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청제명(兼聽齊明)
많은 의견을 고루 듣고 매사를 밝게 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兼 : 겸할 겸
聽 : 들을 청
齊 : 가지런할 제(齊/0)
明 : 밝을 명(日/4)
출전 : 순자(荀子) 第12 군도편(君道篇)
(군주의 도)
이름은 순황(荀況). 자는 순경(荀卿).
공맹사상(孔孟思想)을 가다듬고 체계화 했으며,
사상적인 엄격성을 통해 이해하기 쉽고
응집력 있는 유학 사상의 방향을 제시했다.
유학 사상이 2,000년 이상 전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유교철학을 위해 공헌한
순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후대의 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보는 그의 염세주의적
관점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이룩한 많은 지적인 업적이 흐려 졌다.
12세기 초 성리학의 출현과 함께
그의 사상은 냉대를 받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그의 본명은 순황이지만 보통 순자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자'(子)라는 글자를
철학자들의 이름에 존칭으로 붙였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조나라 출생이라는 것, 몇 년 동안 동쪽에 있는
제(齊)나라의 직하(稷下) 학파에 있었다는 것,
그후 중상모략을 받아 남쪽의 주(周)나라로 옮겼고,
BC 255년 그 나라의 지방 수령을 지내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곧 죽었다는 것
등이 알려진 사실의 전부이다.
유가철학의 발전에서 순자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의 주요 저작인 '순자'의 역사적인 영향력에서 볼수 있다.
전체 32장인 '순자'는 대부분 그 자신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데,
후대에 수정되거나 위조되지 않아서
원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순자'는 중국 철학 발전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논어, 도덕경, 맹자, 장자 등과 같은 초기 철학 서적들은 일화,
경구(警句)로 채워진 서술양식을 가지고 있어서
당시의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더 이상
설득력있게 전달해 주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순자는 유가 철학자 가운데
최초로 스승의 말과 대화를 기록한 제자들의 글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쓴 체계적인 논문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다.
또한 총론적인 설명, 연속적인 논증,
세부적인 상술, 명료성에 중점을
두는 엄격한 서술 형태를 취했다.
순자의 가장 유명한 말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수양에 의한 것일 뿐이다"이다.
이른바 '성악설'이다.
그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수양철학이다.
만일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둔다면 이기적이고 무질서하며,
반사회적이고 본능적 충동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주장 한다.
사회는 개인이 도덕의식을 가진 인간이 될 때까지
점차적으로 이끌고 도야시켜 사회에 교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군주가 지켜야 할 지극한 길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至道大形, 隆禮至法則國有常, 尚賢使能則民知方.
지극한 도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군주가 예를 융성하게 하고 법을 높이면
나라는 변함없이 안정을 유지하고,
어진이를 숭상하고 유능한 등용하면
백성들은 자신들이 갈 방향을 알게 된다.
纂論公察則民不疑, 賞克罰偷則民不怠, 兼聽齊明則天下歸之.
공론을 모아 공정하게 살피면 백성이 의심하지 않고,
신상필벌하면 백성들이 나태하지 않으며,
백성을 말을 널리 듣고 분명하게 살피면 천하가 귀의한다.
然後明分職, 序事業, 材技官能, 莫不治理, 則公道達而私門塞矣, 公義明而私事息矣.
그러한 연후에 명분과 직책을 분명히 하고
사업을 순서 있게 하며 재능과 기술자를 능력에 맞게 등용하여
잘 다스리면 공적인 도리가 통하고 사적인 문이 막히게 되니
공공의 의리가 밝아져서 사적인 일이 종식된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