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그리기에 별 흥미도 없었고, 미술 점수도 그다지 높은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모네’에 대하여 아는 것은 인상파 화가, 작품은 ‘양산을 든 여인’ ‘건초더미’ ‘수련’ ‘인상’ 등이 전부이었다, 이후로도 이 이상은 알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특별히 불편 하지도 않았다. ‘모네’의 이름이 클로드 모네(ClaudeMonet)이며 프랑스 사람이며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의 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인상주의’라 한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런 내가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회를 짬을 만들어 찾은 이유는 2014년 10월 우연하게 관람하였던 ‘반고흐(VAN GOGH) 10년의 기록전’에서 그림과 디지털 기술이 만나, 캔버스의 그림을 3D 멀티미디어 영상으로 보여주며 살아있는 작품을 감상 하게 해주는 형태의 전시회를 처음 접하고 충격의 감동과 설렘이 지울 수 없기 때문 이었다.
이번에도 황홀한 아름다움에 마냥 취했고, 모네를 알기위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네의 기록을 기억하고 한 작품이라도 더 머릿속에 담아 보려고 노력 했다는 것이 아니다, 전시회장을 벗어나면서 빛을 사랑한 사람 모네, 빛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기위해 한 대상을 놓고 연작(連作)을 많이 그린 인상파 화가 ‘모네’를 담아 온 것은 자신의 초상화 아래 남겨 놓은 <저는 위대한 화가도 위대한 시인도 아닙니다. 내가 아는 거라곤 자연에서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뿐입니다.>가 전부 이다.
하지만 ‘모네’를 알 수 있었고, 모네의 삶이 부러웠고, 모네의 그림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그렸다, 또 다른 그림 세계에 대하여 점점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을 느낀다. 그림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그림 속에서 내가 생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에 매겨져 있는 가치를 높이 치지만, 그것은 내가 부여한 가치가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물리적으로 가치가 주어졌고 우리는 그 가치를 보고 평가하고 감동을 한다. 이 가치는 내가 스스로 부여한 가치가 아니기에 그 자리를 벗어나면 쉬 잊힌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작품 감상법이며 작품이 뜨겁게 다가오지 못 했던 이유다.
‘모네 빛을 그리다.’에는 진품은 한 점도 없지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커다란 영상으로 캔버스 속에 멈춰있는 그림의 미래와 과거를 끄집어내어 그때 그 모습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그림들이기에 생명이 있는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커다란 캔버스에 살아 움직이는 그림, 나는 이 기쁨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작품 이름도 기억 하지 못하고 작품의 이미지도 남아 있지 않지만 눈을 감으면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 황홀하다. 내가 스스로 ‘모네’를 처음 만나 보낸 약 3시간을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전시회는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2016년 5월 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