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여인들에게서 들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복음 16:11에서는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실하게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베드로나 요한이 예수님이 안치 된 무덤에 가보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직 만나 뵙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여전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까지 잡아갈까 두려워서 한 집에 모여 문들도 모두 굳게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19절). 19절을 시작하면서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라고 기록하였는데,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때와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때가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1절)이었으니,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베드로와 요한이 보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로부터 온종일을 보낸 후인데도 여전히 제자들은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이 숨어 있는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문들을 닫았다는 19절의 기록은 제자들이 여전히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문들이 굳게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있는 집에 오셔서 제자들 가운데 서셨다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못이 박혔던 자기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2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직접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附與)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로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제자들을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21절).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나가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제자들이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며, 그대로 두면 그대로 그 죄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2절, 23절).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그 시간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함께하셨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으로부터 약 50일 가까이 지난 후인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계속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을 향해 나가서 복음 증거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함을 강조하시기 위해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이때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성령이 때로 임하였다가, 다시 떠나셨던 것처럼 제자들에게 일시적으로 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것은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증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면, 그 믿은 사람은 자연적으로 모든 죄가 사해지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사명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제자 중에 디두모(Didymus)라고 불리는 도마(Thomas)는 그 자리에 없었었습니다(24절).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뵈었던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을 이야기하자, 도마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25절). 얼핏 생각하면 도마가 말하는 것이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그 이전에 여러 번 반복하여 부활하실 것에 관해 말씀하셨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도마는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도 믿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믿고 있었다면 제자들의 이야기에 “진짜?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구나. 와, 정말 놀랍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주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는 도마를 위해 여드레가 지난 후 다시 제자들이 모여있는 집에 찾아오셨습니다(26절). 그때도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예수님은 또다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 집에 오셨고, 평강의 인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직접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셨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려면, 그들이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했을 때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에게도 찾아오신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도마가 실제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았는지에 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고는 진정한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도마의 이 고백도 매우 귀하고 중요한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9절). 아마 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신 이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을 직접 볼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이 증거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 그리고 이로 인한 구원의 소식이 전해질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었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믿음은 정말 복된 것임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수많은 다른 표적들이 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부분들을 기록했다고 부언(附言)하고 있습니다(30절, 31절). 복음서 네 권 중에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고 하는데, 요한복음은 이 세 복음서를 전제(前提)로 하여 보다 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31절에 기록한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당연히 강조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복음서로 다른 복음서에 더하여 복음을 더 명확하게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실재(實在)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말씀에 따라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한 주간의 삶을 더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보지 않고도 온전히 믿고 따름을 통해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큐티
#매일성경
#라이트하우스고양
#라이트하우스무브먼트
#안창국목사의말씀묵상
#요한복음20장19절부터31절
#제자들이모인집에오신부활하신예수님
#너희에게평강이있을지어다
#제자들에게못박힌손과창에찔린옆구리를보여주시는예수님
#아버지께서나를보내신것같이나도너희를보내노라
#성령을받으라
#믿음없는자가되지말고믿는자가되라
#나의주님이시요나의하나님이시니이다
#나를본고로믿느냐?
#보지못하고믿는자들은복되도다
#예수께서하나님의아들그리스도이심을믿게하려함이요
#예수님의이름을힘입어생명을얻게하려함이니라
https://cafe.naver.com/lighthousegoyang/2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