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그들의 일생을 지배하고, 생활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유소년기는 바라문 학자인 베스바시드라. 굿산데브디 두 가정교사에게
문무(文武) 양면에 걸친 교육을 받았다.
바라문교의 리그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대해서는, 주로 귀동냥으로 배웠으며,
신불(神佛)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의 인도 사회는,
바라문(僧)을 최고로 크샤트리야(武士), 베샤(商工人), 수드라(奴隸)라는
네 단계의 엄격한 계급제도가 있어서 인간의 사회생활을 구속하여
수드라는 영원히 수드라이며 그 위의 베샤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일본의 봉건사회의 사농공상(士農工商)보다, 더욱 지독한 것이었다.
사농공상은, 말하자면 봉건사회의 경영적 입장에서 이룩된 계급제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인도 사회의 경우는 한 나라 안에,
4개의 소국, 부족이 존재하듯,
생활에 필요한 것 이외에는 말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마치 동일 민족 안에,
네 개의 인종이 존재하여 계급제도는 소위 인종차별 제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것들 하나하나의 계급 속에는 더욱더 세분된 계급제도가 있어,
바라문 속에서도, 하급(下級) 바라문은 영원히 하급 바라문이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산림 생활에 들어간 수행 그 자체는,
바라문의 최종 코스였던 사로몬으로서의 수행이었다.
수행자 가운데에는 트집 잡기를 좋아하고 우월감에 빠진 자들도 많았으며,
종교적인 사고방식, 사상은, 각양각색이었다.
고타마의 눈앞에서 선정(禪定)에 든 바라문의 수행자는 어느 쪽인가 하면,
깨달음때문이라고 하기보다 입산 생활이란 하나의 의식(儀式) 속에
자기 자신을 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갖고 있던 것이다.
고타마는 수행자가 일어서기를 기다려 함께 냇가에 내려가서 몸을 씻었다.
그 늙은 수행자는, 그러한 수행에, 아주 익숙한 것처럼, 태연하게, 몸을 씻고 있었다.
고타마는 선정의 자세에 대해서, 이 노승에게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낮은 단계의 사고방식이었다.
선정의 목적은 일체의 잡념을 없애고, 무(無)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무(無)가 되었을 때,
불(佛)이 나타나고, 자신과 불(佛)이 일체가 된다는 것이었다.
ㅡㅡㅡ 상념(想念)을 무(無)로 한다.
₍₁₎명상삼매(瞑想三昧)는 사람에 따라서는 잡념을 멀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하지만 잡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바로 부처의 경지에 어떻게 해서 이어진다는 것인가,
무사의 무술 연마에서도 무념무상이라는 말은 자주 쓰이고 있다.
자신이 무(無)가 되면 상대의 움직임을 알아서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무념무상이라는 마음의 상태는,
인간이 호흡을 하고, 의식이 눈뜨고 있는 한
그러한 순간은 생기더라도, 영속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러한 마음의 상태는 깨달음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단지 상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고타마는 일 배하고 자기 처소로 돌아왔다.
고타마는 가야 다나를 스스로 고른 수행장으로 마음을 정하고 깨달을 때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카필라를 떠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나,
사로몬으로서의 수행은, 이젠 판에 박힌 듯 익숙해 있었다.
고타마는 선정(禪定)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행정(行程)을 살펴보았다.
출가의 출발점은, 우선, 밧지국의 수도 벳사리, 코살라국의 수도 시라바스디,
마가다 국의 라자그리하, 캇시국의 바라나시, 그리고 이곳저곳 각지를 유행하고,
가야다나에 길을 물어가며 겨우 도착했다.
여러 곳을 편력(遍歷)한 이유는,
스승으로 모실만한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스승으로 모실 분은 한 사람도 없었다.
벳사리 교외(郊外)에 있는 아누프리야의 숲,
그 남쪽에 위치한 삼림지대에는 와크바 선인(仙人)
거기서 다시 서남쪽에는 아라라 카라마 선인의 수도장이 있었다,
아누프리야의 숲에서 수도장을 바라보면,
마치 풍경화를 보는 듯, 산수가 조화되어, 마음이 씻기는 느낌이 들었다.
고타마가 이곳을 밟았을 때는, 생각지도 않은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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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