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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에서 카주라호로
빨리 달리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처럼 인도에서는 모든 게 늦어 시간이 빨리 간다.
인도의 거리와 시간 개념은 우리의 딱 반이다.
30킬로에서 40킬로면 한시간.
한 시간에 갈 거리가 70킬로에서 40킬로로 주니 그만큼 시간은 짧아지고 나그네 갈 길은 바빠진다.
게다가 변수는 왜 그리 많은가? 순탄치 않은 것이 인생의 길이라던데
인도의 길은 모든 게 순탄치 않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모든 일에 괜찮아 지겠지 라는 희망을 담고 노프러블럼을 외쳐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도에 상륙한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철도청장이 날루 라는 것을 알았다.
있는 듯 없는 듯, 백성이 정치를 모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는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 날루 먹을 놈
하여간 날루 먹을 놈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도둑맞은 네 시간만큼 마음은 초조하다.
자씨에서 오르차로 달려가는 30여분이 상당히 길다.
저항기르 궁전에 붙어 있는 쉬스마할 호텔식당에서 점심도 먹는다는데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고 음식을 내 놓을 것인가?
해는 지고 갈 길은 먼 나그네 심정이 이럴까? 오르차를 앞두고 초조함만 넘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자 저 멀리 성채와 사원의 뾰족 탑들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16세기 라즈뿟 왕국의 수도였던 오르차는 사원과 왕궁만이 그런 시절을 말하지만 한눈에 봐도 한적한 시골이다.
마을에 가까이 갈수록 멀리서 보이든 사원들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저것은 무슨 사원 저것은 무슨 사원 설명을 하지만 말이 낯설어 연결이 되질 않는다. 마을을 지나 챠뜨르부즈 사원을 끼고 도니 주차장이다. 차에서 내리니 왼쪽에 챠뜨르부즈 사원이 있고 오른쪽 강건너로 궁전이 있다.
궁전안에 쉬스마할 호텔이 있고 그곳 식당에서 늦은 점심이 기다리고 있다.
궁전을 가기 위해서는 베뜨와 강을 건너야 하는데 궁전은 여의도와 같은 섬에 건설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곳이 라즈마할인 데 이곳에 매표소가 있다.
이곳에서 끊은 표는 궁전을 들어갈 때마다 보여줘야 하는데 단체로 끊은 표를 각자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검표 관리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름 끝에 마할이 붙은 건물은 모슬렘의 궁전이나 무덤을 가리킨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궁전이요 관에 들어가 있으면 무덤이다.
종말의 그날 마호메드에게 심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머물러야 할 집이 무덤이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기니 무덤을 더 호화롭게 꾸미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영생에 대한 욕심이 수많은 삶에 상처를 주고 얻었을 그 호화로운 집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과연 영생에 들 수 있을까.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격이 이러하질 않겠나.
더 나은 세상에로 윤회를 꿈꾸며 한 점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는 힌두나 불교와 비교된다.
인도의 식당들은 주문을 받은 다음에 비로소 요리를 한다는데, 쉬스마할은 예약된데다가 가이드 샨치가 이동 중에 전화로 독촉해서인지 예상보다 빨리 준비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자마자 바로 숟가락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잠깐 빈 시간에 쉬스마할 옥상을 올라가니 라즈마할과 그 너머 챠뜨르브즈사원과 람라자사원이 어울려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쉬스마할로 돌아오니 인도식 뷔페가 준비되어 있다.
몇 가지 커리와 흰 쌀죽, 통밀빵-아직도 어느 것이 난이고 달이고 짜파티인지 구분이 안 간다.-을 접시에 담아 와 먹는 데 맛이 좋다. 입맛에 맞으니 왁자하게 꺼내놓은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에 손이 가질 않는다.
먹는 대로 일어나 쉬스마할과 붙어있는 저항기르마할로 간다.
‘악바르 대제의 아들인 씰림왕자는 왕은 되어야 하겠는데 아버지가 빨리 죽지 않자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아들의 패배. 이곳으로 도망 와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빈번히 이곳을 침략한 악바르에 대항하며 씰림왕자을 지원한 이곳의 통치자인 바르 씽데오. 결국 1605년 씰림왕자가 저항기르 황제가 되었다. 이후 샤자한이 즉위하여 찬밥 신세가 될 때 까지 22년간 오르차는 전성기를 누렸다. ’
(론리프래닛 p805)
저항기르마할은 1606년 저항기르가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지은 건물이다.
