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이전 예수님을 만나기전 제 삶은 사울이 바울되기전 보다 더욱더 하나님과 원수된 자로써 망나니같은 삶을 살았고
98년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저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형의죽음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분명한 상태였고, 제 나름대로 조사해 본결과 그것은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도 원한관계에 의한 타살임을 알게된 저는 무당들과 불교만물상 등을 찾아다니며 형죽인 원수를 저주하며, 복수하기로
결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불교상에서 염주를 사가지고 나오던 저는 하나님이 알게 해주셨겠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 있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성경말씀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라 였습니다.
이 말씀도 지금은 주님이 주셨다는 것을 믿지만 그때는 그저 용서하고 싶어서 용서했습니다.
그 얼마후 1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시던 술로 인해 알콜중독이었던 저는 형이 죽었다는 충격등으로 마음에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 결과 심각한 우울증과 환청, 환시, 정동장애, 인격장애, 등으로 괴상한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급기야 저는 말하기는 챙피하지만 그 사람 많은 수유역에서 발가벗고 뛰는 행동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그때 예수님을 영접할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 정신은 아니였지만, 예수님을 안 저는 마냥 기뻤습니다.
처음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는 시설이 굉장히 좋은 병원에 입원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달 만에 퇴원한 저는 또다시 괴상한
행동을 시작했고,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정신병원은 치료시설과, 수용시설, 2가지가 있습니다.
치료시설은 시설도 좋고, 음식도 좋고, 환경도 아주 좋지만 수용시설은 말그대로 포로 수용소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2번째 입원 하기까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무리를 해서라도 아들을 살려야 겠다는 부모님의 의지로 빚을 내면서 까지 수용시설
보다 비용이 거의 열배나 되는 치료 시설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번째 퇴원 후 또 다시 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저를
입원시켜야 했던 부모님은 이번에는 아주 비용이 싸게 드는 수용시설에 저를 입원 시키셨습니다. 그 시설에 입원한 저는 다행히도
첫날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을 시설에서 만날수 있었고, 그것이 예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부터 그 예배에 참석 하려고
했지만 수용시설에서 주는 약은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제 대로 걸을수도 없었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흐르고, 말을 더듬어서 제대로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아 어떤 때는 삼사일을 꼬박 새운적도 있습니다.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태는
중풍맞은 환자를 상상하시면 될것 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느 천사 같은 환자가 저를 24시간 간호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먹지 못하면 같이 먹지도 않았고, 내가 잠을 못자면 날밤을 새워가며 저를 재워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다 주님의 은혜였음을 압니다.
그뿐아니라 낮에는 그 사람도 중풍병자 였는데 전에 안마를 배운 사람인데 하루에도 두 세번씩 저를 안마하러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 두분다 무엇을 바라고, 저에게 잘해 준것은 아니였습니다. 거동을 거의 못하기를 한달여 되었을때 보다못한 의사와 간호사가 논의를 한끝에 저에게 링거와 영양제 그리고, 여러가지 부작용 주사를 놔주었고, 저는 기적처럼 몸이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바로 그날 그 수용시설에는 매일밤 8시에 예배가 있었는데 그날 부터 저는 예배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배에는 보통 세명에서 다섯명정도가 참석했고, 기도도 없이 주기도문과 찬송가, 사도신경으로 끝나는 간단한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 예배가 저는 너무나 좋았고, 다음날 부터 예배 시간만을 기다리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가 8시에 시작되면 저는 7시에 찬 지하수로 목욕을 하며 예배를 준비 했습니다.
그 수용시설에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탁구와 TV시청, 일주일에 한번 있는 수요예배가 프로그램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은 혹시 아실찌 모르겠지만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십자가 고상이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십자가 고상을 하루 종일 보며 또한 도무지 내용도 알수 없는 시설비치용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매일밤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하여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일상의 낙이였고, 하루종일 배운찬송가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그러기를 두달 저에게 굉장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시설에서는 물론 담배 피우는것이 나쁜것은 알지만 담배를 필수 있게 해주었고, 그 담배는 하루에 일인당 다섯개피로 제한 되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일상의 낙이 오로지 담배피우는 것이 시설에 있는 백여명의 환자의 낙이 였습니다. 입원 2달후 생긴 굉장한 사건은 제게 식당봉사의 일이 생긴 것이였습니다. 식당봉사를 하면 담배를 마음대로 사서 피울수도 있고, 또한 봉사의 댓가로 시설에서 담배를 주기도 했습니다. 시설에서는 오로지 간식과, 담배가 많은 사람이 부자로 취급받았는데 저는 그 부자 다섯명중에 한명으로 택해진 것입니다. 담배가 생기면 저는 담배 때문에 어려움을 격는 다른 환자 들에게 제가 가진 담배를 마음껏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98년도에 저는 시설에 있었기에 잘 모르지만 그해 여름 무척 많은 비가 온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불행이 일어 났습니다. 눈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 눈병으로 저는 격리 수용 되었고, 그 격리된 중환자 실에는 열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곳은 한여름에 낮에 는 온도가 사십도가 넘게 올라가는 아주 덥고 짜증나는 곳이 였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격리된 이틀후부터 저는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예배는 저와 제 친구 단 두명이 보는 예배 였는데 그래도 기쁨은 컸습니다.
