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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선 타고 6년간 세계 곳곳 누벼
상트페테르부르크 황홀한 풍경에 놀라
“이렇게 멋진 도시 건설한 황제 닮고파”
선장 친구 회사 취직해 사업 수완 익혀
유창한 러시아어로 한인 일자리 알선
군인들 상대 통역하며 현지 인맥 넓혀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인근의 유명한 상징물인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 |
최재형이 가출한 후 선한 러시아 선장을 만났던 1871년, 조선은 신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초토화되던 때였다. 1866년
미국의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가 대동강에서 불에 타 침몰한 사건이 뒤늦게 미국에 알려졌다. 미국은 1871년 이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며 5척의 군함과 1230명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공격했다.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은 다시 광성진을 공격했다. 강화수비군 어재연은 끝까지
맞섰으나 육박전에서 미합중국 해병대 제임스 도허티의 총검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바로 이때 조선의 노비 아들인 11살의 최재형은
러시아 상선을 타고 6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1881년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 유길준보다 무려 10년
전이었고, 1888년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과 서광범보다 무려 17년 전의 일이었다.
최재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을 보며 그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를 가슴에 품고 롤모델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최재형이 나중에 아버지가 사는 얀치혜에서 정원을
가꾸고 유실수를 심고 공중목욕탕을 지은 것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에서 당시 최재형의 심리를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표트르 대제 |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시에트를 떠난 지 석 달 후에 재형은 배의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닿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러시아의 새로운 수도라고 했다. 재형은 빅토리아호가 네바 강에 들어설
때부터 강 양쪽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에 온정신을 빼앗겼다. 나타샤가 강변의 경치에 황홀해하는 재형에게 말했다.
“표트르 대제는
이 네바 강을 파서 수많은 운하를 만들었어. 그리고 강변에 저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지은 거야. 표트르 대제는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유럽의
창’이라고 했대.”
빅토리아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겨울을 난다고 했다. 시베리아에서 가져온 모피는 아주 비싼 값에 팔려서 선장
부부는 많은 이익을 남겼다며 흡족해했다.
선장은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낮에는 주로 잠을 잤다. 나타샤는 선장이 자는 동안
재형을 데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환상적인 궁전은
여름궁전이었다.
“이곳은 표트르 대제가 여름을 보내기 위해 지은 궁전이야.”
재형은 여름궁전을 돌아보며 선장 부인이 준
동화책에서나 보았던 꿈속 같은 궁전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이 실제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나타샤는 자신이 러시아 사람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재형은 나타샤를 보며 자신도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문득문득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나타샤는 조각상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재형에게 들려주었다.
궁전에 새겨진 조각들은 거의 다 성경과 관련이 있었다. 재형은 대리석으로 된 멋진 조각상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조각상들은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열두 제자의 모습이거나,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이었다.
재형은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나타샤를 통해 성서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조각상들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다.
재형은 이렇게 멋진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를 닮을 수만 있으면 닮고
싶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자신처럼 어린 나이 때 네덜란드에 가서 힘들게 배를 만드는 기술과 항해 기술을 배웠다는 말에 재형은 표트르 대제와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서쪽 끝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새로 건설하고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넓혀 마침내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재형은 가슴이 뛰었다. 재형은
마치 러시아의 동쪽 끝에서 온 자신이 표트르 대제와 만나기 위해 러시아의 서쪽 끝으로 온 것 같은 행복한 착각도 들었다.
―중략―
러시아 극동지역의 유일한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모습. |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6년간의 선원 생활을 마치고 1877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온다. 표트르 세메노비츠 선장이 나이가 많아 다른 사람에게 배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선장은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친구 회사에
상사원으로 취직시켜 주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최재형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4년 동안 선장의 친구 회사에서 상사원으로
장사를 통한 사업 수완을 익히고 인맥을 넓혀 나갔다.
그 무렵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제정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많은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지배하다’란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방’이란 뜻이다. 즉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이 곧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동방정책으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일자리가 넘쳐나게 된다. 군인들의 막사를 비롯해 군인들의
식재료와 군인들을 상대로 한 군수산업이 번창하게 된다. 최재형은 유창한 러시아어로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고, 러시아 군인들을 상대로
통역을 하면서 러시아인들과 점점 넓은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
사진=필자 제공
<문영숙 작가/ 안중근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