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세 번이나 울었어요.
8시 연속극 '결혼해주세요'를 보고는
자신의 존재감 때문에 서러워하는 여주인공이 꿈에도 그리는 가수가 되었지만
여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며 말하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울고...
8시 연속극 '이웃집 웬수'를 보고는
이혼한 여자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며 울고....
마지막 10시 연속극'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전실 자식에 대한 소홀함을 얘기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와
쓴 눈물을 삼키며 '내 자식은 여자가 싫답니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또 울고...
그러다...
내가 왜 이렇게 울고 울고 또 우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그저께 아침에는 암닭 한 마리가 죽고(털만 남은 채 누군가에게 먹히고...)
그제께 아침에는 올해 태어난 오리 한 마리가 죽고(털도 안 남긴 채 감쪽 같이 먹히고..)
이런 일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찡합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생쥐 소리도 아닌, 병아리 소리도 아닌 소리가 자꾸만 났어요.
뭐지? 뭐지?
그러면서도 가만히 하던 일을 계속했지요.
그런데 조금 후, 고양이 나나(원래 이름은 나두)가 뭔가를 물고 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어요.
앗!
그것은 바로 하얀 아기 토끼였어요.
"나나, 그것 놔!"
제 소리에 나나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나나, 내려 놔!"
산지기와 저는 소리 소리 지르며 나나를 쫓아갔지요.
하지만 나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어요. 나나는 개울 건너 저 멀리 산위로 올라갔지요.
숨을 헉헉 고르며....
나나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계속 고 작은 아기토끼가 눈에 어른거렸어요.
'내가 조금 더 일찍 나가봤으면...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아기토끼가 죽은 것에 대한 자책감에 마음이 괴로웠지요.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요.
"그래, 이게 바로 생존의 법칙이야."
한참 만에 고양이 나나가 돌아왔어요.
산지기가 다가가 큰소리로 야단을 치자, 나나는 슬금슬금 도망을 쳤어요.
하지만 고양이의 본성 상, 나나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죠.
움직이는 작은 동물이 굴에서 들락날락하는데 그걸 가만 두고 볼 고양이가 어디 있겠어요?
더군다나 너무 작아 꼭 생쥐 같았던 토끼였으니...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아도
눈앞에 고양이 나나에게 물려서
가늘게 울고 있었던 아기토끼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걸 어쩔 수가 없네요.
이 작은 꽃은 지난 번 된서리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요 작은 담쟁이 덩굴 잎도, 다른 큰잎들이 모두 비틀어지고 말라버린 반면
빠알갛게 자기 몸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렇듯
살고 죽는 게 자연의 법칙일진대....
아직도 키우던 동물의 죽음을 대하면 마음이 선선하지 않네요.
슬픈 마음이 아주 오래오래 가네요.
울고 울고 또 울고....
세 번의 눈물로
아기 토끼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낼 수는 없지만....
어제 흘린 모든 눈물을 아기 토끼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아기 토끼야, 하늘나라에 가서 잘 살아라.
나나야,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그리고 생쥐와 토끼를 빨리 구분하기 바란다.)
첫댓글 눈이 부으셨겠어요. 저런,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군요. 고양이코도 한코 할 것 같은데... (생쥐와 토끼 냄새는 분명히 할 듯). 샘,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가엾은 아기 토끼의 모습이 내내 눈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네요.오늘까지도 우울해요. 이렇게 글로 풀면 죄책감이 덜할까 하여 중얼거려봅니다.
그랬군요. 원래 한 가족이 되면 친해지기도 하지만 본능이니 어떡하겠어요. 고양이와 다른 동물이 친해지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고양이를 안고 가서 닭 토끼들을 보여주고 '우리 가족이야, 물지마' 라고 하면 잘 지내는 경우도 있어요, 나나가 앞으로 잘 지내야 할 텐데요~~
나나를 잘 훈련시켜야겠어요. 나나는 엄마 연두와 달리 야생성이 많답니다. 그러니 나나를 탓할 수도 없지요.
아기토끼가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그걸 무모하게도 한 지붕 고양이에게 잃으셨으니......더 불쌍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