3층 높이 정도 계단을 올라가면 1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중정을 두고 사방에 방을 둔 구조다. 중정의 한가운데에는 정사각형의 못이 있고 그 모서리에 팔각의 못을 파 놓았다. 계단이 있는 걸로 봐선 목욕탕 같기도 한데 건물 한 가운데 마당에 목욕탕은 안 어울리고 무슨 용도인지 상상이 안 간다. 모서리의 팔각원당의 못도 통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보이는 것도 모르니 눈 뜬 장님이 따로 없다.
나무를 보는 자는 숲을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궁전에서 헤매는 내가 바로 그 지경이다.
곳곳에 조각된 장식들이 멋지다. 사암을 깍아 세운 기둥과 이층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는 코끼리 상. 투각으로 만든 통풍창들의 문양. 문의 아치 장식도 멋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니 마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분주해지는 만큼 마음이 들뜬다.
조용히 완상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체를 느끼지도 못한다.
한적한 시골의 느낌이 좋은 곳이라 일정에 낀 오르차. 이런 촌구석에서 만난 유적에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눈을 빼앗겼는데 앞으로 볼 그 유명짜한 인도문화유적들은 또 어떨지
저항기르 궁전의 옥상에서 바라 본 풍경-기울어 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과 우거진 숲 위로 솟아난 챠뜨리 사원의 첨탑들 이들 사이를 유영하는 공기의 흐름과 그 뒤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지평선. -은 따듯하고 평화롭다.
가슴 깊이 박힌 이 풍경은 오르차를 떠올릴 때 마다 저 밑에서 비집고 올라와 나를 평화롭게 하리라.
좀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 머물렀어도 좋았을 텐데 다른 곳을 둘러볼 욕심에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일몰이 멋있다는 락쉬미나라연 템플을 가려하는데 길을 아는 사람이 하나 없다.
람라자템플을 가로 질러 릭샤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물어봐도 이상하게 자기의 릭샤를 타라는 사람도 없다.-지금도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다.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자기 릭샤로 때워다 주면 될텐데, 타고 가기엔 너무 가까워도 일단 태우고 볼 텐데, 이것이 어쩌면 오르차 사람들의 심성일 수도 있겠다.
일곱 살이나 먹었을까 어린 소년을 하나 앞세우고 나라연 템플로 간다.
언덕에 가렸는지 해는 이미 보이지 않고 잔광만이 비춘다.
일 킬로미터 남짓이라고 알고 있는 길은 걸어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이 길이 맞나 회의가 들고 생각이 많아져 낯선 길은 더더욱 길게 느껴진다.
여기서 태어나 이곳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을 아이에게 자꾸 맞나 묻는다.
새벽부터 진행된 일정이 힘들었는지 누군가가 해지면 뭐 볼 것 있냐고 가지 말잔다.
일몰이 목적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 안에 있다는 벽화도 해지면 볼 수는 없는 일
그래 그만 돌아갈까 망설인다.
재차 말이 나오고 아이는 다 왔다고 하는데도
‘그래 저 포도는 시어’ 하는 여우처럼 돌아선다.
돌아서고 나니 락쉬미나라연템플이 내 마음에 소금기둥이 된다.
나라연템플을 포기하니 아까 스쳐 지나갔던 챠뚜르부즈와 그 건너편 조그만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챠뚜르부즈사원)
(아요디아에서 가져온 라마상을 잠시 보관하려다 아예 템플로 바뀐 람라자사원...후에 여기있던 라마상은 챠뚜르부즈로 옮겼다)
(현재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언덕위의 사원.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대나무에 깃발을 꽂아놓았다.)
챠뚜르부즈에는 아요디아에서 모셔온 라마 상이 람라자템플에서 옮겨져 모셔진 곳이다.
이 두 곳을 구경하니 해가 져서 어둑하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아 분홍빛이 고운 람라자사원이 있는 광장으로 간다. 둥근 광장 주위로 점방들이 늘어서 있는데 환히 불을 밝히고 장사들을 하고 있다.
먹는 식당이 아니면 주로 장신구와 스카프등 직물을 파는 가게들이다.
직물의 특성상 쇼핑은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이뤄진다. 방바닥에 스카프나 쇼올을 쫙 펼쳐 보여주는 모습이 이불가게나 한복집에 와있는 느낌이라 많이 친숙하다.
