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5시 반에 녹동 장수식당에서 묵조파 송년모임이 있다.
차를 운전하고 가면 산을 몇 개 오를 수 있겠지만 술 마시러 가는지라
오는 길이 걱정이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무등산 중머리재 넘어 수만리-만연산을 넘을까 하다가
화순가는 버스가 생각 나 너릿재에서 내리기로 바꾼다.
화순터널이라고 시내버스가 알려주는데 터널을 지나
미술관 앞에 내려준다.
김준태 시인의 시비가 있고 5.18항쟁 기념비가 있는데
읽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
차는 올라가지 못하게 막았다.
마스크를 하고 옛찻길을 오르는데 한 남자가 반바지 차림으로 달려간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인듯 몇 명이 무리 지어 편하게 지그재그 길을 오르고 있다.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만들고 가마니를 깔아 둔 길로 들어서 길을 줄인다.
너릿재 위 당산나무 아래엔 두 여성이 비닐 위에 상을 차리고 있다.
굿을 하려나 보다.
몇 사람이 쉼터에 앉아 있다. 나이 든 데이트족 같다.
스틱을 펴 지장산 쪽으로 걷는다.
날이 포근하다.
35분쯤 걸어 지장산에 닿는다. 쉬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걷는다.
봉우리를 내려가 수레바위 오르는 계단을 몇 개 오르니 풀없는 무덤이 나타난다.
돌 위에 앉아 또 쉰다. 무등산 쪽은 보이지 않는다.
만연사 뒷 능선을 걷는 길은 편안하다. 간식도 먹었으니 힘도 난다.
어젯밤 영광청에 근무할 때 만났던 종관이의 사무관 임용을 축하하는 자리는 일찍 끝났다.
대리를 불러 집에 와 기훈이를 불러 몇 잔 더 했는데,
내가 술에 취해 말을 자르곤 했나보다.
나이ㅣ 먹어 젊은 선생들과 살면서 꼰대 짓거리 말아라고 한 것도 같은데
난 기억이 희미하다. 그가 전화를 했을 때야 백에 한두개쯤 생각이 난다.
미래중독자라는 책을 다 읽지 못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동물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며
그래서 오늘날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진화해 왓다고 한다.
근데 나 같은 경우를 보면 미래보다는 그 순간순간을 잘 지내자고 흥청망청하는 듯하다.
늙어서 살아갈 돈을 염려하고 자식을 염려하고 남의 도덕적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
그런 미래 중독자는 되기 싫어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 순간순간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12시 20분을 지나 만연사 668m 정상에 닿는다.
부부인 듯 두 남녀가 있는데 남자는 서 있고 여자는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나보다 어디서 왔냐기에 너릿재를 두 시간 못 걸려 왔다하니 빨리 왓다고 한다.
너릿재는 터널부터 세어야 하나 고개 위에서부타 세어야 하나?
들국화 마을과 안양산 무등산 천왕봉을 보고 돌아나와 만연산 능선을 걷는다.
남향의 능선은 따스하다. 가끔 바위 끝에 서서 사방을 쳐다본다.
멀리 보이지 않는다. 만연에 근무할 때 데리고 올라왔던 애들은 이제 다 자랐다.
대학을 마칠 때가 되었고 사내애들은 군대에 많이 갔다.
고인돌마라톤에 갈 때나 만연산에 오를 때 그 애들(몇 화순에 남아있는)에게
연락을 하고도 싶은데 참는다.
1년 게으르게 학교에서 만나 선생이라고 일방적인 잔소리만 했던 나의 부끄러운 기억을
그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무섭다. 이 시대에 교사라고 하는 직업은
정말 아이들의 성장을 잘 지켜보고 있는가?
넓적바위에 앉아 남은 간식을 먹는다. 간식이 없다. 물만 마신다.
1시가 넘었다. 배도 고프다. 나무 다리를 건너 작은 만연산 봉우리에 서 잇다가 내려온다.
긴 계단 몇 개를 지나 큰재에 이르러 물을 찾으니 동파를 막기 위해 잠궜단다.
배가 더 고프다. 만연폭포 글씨는 연석람이라는 이의 이름이 보이는데 아무래도 일본인 같다.
만연폭포를 지나 식당 몇 개를 지난다. 장사를 해도 혼자 들어가 먹기를
어려워 했을텐데 모두 잠겼다.
아스팔트를 스틱으로 짚어가며 금호타이어 앞을 지난다.
옛정류소 앞을 걷다가 생각해 보니 터미널은 오일장터를 지나가는 것이 가깝다.
길 가의 비석하나를 읽어보고 사진 찍는다.
길을 건너 복잡한 차 사이를 건너니 화순장날이다.
장터 안 어디쯤에서 국밥이나 먹을까 하고 들어서는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잇다.
웃으며 다가오는데 김남삼 선배와 오승호 선배다.
지난 2월과 8월에 정년하시고 너릿재 산책 후 장구경을 하신댄다.
말로만 막걸리 한잔 하시자고 끄는데 점심을 드셨댄다. 따뜻한 두 분의 격려를 받는다 하자.
한참 옛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사를 드리고 장터를 지난다.
약초상과 그릇상 콩그릇 등이 늘어선 등 곡물상 등을 지나 나서니
한 노인이 책을 늘어놓고 있다. 큰 사진기를 든 이들이 아이들을 책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구경을 하는 사이 말을 걸며 책을 사라고 한다. 산에 다니며 몸의 건강도 지키지만 책을 읽어
마음의 건강도 지키라고 한다. 논어를 여섯번 읽었더니 일기를 쓰게 되었노라고 한다.
산약초와 동의보감을 들척이다가 한권으로 읽는 사서삼경을 결국 산다. 4만원이 넘는데 2만원만 달랜다.
사서삼경 7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이런 책을 나는 읽어낼까?
이우영인가 이 양반의 고전 해석을 나는 어떻게 참고할 것인가?
또 책장을 무겁게만 하고 이삿짐만 불리는 짓을 했다.
식당을 물으니 자기는 도시락을 싸 와 먹었다고 시장이니 있을 거라고 한다.
민물장어 집을 지나가나니 광주공원 원조 고흥국밥집이 보인다.
들어가니 3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국밥은 비릿하다. 매운 고추를 섞어 먹는다.
소주 생각도 나지만 꾹 참는다. 6천원 계산을 하며 고향이 고흥이냐니 도화란다.
터미널 쪽 쪽문으로 들어가 녹동까지 표를 산다. 3시 15분 버스다. 입이 느글거려 천원을 주고
껌을 하나 산다. 속이 불편하여 벌교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른다.
순천 쪽에서 오는 동방교통을 타고 녹동 터미널에는 5시 20분쯤 내린다.
정준이가 오고, 민수가 김교장과 경동이를 태우고 온다. 민수 차를 타고 장수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염치없이 민수 집으로 가 충섭이도 합석해 술을 마신다.
도화에 경동에 델다주고 또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읍 정준이 집에서 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