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언제나 믿는 사람들의 몫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 인사말은 안식일 다음날,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그들에게 전한 이 인사말에 제자들은 기뻐합니다.
이 인사말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창에 찔린 옆구리와 못에 박힌 손을 보여 주고, 숨을 불어 넣으며
사도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토마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나타나 토마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 줍니다.
그제야 토마스는 비로소 믿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과연 교회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믿고 있을까요?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 중,
부활을 확신하는 비율이 30%,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비율이 30%,
나머지는 부활을 믿기는 하지만 확신이 없는 신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마저도 부활을 확신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데 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을까요?
만약에 여러분은 부활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사도 2,42~47에서는 ‘빵 나눔’ 예식을 통해 예수님 부활의 현재성을 드러냅니다.
또한 1베드 1,8~9에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본문을 통해 볼 때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지는 못하지만
그분의 실존을 체험하고 있다는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잘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은 언제나 믿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부활을 증명해 보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는 나타났지만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해야만 믿겠다고 한, 토마스의 믿음이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 많은 토마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글 : 崔榮喜 Paul 神父 – 광주대교구
너에게 주는 선물
첫 글이니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이윤지 마리아라고 합니다.
몇 달 전, 4주에 걸쳐 저의 이야기를 주보에 실어보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보통 부담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올해의 새로운 미션으로 여기고 해봐야겠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가족들과 주일마다 성당을 다닌 전형적인 모태 신앙 신자입니다. 성당에 대한
저의 기억은, 미사 시간에 유아 방에서 뒹굴었던 단편적 기억을 제외하곤 첫영성체
교리를 받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집안끼리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 한 명과 저 그리고 제 오빠와 함께 첫영성체를 하였고,
예식이 있던 날, 찍은 사진은 지금도 제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진이지요.
‘엄마가 모신 성체의 정체(?)가 궁금해 입을 벌려 보라며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던 내가 영성체라니!’ 정말 황홀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주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를 채우신다는 데 성체를 받아 모시면 내가 천사가 되는 것 아닐까?’
저의 끝없는 설렘은 평소에는 입을 수 없었던 하얀 드레스와 선물 받은
미사보 덕분이기도 했지만, 저는 그날 다시 태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의 십대는 거의 성당 주일학교에서 안전하고 충만하게 채워져 갔습니다.
그 흔한 중2병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 넘어갔다고 하면
이 글을 읽으실 부모님께서 기가 차실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은 그랬습니다.
교리가 끝나면 친구와 성당 앞마당에서 놀았고, 시험 기간에는 성당 지하
교리실에서 친구들과 공부 반, 수다 반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며 지냈습니다.
평일에도 언제든지 성당에 오면 친구들 중 누구 하나는
저와 같은 생각으로 먼저 와 있었고, 어쩌다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설 때면
왠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성가대 활동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행복한 추억으로 자리한답니다.
제게는 성당 친구들이 제일 소중했고 친구들과 함께 노래할 때 행복했습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미사 시간에 고개 숙이고 앉아 펑펑 울기도 했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에는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며 꽉 찬 연말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올해 저의 큰딸 카타리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잦은 이사에 아직 주일학교 경험을 못 해본 큰딸에게 올해는 꼭 주일학교라는
주님의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제는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게 해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신자인 부모로서 유아세례 이후 제가 줄 수 있는 두 번째 선물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엄마로서 마음이 설렙니다.
저의 엄마도 그러셨을까요? 오늘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신앙을 갖도록 키워주신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 든든하다고 말입니다.
딸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딸아, 엄마가 누리는 최고의 행복은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고,
함께 기도하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란다.
이제 엄마가 받은 최고의 선물을 너에게 다시 선물할게.”
글 : 이윤지 마리아 –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