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안장
여행을 하면서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 한 가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부대가 행한 양민 학살 사건들에 대해 방영한 내용을 보았다. 누가 베트공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긴박한 전쟁터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을의 노인과 부녀자, 심지어 갓난아이까지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였다고 증언하면서, 증오의 기념비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비인도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미화될 수 없고, 지구상 어디에서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라이따이한의 문제 또한 우리가 양국간의 건강한 관계 정립을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라이따이한에서 ‘라이’는 한자 ‘올 래’자의 베트남 발음인데, 혼혈인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던 한국 군인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를 이르는 말인데, 그 수효가 5,000 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북베트남의 승전으로 베트남전이 종결되면서 한국 군인들은 모두 갑작스럽게 철수하게 되었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이들 라이따이한들은 궁핍에 내몰리고, 주위의 멸시와 천대까지 더해져 감내하기 힘든 고난의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2013년 12월 방영된 SBS 스페셜 ‘라이따이한의 눈물’을 보면 이들에게 베트남전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요즘도 계속 새로운 라이따이한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의 위세를 앞세운 한국 사업가들, 한류의 후광을 입은 젊은 한국 유학생들과 현지 여성들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대부분 무책임하게 버려지고 만다. 전쟁으로 인하여 버려진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그 무책임과 부도덕, 몰염치, 몰양심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현지 교민 사회와 국제 사회에서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키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엄중한 자성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