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 한국전쟁 당시 38도선 이남에 있었지만 북한의 원산, 함흥처럼 일제강점기 시절 산업 시설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곳이라 노동자 파업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운동이 다른 지역보다도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한국 전쟁 발발 시에는 인민군 점령하여 인민위원회를 설치할 만큼 북한이 오랫동안 점령했던 곳이기도 하다. 인구로 따져도 강릉 다음으로 삼척이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구 10만이 훌쩍 넘을 만큼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찾아온 곳이 삼척이었다.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은 1960년~1970년 삼척에 살다가 월북한 남파공작원 2명이 남쪽으로 왔다가 북한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삼척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그들을 돌봐주었던 이유만으로 간첩단으로 몰려 심한 고문과 폭행, 그 휴유증으로 자살과 사회적 낙인 속에 살아가야했던 피해 사실을 밝혀낸 책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1979년 6월 14일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갈남리에 살고 있는 진항식 씨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리에 살고 있는 김상회 씨가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수사와 고문을 받게 된다. 남파공작원 진현식의 동생이 진항식 씨이고, 북한으로 복귀하던 중 부상당한 진현식을 도와준 이가 김상회 씨다. 간첩 사건 중에는 실체가 분명한 것도 있지만 거의 조작에 가까운 사건도 많았다. 간첩사건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정치적 반대파를 제압하고 대중을 위협하는 대표적 수단이었다. 1979년 같은 해 일어났던 남민전 사건은 관련자들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인지도가 높았던 반면에 삼척 사건은 강원도 시골의 평범한 주민들의 사건이었다. 공안당국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전체를 이데올로기적 치안의 시각으로 전면 제구성해 간첩사건으로 만들어냈다.
남파공작원이었던 진현식과 그 가족 및 친인척들은 진현식을 숨겨주고 도와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죽은 줄 알았던 피붙이가 살아 돌아왔는데 나 몰라라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경찰은 진현식과 그 가족 및 친인척을 묶어 간첩단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폭력이었다. 생산적이면서 순종적인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리바이어던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남민전과 삼척 사건은 간첩의 정치학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삼척 사건은 지배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사건이다. 정치적 고비마다 맞춤형 공안사건들이 자주 일어났던 것을 반추해 보면 삼척 사건은 1979년 당시 YH노조 신민당사 점거 농성과 부마항쟁과 기묘한 함수 관계를 가진다.
남파공작원의 장기 은신으로 두 가족들 모두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과 갈등의 삶을 살았다. 피붙이를 단지 숨겨둔 게 죄라면 죄였던 것이다. 2016년 37년 만에 전원 무죄 판결이 났지만 그동안 입었던 피해는 돈으로도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굵직한 조작 사건들에 가려 잊혀졌던 일반 주민들의 피해 사례가 담긴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