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7. 10. 2. 월요일이다.
'노인의 날'이란다. 나는 노인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서야 알았다. 추석 연휴기간이 얼마 쯤일까 알려고 카렌다를 살폈더니만 10월 2일이 노인의 날이란 글자가 들어 있었다.
만나이 65살을 넘긴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니 나도 노인이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노인대접을 받았으면 좋으련만 아무 데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자식들도 소용이 없다.
별 수 있나?
점심 밥을 먹은 뒤 잠실 아파트 끝에 붙어 있는 석촌호수 서호로 나갔다. 그곳에는 쉼터가 있어서 운동기구가 제법 있다. 나도 운동기구 앞에서 두 팔을 쳐들었다가 돌벤취 위에서 장기, 바둑 두는 영감탱이들 틈에 끼어서 구경했다. 오늘은 고수들이 두는지 제법이다.
잠깐 동안 구경하다가 석촌호수 한 바퀴를 천천히 걸었다. 석촌호수 주변에는 왕벚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 들이 있는데 잎 빛깔이 퇴색하고 있었다. 요즘 가을 중반에 들어섰으니 날씨가 조석으로 서늘하니 잎들도 물들기 시작했다.
화단에서 '파라킨다' 키 작은 관목을 보았다. 팥알 크기의 열매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파라킨다(파라칸서스 등 이름은 몇 가지나 된다)는 내 시골 텃밭 가운데에도 있다.
키가 3메타도 훌쩍 넘게 컸는데 포클레인으로 파서 다른 곳에 옮겼더니만 죽었다.
씨앗이 떨어져서 발아된 새끼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키웠더니만 지금은 제법 많이 컸다.
지난번 9월 중순경에 텃밭에서 확인하니 열매가 자잘하게 잔뜩 맺었다.
석촌호수를 천천히 한 바퀴 돈 뒤에 다시 서호 쉼터에서 바둑, 장기를 잠깐 더 구경했다.
무료하다.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이내 귀가했다.
아내가 저녁밥을 차렸다. 일전에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사 온 간장게장(박하지 게로 장 담은 것)을 삶아서 접시에 내놨다.
먹고 싶은데 치아가 부실한 나로서는 그림의 떡.
주방에서 가위를 가져와서 박하지 바닷게를 잘게 썰었다.
곁에서 밥을 먹던 아내가 '그렇게 잘게 썰면 먹을 거 있어요?' 말했다.
'이빨 나갈 일이 있어?, 나는 이빨이 부실해. 잘못하다가는 이빨 부러져' 라고 말했더니만 아내는 아뭇말도 보태지 않았다.
잘게 썬 게장 맛이 짭짜름하니 맛 있다.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 안에 넣고는 오물거려서 짠맛을 빨아먹었다. 게껍질이 무척이나 두껍고 억세서 조심스럽게 빨아먹어야 한다. 무척이나 맛이 짜다.
그래도 두어 수저 쯤 되는 게를 다 빨아서 먹었다. 뱃속이 짜르르 하다. 간장을 많이 부어서 만든 게장이니 오죽이나 짜랴. 더군다나 나는 싱겁게 먹는 체질인데도 이렇게 짠 반찬을 먹었으니 좀 그렇다.
별 수 없다. 물을 더 많이 마실 수밖에.
당뇨약, 전립선비대증약, 위염약을 꺼내서 입안에 털어넣고는 물을 주욱 들이켰다.
이래저래 물 마실 핑계는 많아서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박하지 게장을 먹었으니 이빨(치아)는 다치지 않았다.
2.
서울 올라온 지 오늘로써 열이틀 째.
서해안 중부 산골마을에 있는 시골집이 마음에 걸린다.
빈 집이다.
빈 집이라도 세 자리 텃밭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그새 키를 더 보탰을 것 같다.
밤송이도 땅에 많이 떨어졌을 것 같고, 대봉감도 제법 맛이 들었을 것 같다. 모과, 대추, 석류도 제법 익었을 것 같다. 누렇게 물든 은행열매는 무척이나 많이 떨어져서 길바닥에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게다.
호박은? 자꾸만 누렇게 익어 갈 게다.
