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마9:27-38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내쫓으시며 각종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말씀입니다. 이 사건들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권능에 의해 일어났다기 보다 그들의 믿음을 기초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서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으며,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두 소경의 믿음 때문이였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며 이중창을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소경으로서 어두움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소경이 가장 불쌍합니다. 자연의 4계절의 변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줍니다. 봄이 오면 죽은 듯한 가지에서 파릇파릇 싹이 나고, 여름이 되면 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우거지며, 가을이 되면 한 잎 두 잎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소복소복 눈이 내림으로 온 세상은 온통 하얗게 뒤덮이게 됩니다. 소경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또한 사랑하는 부모님의 얼굴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흑암입니다. 육신의 소경이 불쌍하듯이 영적 소경도 불쌍합니다. 영적 소경은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생명의 세계, 은혜의 세계, 믿음의 세계, 부활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영적 소경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줄 생각하고 영적 무지와 흑암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이런 자는 육적 소경처럼 불쌍합니다.
소경들은 흑암의 세계에서 빛을 보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을 뜨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소원이 있어야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로서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이들에게서 주님께 어떤 자세로 나가야 하는가를 배웁니다. 영적 소경된 우리는 영의 눈을 뜨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긍휼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였으나 예수님은 못들은 척 하시고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소경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를 잘하고 편견이 많습니다. 또한 감정이 예민하여 쉽게 상처를 받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잘 슬퍼합니다. 소경들은 필사적으로 간구했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을 때 자기들이 소경이라서 무시한다며 슬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소경은 슬픈 생각에 넘어지지 않고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들에게는 포기치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능히 이 일할 줄을 믿느냐?”고 질문하심으로 그들이 진짜 믿음이 있는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이에 소경들은 확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29)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눈도 밝아지고 영적인 눈도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눈을 뜨고 밝고 환한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배우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믿음도 좋지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으려면 인간적인 능력과 타이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자 하기보다 더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영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 조건을 개선하고자 힘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인간 조건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신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보잘 것 없는 늙은이에 불과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인류가 흠모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생활한지 10년이 되어도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반발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비전에 불과하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농담도 어느 정도지 너무 하신다고 불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15:6). 아브라함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기초로 위대한 인류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히11:1).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과 신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도 때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확신이요, 긍정적인 사고일 수는 있어도, 확신과 긍정적인 사고와는 또 다릅니다. 믿음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에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부정과 동시에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긍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긍정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그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심도 달라집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선지자의 생도가 빚을 안고 죽었는데 돈을 빌려준 사람이 그 두 아이들을 취하여 종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이에 그 아내가 엘리사에게 와서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사는 집에 무엇이 있는가 물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이웃에게 빈 그릇을 있는 대로 다 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은 그대로 순종하여 빈 그릇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더 이상 기름을 부을 빈 그릇이 떨어지자 기름도 떨어졌습니다(왕하4:1-7).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믿음의 빈 그릇이 없을 때 축복해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빈 그릇만 준비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축복해 주십니다.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나옵니다. 당시 엘리사가 북이스라엘 선지자로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늘 이웃인 아람의 침공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에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아람군대의 동향을 자세히 알려 주었기 때문에 힘 안들이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문병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가 너무 불쌍하여 아람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활과 살을 취하여 활을 쏘고 살로 땅을 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아스는 세 번 치고 그쳤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노하여 말했습니다.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세 번 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륙번을 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륙번을 치려면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도전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도울 때나 무슨 일을 할 때 믿음으로 세 번 정도는 도전합니다. 그러다가 잘 안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오륙번을 도전하면 되는데 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주저않고 말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한계를 뛰어넘어 오륙번을 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을 축복하사 온전한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기초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믿음의 분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믿음을 기초로 역사하시는데 만일 믿지 않거나 포기하면 아무런 역사를 하실 수 없게 됩니다. 믿음을 막는 것은 의심과 불신과 두려움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능력의 역사를 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고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막6:1-6a).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신 후 사역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엄히 경계하사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기뻐서 예수님의 소문을 온 땅에 전파했습니다.
둘째, 돕는 자들의 믿음으로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32,33절에는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된 아이를 고쳐 주시는 사건입니다. 귀신에 잡혀 있는 아이들은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를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는 스스로 예수님께 못나왔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도움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귀신에 붙들려서 스스로 나아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어찌해서든 데려와서 기도받게 하고 한번 기도받아서 귀신이 나가지 않으면 또 데리고 나와서 기도받고 또 낫지않으면 또 받고 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또 받게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아이가 낫고 말을 하자 무리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비난을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시기심 때문에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도 삐뚤어지고 마음도 삐뚤어지고 생각도 삐뚤어졌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이를 순수하게 영접하고 믿음을 갖지만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시기하여 비판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긍휼로 인하여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소원과 믿음이 있고 데리고 나오면 반드시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35-38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과 긍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병들어서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함을 아시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세상을 보실 때 목자의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세상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단 한가지 문제는 그들을 돌봐 줄 목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추수할 밭으로 보시고 기도 부탁을 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37,38)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리고 부족하지만 추수할 일꾼으로 키우사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먹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 온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궁핍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상한 자들이요, 살 소망이 없는 자들이요, 낙심하고 소외당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에 대해 좌절하고 세상에 대해 좌절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필요도 다양하고 예수님께 나아온 방법도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그들은 하나 같이 믿음으로 나아왔으며 또한 힘을 다해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믿음으로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필요는 조금도 지체치 않으시고 즉각 응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병에 걸린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고질병을 치료해 주심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시고, 어두움에 붙잡혀 있는 자에게 빛을 주심으로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겉은 멀쩡하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영적인 문둥병과 영적인 중풍병에 걸려서 무기력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 많고 귀신들려 신음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는 자신의 영적 상황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약속, 살아계심, 긍휼, 능력, 신살하심을 믿음으로 놀라운 응답을 받아서 감사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