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 영락 6년조에서 백제 공격의 진실은 무엇인가?

[고대의 별]

본론을 언급하기에 앞서 한가지 집고 가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고대의 국가간 큰 전쟁에 관한 것이다. 고대 국가간 국경 분쟁과 같은 작은 전투가 아니라, 왕이 친정을 하거나 대군을 파견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는 전쟁에서는 상대의 도읍지를 목표로 하여 공격하는 것이 순서이다. 도읍지를 점령하여 상대국의 왕을 사로잡아 죽이거나 항복을 받으면 전쟁이 종료되는 것이다. 우리의 삼국시대를 비롯한 조선의 건국까지의 전쟁이 그러하였고, 중국에서의 많은 국가의 흥망도 그러한 원칙하에 이루어졌다.
이중에서 우리의 고대국가의 중요한 사건 몇 개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보자. 먼저 기원전 194년 위만이 조선왕 준을 멸망시키고 위만조선을 건국한 사건을 살펴보자. 《삼국지》「위지 동이전」을 보면 위만은 준왕의 허락을 받아 서쪽 변방을 지키면서 무리를 규합한 후, 한나라의 침입으로부터 준왕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왕검성으로 들어가 준왕을 물리치고 위만조선을 건국한다. 고조선 준왕의 도읍지만을 공략하여 준왕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다음에는 한나라의 위만조선 공격을 보자. 《사기》「동이전」을 보면 기원전 109년 한무제가 죄인들을 모아 (위만)조선을 치는데, 누선장군 양복은 발해를 건너 해상으로 위만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을 공격하고, 좌장군 순체는 육로로 해서 요동으로 나아가 왕검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다 "元封三年夏, 尼谿相參 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故右渠之大臣成巳又反, 復攻吏."(원봉 3년(B.C. 108년), 여름에 니계상 삼이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해왔으나, 왕검성은 항복치 않았다. 즉 우거의 대신인 성사(成巳)가 반기를 들고 다시 공격해 왔다.)와 같이 왕검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위만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내 우거의 아들 장항(長降), 재상 로인의 아들 최에 의해, 성사를 죽이고 왕검성을 들어 항복함으로써 위만조선은 멸망하게 된다.
세번째로 위나라 관구검의 고구려 공격을 살펴 보자. 《삼국사기》「고구려본기」를 보면, 고구려 동천왕 20년(서기 246년)에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은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 때 관구검의 공격로는 두 방향으로 하여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을 공격하고 있다. 침공의 주 목표가 도읍지인 것이다. 관구검의 공격으로 수도 환도성은 함락되어 유린을 당하지만, 동천왕은 다행히 피신을 하여 고구려를 재건하고 있다.
네번째로 수나라의 고구려 공격을 살펴 보자. 수나라가 고구려 영양왕 23년(612년) 고구려를 침공할 때 진격로를 보면, 좌 12군과 우 12군이 서로 다른 길을 진격하여 평양으로 집결하도록 하고 있다. 역시 주 목표가 당시 고구려의 도읍지인 평양성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제, 고구려의 멸망을 살펴 보자. 서기 660년 백제의 멸망을 보면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공격의 목표로 삼은 곳이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다. 사비성이 점령당하고 의자왕이 사로잡히자 백제는 멸망하는 것이다. 또한 668년 고구려도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수도 평양성이 함락당하면서 멸망한 것이다. 그러나 백제, 고구려의 멸망은 왕이 있는 수도의 함락에 의한 것이므로 국가는 멸망하였지만 지방의 많은 세력들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후 부흥운동의 근거가 되었고, 고구려지역에서는 발해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도 보듯이 사건들 각각에서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거나 멸망을 시킬 때는 도읍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 그럼 광개토대왕릉비를 살펴보자. 광개토대왕은 영락 6년(서기 396년)에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토벌하고 있다. 그리하여 40개 성을 공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 지금까지의 통설로 보면 당시 백제의 도읍지는 한성으로 한강유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광개토대왕은 친정을 하면서 수도인 한성을 공격하지 않고 금강유역으로 진출하여 40개성을 공취하는 것이다. 백제를 공격하려고 하였다면, 그것도 왕이 친정을 하는 전쟁에서 백제의 수도를 놔두고 남쪽에 있는 성들만을 공격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고대국가들의 전쟁양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뒤이어 나오는 기록에 백제의 국성(國城, 수도)에 접근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직접 쳐들어가면 되지 무엇하러 40개 성을 빼앗는 어려움을 자초했던 것인가.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기병이 주력이었던 고구려가 391년 1차 공격에서 백제의 전함을 확보한 후 이 전함을 이용하여 어렵게 수군으로 금강유역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일까. 백제의 도읍이 한강유역에 있었으므로 굳이 수군을 동원하지 않고도, 남쪽으로 상륙하여 빙 돌지 않고도, 백제의 수도를 바로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고구려의 전력은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이길 정도로 막강한 기병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삼국시대 역사에 대한 당시의 기록인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은 어느 사서의 기록보다도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만약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다면 무조건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이 옳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된 광개토대왕의 백제 정벌에 대한 내용이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해져 오는 전승에서 누락되기에는 너무도 큰 사건인데도 철저히 누락되어 있다. 「백제본기」뿐만 아니라「고구려본기」에서 마져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빼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광개토대왕의 백제 정벌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와 무관했던 존재라면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의문점에 착안하여 이미 두 개의 백제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통설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잘못된, 허황된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주장이 너무나도 근거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글쓴이는 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릴 정도로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백제의 역사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