돼지감자는 노란 꽃을 많이도 피웠을 것 같고, 뒤늦게 심은 감자도 씨알이 굵어졌을 것 같다.
가을날씨는 나날이 아침저녁으로 더욱 서늘하고, 어제 비까지 내렸으니 춥기까지도 한다.
시골을 떠올리자.
들녘의 논에서는 벼탈곡기가 벼를 베면서 탈곡할 게다. 자꾸만 텅 비어가는 논, 고구마 줄기를 걷어서 고구마를 캔 밭은 더욱 썰렁할 게다. 날씨가 내려가고 들판이 비워가면 작은 동물도 부산하게 피신할 게다. 특히 뱀이다. 냉혈동물인 뱀은 9월 말 10월 초순이면 추위를 피하려고 들판에서 기어나와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들판과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연결되에 있는 텃밭 세 자리에는 으레껏 뱀이 지나간다. 그것도 무서운 독사인 율무기.
나는 산이 바로 코앞에 있는 시골에서 살려면 늘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내 텃밭에는 온통 나무와 화초, 잡초들이 가득히 차 있기에 맹독사가 지나가고, 살기에 나는 늘 겁이 난다.
독사가 안 나탔으면 싶은데 안 나타나게 ㅎ는 그 방법을 몰라서 조금은 답답했다.
고교 친구는 '약국에서 백반을 잔뜩 사다가 헝겊 주머니에 넣어서 텃밭 군데 군데에 놔 두라'고 말했다.
오늘, 국보문학 카페에서 이채원 회원은 '서광꽃'을 심으면 뱀이 피해 간다고 댓글 달았다.
서광꽃이 무엇일까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만 '메리골드'이다. 천수국, 만수국으로 알려진 메리골드는 꽃과 잎에서 독특하고 강렬한 냄새가 난다. 노랗고 빨간 꽃을 잔뜩 피우는 서광꽃(메리골드)는 일년생으로 재배하기가 무척이나 쉽다.
뱀이 설마하니 꽃에서 나오는 독특한 냄새를 맡고 이를 기피할까?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만 이 말이 맞는 듯 싶다. 뱀은 긴 혀를 날름거리는데 이 혀로 냄새를 맡는단다. 나는 지금껏 뱀은 혀로 공기의 진동을 감지하는 줄로만 알았은데도 오늘은 냄새까지도 맡는다는 지식을 얻었다.
서해안 갯바람이 산능선으로 넘어오는 야트막한 야산이 사방으로 빙 둘러 싸인 마을.
산이 가까워서 날짐승과 무서운 파충류도 무척이나 드나든다.
올 8월에도 9월 중순에도 윗밭에서 큰 뱀과 새끼뱀을 발견해서 나무토막으로 때려 죽이고, 장화 신을 발로 으깨어서 잡아 죽였다.
내년에 서광꽃씨(코스모스 씨앗과 비슷)을 구해서 텃밭 주변에 뿌려보아야겠다.
혹시 알어? 무서운 뱀이 덜 낄 것 같다고 믿고 싶다.
첫댓글 노인의날 이란 것도 있었나? 노인인 우리가 그걸 모르니 씰데 없는 날이 틀림 없구먼 ㅎㅎ
파라칸서스...어떤게 맞는지는 모르지만 꽃보다 열매가 참 예쁘지
하얗게 눈이 내린 날 길가에 눈을 뒤집어 쓴 채 줄지어 서있는 이쁜 풍경을 본 적이 있네
충청도 영동이었었으니...아마도 월동이 가능한 모양일세
난 게장은 안먹네, 젊었을 때 게장을 먹고 배탈이 난 후 부터 안먹게 되었지
그리고 단단한 게 껍질은 치아에 안 좋을 것 같네 그려
난 형님댁으로 차례 지내러 다녀왔네
나설 땐 귀찮지만, 그래도 형제 조카들 다 만나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니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파라칸다. 파라칸서스... 등등으로 불리대.
예전 무척이나 큰 나무였는데. 잘못 이식하는 바람에 죽이고... 다시 새끼를 쳐서...
열매가 튕기면 그게 용케도 싹 틔우대...
음식 먹고 배탈이 나면... 장에 어떤 균이 평생 남아서 그럴 거여. 민간한 반응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