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라.
맨손으로 이 땅을 떠나야 할 때 주님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라.
에디오피아 북부 지역의 내전 소식은 국가에서 외신을 통제하는 바람에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매일 쏟아지는 자극적인 소문에 사람들은 그 진위를 밝히려 했고, 내가 몸담은 학교와 교민 사회와 각국 공관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나는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 나라 친구들과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 도울 일이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지인들도 많이 걱정하는데….’
갈피를 못 잡는 와중에 상황은 점점 악화됐고, 대사관에서 공식 철수 권고가 내려왔다. 마침 진료차 한국에 가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들어가서 같이 나올까?”
나는 말했다. “… 생각해봤는데 아직은 여기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힘들어하는 현지 친구들 곁에 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의 대답은 매우 짧았다. “응, 맞아.” 남편도 이미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힘들까 봐 내 결정을 따르고자 먼저 물어봐 준 거였다.
며칠 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 가족은 내가 속한 학교의 결정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확인되는 자극적인 뉴스와 이에 불안해하거나 불필요한 소문을 확산하지 말라는 학교의 권면, 동요하는 외국인 사회를 겨냥한 현지인들의 비판 섞인 말과 공감하는 시선, 교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대사관의 권고, 거기에 우리를 걱정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초조한 연락이 하루하루를 넘치게 채워갔다.
그러던 중 반군 세력이 수도인 아디스 아바바에서 육로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학교에서는 외국인 직원 전원에게 일시 철수 권고를 내렸고, 가능한 가정은 옆 나라인 케냐로 이동하여 함께 기도하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다만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피난’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비상 대처 및 학습 정상화를 위한 교사 리트릿’이라는 이름으로 출국했다.
예민한 지침과 권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동료들 사이에 오가는 불안한 대화, 결정의 순간마다 엇갈리는 반응, 하나둘 본국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지켜보며 지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우리를 안심시키며 ‘내 나라에서 너와 네 가족이 다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라며 되려 출국을 권하는 에티오피아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에 부끄러움과 미안함, 고마움이 수없이 교차했다.
현실이 피부로 와닿은 건 짐을 싸면서부터였다. 여행이나 이주가 아닌 이런 이유로 짐을 꾸리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나 떠나있을지, 돌아올 수는 있는지, 어디로 갈지조차 막연한 상황에서 짐을 싸기가 이토록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치 머리가 작동을 멈춘 듯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짐을 얼마나 싸야 할지 몰라 가방 앞에 멍하니 있는 세 아이에게 나는 찬찬히 말해주었다. 우선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꼭 필요한 보름치 옷가지를 챙기게 했다. 그다음엔 각자 소중한 물건을 챙기되 부피가 너무 크거나 가져가기 어려운 건 포기하게 했다. 나 역시 아끼던 그릇, 친정엄마의 마음이 담긴 집기, 동생이 선물해준 장식품과 옷가지, 가족 여행 때 모은 기념품 등을 가방에 넣었다. 골똘히 고민하며 가져갈 물건을 고르는 아이들의 얼굴에 아쉬움과 속상함이 스쳤다.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에티오피아를 떠나있는 시간뿐 아니라 지난날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무얼 소중하게 여기는가? 반드시 가져가야 할 만큼 소중한가? 그럼에도 가져갈 수 없는 건 무엇인가? 그 안에 담긴 가치와 기억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을까? 반대로 소중하진 않지만 가져가야 하는 건 무엇인가? 그만큼 꼭 필요하고 유용한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가치를 둔 물건들은 죄다 가져갈 수 없는 거구나. 맨손으로 이 땅을 떠나야 한다면 주님께 가져갈 수 있는 게 가장 소중한 것이겠구나.’
머리로 알던 게 가슴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건 지혜로운 일이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 행 3:6
- 마르투스 : 증인, 김태훈
마르투스 : 증인
규장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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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언 9장 10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고린도후서 4장 17-18절
† 기도 하나님,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은 이 땅 떠날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임에도 그것에 연연하며 살았던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땅을 떠난다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이 지혜임을 기억하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당신이 되길 바랍니다.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