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주산
내일부터 반가운 비가 내린다니 오늘은 고령 주산의 대가야왕릉을 가보기로 하자
산 이름이 主山인데 아득한 옛날에는 이산(耳山)이라 했던 모양이다
산 위에는 山城이 있는 모양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가야체험축제가 열려 어찌나 붐비던지 주차할 곳이 없어 멀찌감치 남의 상점 앞에 주차승낙을 받고 올라갔다
왕릉을 보러 온 것이므로 축제장 모습은 생략하고 박물관 관람은 그 전에 몇 번 본 바이므로 생략하고 바로 산을 올랐다.
산 아래 마을 이름이 지산인데 이 마을에 못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을에서 오늘 가야할 주산을 바라본다.
능선 위에 왕릉들이 있는데 사진의 우측 빨간 표시를 한 부분이 오늘가본 마지막 왕릉이다. 더 이상은 발굴중이어서 통제구역이란다.
박물관 옆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왕릉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라기보다 산책길이었다.
대가야의 설명은 왕릉 산책로 옆에 세워둔 표지판을 보는게 더 나을 듯
내려오는 사람들은 주로 고령향교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AD562년에 산라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이만한 크기의 규모와 숫자, 그리고 그 시대의 인구 수 등을 고려하면 당시로서는 대단한 힘을 가진 나라 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금처럼 길도 없는 당시에 경주의 신라군사가 경주에서 영천, 대구를 거쳐 산 넘고 강 건너 그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와서 나라를 빼앗았다니 신라도 대단하지만 대가야가 무너진 이유가 더욱 궁금하다.........
이 왕릉이 지산동에서 올려다 본 마지막 왕릉(빨간 표를 한)이다
계속 올라 가면 산성이 있는 주산의 정상으로 갈 수 있지만 고분발굴 중이므로 출입이 제한된 통제구간이다.
보이는 소나무 그늘아래 준비해 온 간단한 점심을 먹고 돌아서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본 왕릉들
내가 이 곳에 처음 온 것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나서이다.
왕릉의 좌측은 고령읍이 내려다보이고 우측은 낭떨어지고 마을이 없는 산속이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그 때는 도굴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도굴상태는 왕릉의 꼭지점에서부터 우측 절반이 낭떨어지 밑으로 파헤쳐저 있어 릉 내부가 몽땅 털렸음을 볼 수 있어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새롭다.
고령읍이 반쯤 내려다 보이는 파노라마
지산동 44호 고분의 내부 단면도
고분에 핀 이름 모를 꽃은
그 옛날의 영광을 이야기 해주는 듯 하다
이 할머니들은 이야기 하다 지첬는지 꼬부라지고
이 할머니는 햇노인이어서인지 길손에게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영광스러웠던 옛 이야기를 하기도하고
때로는 여인의 젖무덤처럼........
고분군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저 산책로 끝자락에 "임종체험관"도 설치해 놓았는데 ....
한번 체험하는데 1,000원
한 여인이 들어갔다 나오더니 무었을 느꼈는지 울고 있었다.
친구에게 들어가 체험해 보라 했더니 들어가 누우면 영영 깨어나지 못 할까 겁이나서 못 하겠단다 ㅎㅎㅎ.
대구로 돌아오는 길
이 곳은 옛길이다
지금은 고령에서 위천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설되어 통행인들이 주로 그 쪽으로 다니며 이 길은 관광객이나 나처럼 백수들이 다니는 조용한 길이 되었다.
다리를 넘어 산정으로 가는 길이 이어지지만
오늘의 산행은 여기서 그만.....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광경
고령읍이 반 역광속에 아득히 보이고
눈 아래 쉼터에는 일본인 관광객들 한 무더기가 버스를 타고 지나다가 이 곳에 내려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