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25 연중 제21주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3)
우리 생태복지마을 공동체 식구들은 코리아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동반하며 주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고 봉사하는'(Ora et Labora) 삶을 삽니다.
그저께는 멀리 남파랑길 경남 고성 구간에서 베네딕토 성인의 삶을 따라 '기도하고 봉사하는'(Ora et Labora) 삶을 사는 올리베따노 수도원 친구 아빠스님이 봉헌회 회원들과 함께 해파랑길 속초 고성 양양 구간에 있는 우리 밥집을 찾아 주어, 너무 기쁘고 고맙습니다. 우리는 공감과 연대와 나눔으로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는 순례자입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제시하시는 '자기계시'(ego eimi)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두 부류의 반응이 있습니다. 각 부류의 대표 주자는 베드로와 이스가리옷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부류를 靈과 肉으로 구분합니다. 믿음과 불신으로 구분합니다. 생명을 주는 영과 믿음, 반면에 죽음을 야기시키는 肉과 不信으로 구분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영과 육의 이 두 부류를 갈라 5장에서 성령과 육정에 따른 삶으로 구분하여 그 열매, 결과를 '성령의 열매'와 '육정의 열매'로 구분하여 자세하게 제시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육정의 열매는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 5,13-26 참조)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 죄와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과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의 삶에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담과 하와가 잠시 주님이신 하느님을 잊고 뱀의 유혹을 선택한 것처럼,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여지도 남겨놓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탄의 유혹에 빠진 사람에게 다시 하느님의 나라를 열어주셨습니다. 선택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영과 믿음이냐, 아니면 육과 불신이냐, 선택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사실 누구나 다 영과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理性으로는 그것을 원하면서도 몸이 말을 안듣는 것'이 문제입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7,25)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파견되어 오신 것은 육신을 위한 빵 뿐만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을 위해서입니다.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여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빵의 기적은 바로 이 표징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지어 제자들 마저도 이 표징을 보지못하고 깨닫지못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죄인들만 칮아 다니시고,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말씀만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것이 못마땅합니다.
다행히 열두 사도 가운데 예수님을 팔아넘길 이스가리옷 유다를 제외한 사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심을 압니다. 예수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음'을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음을 그들은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에집트에서 육체적으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모세를 통하여 구해내셔서 이 가나안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노예생활을 하는 이 세상을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救贖사건을 통하여,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시어 최종 목적지인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빵의 표징으로 이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생태복지마을 공동체 식구들의 코리아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동반하며 주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고 봉사하는(Ora et Labora), 삶이 바로 생명을 주는 靈과 믿음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