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 참외 어제 옆집 아줌마가 가져온 건네 맛이 참 좋아'
식사 후 건네준 참외가 요즘 롯데몰에서 파는 성주 참외보다 특별하다. 그래,
'그거 어디서 어떻게 구입했는지 출처를 알아봐. 옛날 모시던 오*례 여사 있었잖아? 과일 고르는 솜씨 얼마나 좋았어?'
잠시 옛날이야기 나왔다.
'회장 사모님 차 운전하던 소기사 있었잖아? 그가 어느 날 사표 들고 오길래, 아니 소기사 왜 그만둬?
하고 물었더니,
'남자가 창피해서 사모님 차 못몰겠어요? 일주일에 몇 번 돈암시장 가는데, 가면 제가 바구니 들고 따라다니는데, 갈 때마다 사모님이 온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물건은 사지도 않고 값만 물어보고, 그렇다고 살 때 돈 후하게 내는 것도 아니면서 까다롭게 흥정만 해서, 상인들이 사모님만 보면 고개 돌리고 벤츠 타고와서 그런다고 입을 삐쭉거리는데, 남자가 창피해서 못 따라댕기겠어요'
한다. 돈암시장은 사모님이 화양동 이사 오기 전부터 60년 단골이다. 그래,
'소기사. 당신은 내가 회장님 모시고 덕소에 갔을 때 그때 채용했잖아?'
과거 일 회상시키면서 그 자리에서 보너스 얼마 올려준다며 달랜 적 있다.
그런데 전라도 양반집 출신 사모님은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하다. 과일 하나를 사도,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지, 몇 월 몇 일경에 나온 것이 맛 좋고 향이 좋은지 안다. 그 사모님이 유독 과일은 나에게만 권하여, 회장 댁에 출입하던 여비서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사모님은 박사 아들 셋, 회장님 외는 절대 과일 내놓는 법 없고, 심지어 계열사 사장이 와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다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댁에서 과일 대접 받은 김에, 내가 옆에 미스 조, 미스 이, 두 사람 불렀다. 그리고 사모님 피알을 해드렸는데, 원래 내가 그룹 홍보 책임자 30년 했다.
'미스 조, 미스 이, 두 사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사모님이 내놓은 이 사과 한쪽은 향과 맛이 특별해서 다른 사람이 고른 사과 한 박스 보다 더 가치 있어. 사모님은 과일의 산지와 출하 시기까지 빠꼼히 다 아셔. 그렇게 골라오시기 때문에 가치 있는데, 이건 자네들이 대학, 대학원 다녀도 배울 수 없어. 자네들은 대학 교수보다 훌륭한 분 한테 지금 배우는 거야. 공부하는 자세로 사모님 일거수일투족을 배워.'
면전에서 이렇게 말했으니, 여심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여자 마음은 갈대 아니던가. 사모님은 강진 초등 출신으로, 평소 과일과 기타 식재료 구하는데는 은근히 자부심 있지만, 대학 교수보다 훌륭하다는 비서실장 말은 얼마나 근사하게 들리겠는가? 사모님 큰아들이 나보다 네 살 위다. 그래 나를 아들처럼 상냥하게 대해주셨다. 참외 먹으며 잠시 자애롭던 그분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첫댓글 사모님 모시는 솜씨가 보통이 넘습니다.아무쪼록 대단한 인재임에는 들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