 듯한 혼돈에 빠지게 된다. 또한 다양한 도구와 기계류에 관심이 집중되고, 2차 세계 대전이나 정치인 또는 악당과 같은 유명 인사의 이력에 흥미를 느낀다. 반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테스토스테론 자폐증은 인물에 대한 심리적인 이해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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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수
왕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위해 신부님과 왕발의 친구들이 왔어.
그들은 대부분 왕발의 사냥 친구였단다.
그들의 떼로 다니면서 사냥을 하는데,
한번은 야니나가 그들이 사냥하는 것을 보고 말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제자 디오니시오스, 앞으로는 짧게 디지오라고 부를게.
디지오가 집에 왔다가 가면서 숲속에서 이상한 불빛이 있다면서 가보자고 했어.
그 곳에 가보았더니 경찰서장이 폐우물에 떨어져 죽어 있었던 거야..
이상한 점은 주변에 사슴들의 발자국들이 잔뜩 있었다고 있었어.
전에 왕발의 집 근처에도 사슴들의 발자국들이 많이 있었는데 말이야.
야니나은 이 사건들이 모두 사슴들의 복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혼자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에 차게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그녀를 이상한 사람 보듯 했단다.
당연히 그랬을 것 같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실종 사고가 일어났어.
여우 농장을 하던 브렝트샥이라는 사람이 사라진 거야.
아무도 그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몰랐어.
그도 얼마 후 죽은 채 발견이 되었단다.
야니나는 이것도 동물들의 복수라고 생각했단다.
…
어느날 외지 사람 한 명 찾아왔어.
보로스라는 곤충학자인데 야니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말도 잘 통하고 그래서, 보로스는 야니나의 집에 머물면서
주변의 곤충을 연구할 수 있었어..
그 외 몇몇 야니나처럼 동물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소수였단다.
심지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성당 신부님도
사냥꾼을 옹호하고 사냥꾼들이 오히려 동물에 도움을 준다는 설교까지 한 거야.
성당에서 그의 설교를 듣던 야니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바탕 난리를 피기도 했단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그 신부가 머물고 있던 사제관에 화재가 나서 죽고 말았단다.
그 전부터 사실 야니나가 용의선상에 오르내리고 있었단다.
맞아, 이 일에는 야니나가 연루되어 있었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제자 디지오도 야니나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이 죽고 나서 이제 확신이 서게 되었단다.
그리고 야니나의 차에 싣고 다닌 장비들이 그 증거들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다면 왜 야니나가 그런 짓을 벌였을까.
단지 그들이 동물들을 죽여서 그랬을까.
…
앞서 아빠가 이야기한 것 중에 단서가 하나 있단다.
첫 번째로 죽은 왕발의 집에서 본 사진…
그 사진은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포획물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어.
그런데 그 사진 속에 야니나가 키우던 개 두 마리의 시신도 있었어.
어디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야니나가 계속 찾던 개들.
그들을 어린 두 딸이라고 생각했던 야니나.
가끔씩 그들의 헛것이 보일 정도로 사랑했던 개들인데,
그 개들이 사냥꾼들의 사진에 죽은 채 있었던 거야.
야니나에게 그 사진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즐거워하는 살인마들의 사진이었던 거야.
그 사진을 보고 그 사진 속에 웃고 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 거지.
경찰서장, 브렝트샥, 신부님 모두 그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어…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괴짜와 디지오에게 해주었어.
그들은 야니나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
그들은 야니나를 경찰서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야니나를 도망갈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야니나는 국경을 넘어 체코에 있는 고원으로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소설이 끝이 났단다.
어땠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평범한 범죄스릴러는 아니었지?
반려 동물들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신의 반려동물을 죽인 사람들을 알게 되면 어떨까.
야니나는 경찰에 신고를 해도 중죄를 받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더욱이 경찰서장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신이 직접 복수하겠다는 것…
…
3. 생명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지은이의 생각이
주인공 야니나의 생각에 많이 반영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은이 올가 토카르추크는 아마 채식주의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주인공 야니나의 동물을 소중히 하고, 나아가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고기를 먹는 이는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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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사실 인간은 동물이 그들의 고유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책무를 갖고 있습니다. 가축들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애정을 돌려주는 건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빚을 청산하고, 현생의 모든 업보를 명부에 기록하고 갚아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나는 동물로 태어나 살았고, 먹었고, 녹색 초원에서 풀을 뜯었고, 새끼를 낳았고, 내 체온으로 자식들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고, 둥지를 지었고, 내게 주어진 의무를 모두 완수했노라고 말이죠. 인간이 그들을 죽일 때 그들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어제 내 눈앞에 쓰러져 있었고, 아직도 거기에 있는 그 야생 멧돼지처럼 업신여김을 당하고, 진흙탕에 더럽혀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썩은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지옥으로 내모는 순간, 온 세상이 지옥으로 변합니다. 왜 다들 그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어때서 인간의 이성이 사소하고 이기적인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다음 생에서 동물들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속으로 자유로, 틀에 박힌 관습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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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엉겅퀴에게는 생명권이 없는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는 또 어떤가? 꿀벌과 말벌, 잡초와 장미는?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못한지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구멍이 많고 휘어진 거목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수세기 동안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그 나무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보기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유묭한 것으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이익은 누구나 알지만, 쓸모없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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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한 권 만으로 지은이 올가 토카르추크의 팬이 될 것 같구나.
그래서 그의 책들을 더 주문했는데 조만간에 또 읽어봐야겠구나.
앞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했잖아.
<흔적>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2017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도 탔다고 하는구나.
이 영화도 한번 보고 싶구나.
보고 싶은 영화도 많고 보고 싶은 책도 많고
너희들도 함께 놀고도 싶고, 빌린 책 리뷰도 써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산도 가고 싶고…
ㅎㅎ 하고 싶은 것만 엄청 많고 제대로 못하고 있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한때 유순했던 의인(義人)은 험난한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책의 끝 문장 : 모든 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야, 디지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아직 내게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다는 걸.
책제목 :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지은이 : 올가 토카르추크
옮긴이 : 최성은
펴낸곳 : 민음사
페이지 : 396 page
책무게 : 435 g
펴낸날 : 2020년 09월 18일
책정가 : 15,000원
읽은날 : 2021.04.24~2021.04.25
글쓴날 : 2021.05.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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