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애월읍 구엄리 1065번지
시대 ; 대한민국(1951년)
유형 ; 학교
1948년 4월 3일 4·3사건이 발생하고 동년 12월 19일 무장대(산사람)들이 방화로 교실(목조건물 6개 교실) 및 부속건물이 전소(全燒)되었으며 당직하던 교직원(교사 이기형, 송창우와 용인이었던 김여조)들이 순직(殉職)하였다. 이로 인하여 배움터를 잃어버린 학생을 위해 학교는 난리의 와중에서도 아동들의 수업을 한시도 중단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임시조치로 3개리 공회당을 교실로 이용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피난수업(避難授業)을 계속하였다.
한편 학구민들은 학교 교실 신축 추진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에 백창식(白昌植), 부위원장에 문창규(文昌奎)를 비롯하여 제임원(諸任員)을 선출하여 교육청 당국과 수차례 학교 교실 복구를 요청하였으나 6·25전쟁까지 겹쳐 국고(國庫) 재원(財源)으로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고 또한 학구민들도 4·3사건의 상처로 재원부담(財源負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학교 실습지 8,985.9㎡를 매도(賣渡)하여 그 대금 38,200환을 교육청 당국에 납부(納付)하고 잡역(雜役)은 학구민 부담으로 하여, 1951년도에 구엄교 운동장 북쪽으로 3개 교실을 신축하고 이어서 4개 교실을 증축하여 학구민의 숙원사업(宿願事業)이 이루어져 아동 수업에 더욱 충실(充實)하게 되었다.(구엄초등학교(1987), 『구엄학구향토지』)
《작성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