눈병은 한달여만에 사라졌고, 저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다시 식당봉사와 여러가지 봉사를 하며 겨울에도 저녁7시에는 찬물로 목욕을하고, 8시에는 예배를 드리며 낮에는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관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이 지나고 입원 8개월만에 저는 꿈같은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퇴원후 일년을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며 제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콕기간 일년후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로 한달에 한두번씩 외출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지가 일하시던 회사에 경비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는 경치좋은 산 밑자락에 있었고, 경비실에는 낡은 카세트가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 서 우연히 발견한 복음성가 테이프가 있었고, 저는 그 테이프를 하루 종일 듣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 돈으로 복음성가 테이프를 하나둘씩 사들인게 10개가넘었고 24시간 교대 근무인저는 그 테이프를 하루 종일 들으며 예수님에 관해 묵상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드디어 신약성경을 5독정도 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말씀이 내 귀에 그렇게 달고 좋을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도 교회에 나가본적이 없었고, 단지 예수님만 믿으면 다인줄아는 단순한 믿음 이었기에 엄마의 권유로 성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주교의 교리도 몰랐고, 세레명을 베드로로 세레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예수님이 좋아서 성당을 다녔지만 여전히 천주교의 교리는 잘몰랐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이년정도 신앙생활을 한후 천주교에서 영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견진성사까지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술을 마셨던 저는 회사에서 술때문에 쫓겨난 이후 정신병원에 11번을 더 입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치료시설로 입원했기에 병원생활이 편했고, 입원할때마다 식당봉사나 치매 환자봉사 를 했고, 제 사물함에는 언제나 간식과 담배가 넘치도록 많은 부자로 병원생활을 했고, 저는 그 담배와 간식을 여러 환자들에게 계속 나누어 주었습니다. 퇴원할때는 술마시는 개였지만 입원하면 어느덧 순한 양으로 변해 성경도 구약부터 통독도 했고, 신약은 10독이상을 했습니다. 그 치료 시설에 입원 할때는 어느때는 목사님 사모님이 우울증으로 입원하기도 했는데 그분이 주일을 지켜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저보고 예배를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나간적도 없고, 제대로 신앙생활도 한적이 없는 저는 강력하게 예배 인도를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주일을 지키며 능력은 없지만 성경말씀대로 전에 배운 찬송가로 예배를 인도하는것이 옮다고 생각한 저는 입원할때마다 예배를 인도 했습니다. 마지막 14번째 퇴원후 저는 집에서 가까운 교회로 출석을 하게 되었고, 그날 부터 저는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후 40이 넘은 저는 결혼도 하게 되었고, 지금은 교회로 출석한 이후 한번도 주일예배를 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벽 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예배 그리고 목요일 정신병원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 잘못 살아온 인생을 회개 할때 들취고 들처도 넘처나는 죄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워서 회개를 하는데도 몇달씩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옳은 인생을 산다고 자신하는것은 아닙니다. 단지 일상의 죄를 회개 하며 살고 예수님의 삶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8년간 정신병원에 있던 세월을 한탄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기간은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은혜와 연단의 기간이었고 그 사실에 너무나 감사할따름 입니다.
지금도 저는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 능력은 아직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주님이 저에게도 일할수 있는 기회를 주실거라고 믿으며 이백수인 저에게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내를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인생에서 또 다시 고난이 없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감사한것은 그 고난 이후에는 언제나 큰 기쁨이 있고, 그 고난 중에도 언제나 함께 계시는 주님이 있기에 저는 담대하게 주님주신 사명을 해나갈것입니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언제나 순종하고 싶으며 지금 이순간 숨쉴수 있는 공기를 허락하시고 볼수 있는 눈을 주시고 이글을 쓸수 있는 손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의지와 믿음이 감동을 줍니다.
정말 주님의 능력이 대단하시다는 것을 느낍니다..저도 이런 응답 받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