일행과 합류해 쇼핑을 한다. 이곳은 내가 보았던 인도의 다른 곳과 달리 여인들도 점방에서 장사를 하는데 가격을 물으면 모두 옆에 있는 남자를 처다 본다. 자기가 알고 있는 가격을 말해야 할지 아님 바가지를 씌워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진한 눈빛이다. 남자들이 말하는 가격은 대체로 높았다. 부른 가격의 오분의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인도의 흥정, 말은 그래도 습관이 되지 않아 선뜻 후려칠 수가 없다.
악세사리가 조잡하여 결국 사진 않았지만 쇼핑하면서 만난 오르차 사람들은 숨겨진 도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순박하다.
목이 말라 야자열매를 사려고 했는데 서로 말이 통하질 않아 못 사먹었다. 야자를 잘라 주스를 먹게 해줄 수 있냐는 몸짓에 상대방도 몸짓으로 대답하는데 결국 안 된다 로 알아들었다. 카주라호까지 가는 버스에서 먹을 과일을 사고 있는데 민수라는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 현지가이드와 다른 일행이 우릴 찾아 왔다. 우리 때문에 출발을 못하고 있단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아직 6시 10분밖에 안 되었는데 모이는 시간까지 20분이나 남아있는데.
버스에 모일 시간에 서로 혼선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은 6시 30분이었고, 일부는 5시 30분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6시 30분에 모이라 했는데 중간에 해지는 시간으로 변경되었는데 그걸 전달 받지 못한 것이다.
해지는 시간은 5시30분이니 해지면 볼게 없으니 그때로 바꿨나보다.
흥정하든 과일을 민수보고 좀 싸게 해보라고 했더니 우리가 흥정하든 가격보다 더 높게 부른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든가?
자기의 고객보다는 과일 파는 인도사람이 민수에겐 더 소중했나보다.
우리가 흥정한 가격으로 몇 가지 과일을 사고 버스로 돌아가니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노프라블럼 하면 맞을 것 같으니 어색한 낯빛으로 미안합니다 사과를 한다.
카주라호까지는 다섯 시간 정도 가야하니 생리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주변에 화장실이 없어 버스를 호텔 앞에 댄다.
단지 화장실만 이용하기 위해서인데도 종업원들이 나와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관광객이 묵었는지 아리랑 노래 소리가 들린다. 인도에서 아리랑을 듣다니.
볼 일을 마치고 떠나는 버스를 호텔 종업원들이 배웅을 한다.
뭘 바라지 않고 베푸는 친절이 이런 것이구나 느낀다.
호텔 종업원의 미소같던 오르차
고졸한 맛을 풍기는 모슬렘의 궁전과 힌두사원이 사이좋게 마주하고 있는 오르차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던 점방의 여인네들
모두 정겨운 풍경으로 남으리라.
보름을 갓 넘긴 둥근 달이 동쪽에 낮게 걸쳐 있다.
2007.11.25
첫댓글 저 호텔 앞에서 보이가 아리랑을 부르길래 같이 불러 줬지요 화장실을 갔더니 보이가 친절히 손 닦을 수건을 들고 서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할수 없이 한푼 줬죠
저 호텔에서의 점심은 참 맛있었어요. 기차가 너무 늦는 바람에 한적한 오르차를 우리는 엄청 바쁘게 뛰어 다녔죠. 다보지도 못하구.지는 해 속으로 흐르는 강물이 인상적인 하루의 마무리 였어요.
아쉬움이 남아 다시 찾아야 할것 같은 오르차~
이제는 돌아와 앉으니...모두 그립습니다.^^*
호텔의 점심이 정말 맛있었어요....시간이 부족해 천천히 음미하지 못해 아쉬웠지만...암튼...인도는 한달 이상은 체류해야 인도를 좀 보았다고 할 것 같아요......우린 수박 겉 핥다가 돌아왔죠.....ㅠㅠ 그래도 좋았지만.....
뿌연 흙먼지 속에 빨리 어디론가 가고팠었는데...지금은 다시 그 속에 머물러 있고만 싶으니....흙먼지는 다 가라앉고 그리움만 새록새록 올라와서 미치겠네요~~ㅎㅎ..그 호텔에서 참새언니랑 저는 50루피나 주고 생수한병을 사 마셨어요~~ㅎㅎ
특급열차 안에서 기력을 다 소진했었는지 전 여기서부터 기운을 못차렸어요, 느긋하게 완상하고픈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