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20보> - 추석에 위에삥은 먹었습니까?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 하늘에는 열 개의 태양이 떠 있어서 너무나 더웠다.
어느 날 허우이(后羿)라는 사람이 화살을 가지고 아홉 개는 떨어뜨려버리고 한 개만 남겼다.
그제서야 지구상에는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되었다.
이를 감사히 여겨 하늘에 있는 신선이 내려와 그 허우이라는 사람에게 약 한 봉지를 선물로 주었다.
이 약 한 봉지만 먹으면 당신도 하늘에 가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창어(嫦娥)라는 아주 아리따운 아내가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헤어질 수 없어 이 약 봉지를 아내인 창어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알게 된 한 나쁜 사람이 오히려 자기가 신선이 되고 싶어서 이 약봉지를 탐내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허우이가 없는 틈을 타서 창어를 협박하여 약 봉지를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대로 빼앗길 수 없는 나머지 엉겁결에 그냥 자기가 삼켜 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하늘로 올라가 달나라에 안착하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와서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남편은 너무나 슬퍼 하늘을 본 순간 놀람과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날 밤의 달은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던 것이다.
게다가 달 위에는 자기 아내 창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서 자기 아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일과 음식을 탁자위에 차려놓고 달 속의 아내를 기념했다고 한다.
사람들도 달 위의 신선이 된 창어를 위해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창어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이 날이 바로 음력 8월 15일 추석이 된 것이다.
이곳 중국식 이름으론 중추절인 것이다.
그래서 이 날만 되면 중국인들은 모든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위에삥(月饼, 달떡? 달과자?)을 먹어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달을 감상한다는 것이다.
(成功之路 进步篇 读和写 118p~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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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까지 문을 여는 쇼핑가의 분위기. 푸단대학 부근의 우쟈오창의 쇼핑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지만 그리하여 그 유명한 위에삥이란 음식이 나오게 되었고 추석만 되면 사람들은 위에삥을 먹었냐고 묻곤 한다.
나는 이곳 뉴스를 틀 때마다 추석 동향을 전하면서 어느 상점에서는 최고로 큰 위에삥을 만들어서 전시를 하고 있는데 먹을 수는 없다는 둥, 또 어떤 곳은 사람들이 위에삥을 서로 사려고 몇 백 미터씩 줄을 섰다는 둥, 또 어떤 곳에서는 이미 다 팔리고 없어서 야단이라는 둥 하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도대체 그 위에삥이란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중국인 과외 선생님 중 한 사람인 남자 선생님께 물어봤다.
“도대체 그 위에삥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생겼어요? 한국의 송편 같은 것입니까?”
이 남자 과외 선생님은 한국 대구로 유학을 와서 경북대학교 경영학과를 올 여름에 졸업하고 고향으로 귀국한 젊은 총각이다.
입학해서 졸업하기까지 4년 이상 대구에서 살았으니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 터이니 말이다.
“아뇨, 송편하고는 많이 달라요.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달라요. 속에 들어가는 앙꼬가 수십 종류가 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맛도 다 다릅니다.”
아니, 이렇게 설명을 하니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고 싶은데 어디 가면 파는지도 알 수가 없고, 설령 판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로 중국에서 말하는 위에삥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곳은 워낙에 가짜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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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형 할인매장 같은 곳. 추석 분위기 나죠? 추석 선물이 엄청 많이 쌓였어요.)
그런데 막상 추석날이 되자 여자 과외 선생님이 ‘오늘 위에삥은 먹었어요?’ 하면서 비닐로 포장된 위에삥 세 개와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왔다.
회사에서 추석 전날 선물 박스로 준 것인데 여럿이 나누다 보니 세 개밖에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면서···.
아니,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사실 남자 선생님한테 ‘위에삥이 뭐예요?’ 라고 물은 것은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석에 자기 부모님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가서 다 같이 위에삥을 먹기로 했다고 하기에 몇 개 가지고 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추석이 되자 남자 선생님은 빈손이고 여자 선생님이 들고 왔으니 얼마나 반가웠으랴.
이리하여 드디어 그 유명한 위에삥을 먹어 보게 되었다.
과외 선생님이 직접 가지고 온 위에삥은 크기가 지름 5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인데 동그랗게 생긴 것이 마치 달처럼 생기긴 했다.
그래서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로 잘라 속을 확인했다.
겉은 일반 빵 재료인 것 같았고 안은 우리 만두나 송편 속하고는 많이 달랐다.
마치 양갱이 과자처럼 아주 세밀하게 갈아서 속이 보들보들하고 까만 편이었다.
어쩌면 찐빵속의 팥 앙꼬 같기고 하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비싼 화과자 속 내용물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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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샘이 저 맛 보라고 위에삥 몇 개 가져왔어요. 참 기특하죠?)
맛을 봐야 했다.
과외 선생님은 세 개 중 제일 왼쪽 것이 전통적인 위에삥 맛이고 나머지는 요즘 개량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속에는 육류를 비롯해서 채소 등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서 가게마다 다 다르다고 했다.
그 중 한 개를 조그맣게 썰어서 조심스럽게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음, 이것은 먹을 만했다.
속은 양갱이 먹는 것 같았고 겉은 초코파이 분위기가 약간 났다.
또 다른 것을 입에 넣었다.
아, 이것은 중국 특유의 향료 냄새가 나면서 삼키기가 약간 거북했다.
아마 고기를 갈아서 만든 것 같은데 향료 냄새가 너무나 진하게 났다.
그런데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오츠, 하오츠, 헌하오츠(很好吃, 맛있다) 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가져온 정성이 있지 어디 우리 입맛을 함부로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나머지도 맛을 봤다.
이건 딱 화과자 맛이었다.
이렇게 수십 가지가 있다는 위에삥의 맛을 단지 세 개로만 즐겼을 뿐인데도 목이 콱콱 막혀서 많이 먹을 음식은 못 되었다.
왜 만두 같은 것은 수분이 좀 있으므로 많이 먹을 수 있지만 송편 같은 것은 타박타박해서 많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 위에삥을 모두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은 일상생활에 쫓기다 보니 직접 만들어 먹는 집은 없고 가게에서 다 사서 먹는단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각종 재료를 곱게 갈아 앙코를 만들고 또 피를 가지고 둥글게 감싼 후 익힌다는 것이 많이 번거롭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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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알아듣지도 못 하는 TV 추석 뉴스 보면 외로울까요 안 외로울까요?)
그리고 이곳 추석 연휴는 추석당일부터 3일이다.
우리는 추석 전후로 해서 3일인 것에 비하면 날짜만 다를 뿐 기간은 같은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 가서 가족들끼리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우리와 같다.
그래서 뉴스 상으로 어느 고속도로가 얼마만큼 막히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보도하는 것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밤낮 구분 없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쉴 새 없이 폭죽을 쏘아 올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고를 하고 올리는 것이 아니므로 방안에 가만히 있다가 빵빠바빵 하고 갑자기 터지는 폭죽 소리에는 놀라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외국인인 내가 직접 가서 항의를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미리 일일이 찾아가서 다 막을 수가 있겠는가.
폭죽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곳 중국인들의 진정한 축제인 것을···.
그래도 설에 쏘아 올리는 폭죽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편이다.
몇 년 전 베이징에서 맞은 설은 폭죽 때문에 놀라 밖에도 못 나갈 정도의 악몽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는 중이란다.
화재나 화상 등의 안전사고 문제와 소음으로 인해 이웃에 방해된다는 쾌적성 문제 때문에 문화교육을 많이 강화한 덕분이란다.
어쨌든 타향에서 맞는 우리의 추석···.
혼자 겪다 보니 약간은 적적하기도 하지만 주위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덕분에 꼭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 밤에는 팔순을 넘긴 어머니께 전화나 드려 봐야겠다.
“어무이요, 저 상하이 오기 전에 아버지 산소에 미리 다녀왔습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2010년 9월 22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 보기좋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제가 가기전 혼자서 3주 가량을 정말 열심히 살았더군요. 가만보니 살림 전문가였어요. 대구서는 왕자님처럼 굴더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