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 300년’ 축제 개막을 보고
영하25에도 ‘예술의 현장’ 찾은 시민들…
定都 300년 축제는 日常처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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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월 1일 새벽,영하 25의 혹한 속에 거리로 뛰쳐나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건설 300주년을
자축하는 시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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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유럽으로 향한 창을 열고,
바다를 향해 두 발을 당당히 딛도록 했으니…’.
네바강의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덩어리는 저 멀리 핀란드만 쪽으로 하얗게 뻗어있다. 가까스로 내뿜는 입김은 곧바로 가루가 되어 영하 25도의 매서운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네바강 변에 우뚝 선 피터 대제의 청동기마상은 2003년 1월 1일 오후2시 현재, 러시아 대문호 푸슈킨이 격찬한 것처럼 여전히 유럽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글자 그대로 ‘성스러운 돌의 도시’다. “이 곳에 도시를 세우겠노라.” 1703년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승리한 피터 대제의 말 한마디는 진리가 되어 네바강 하구의 거대한 늪지대를 돌로 채우는 새로운 러시아 대 역사(役事)의 시발점이 되었다. 나무의 도시 모스크바와는 전혀 다르게, 웅장한 화강암 건축물들이 즐비한 철저한 계획도시는 ‘북구의 베니스’로 불리며 300년 영욕의 세월을 지켜왔다.
‘영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직선도로에 커다란 조형물로 적혀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900일간 포위되어 100만명의 목숨과 맞바꾸며 사수한 후에 붙여졌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진정한 이름은 ‘문화의 도시’다. 이 도시가 올해 도시건설 300주년을 맞았다. 도시의 생일인 5월 27일을 전후해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키로프극장 등에서
줄줄이 문화행사가 예정돼 있다.
페테르부르크 300주년을 기리는 축제는 지난해 말 음악축제로 막 올랐다. 구랍 27일 저녁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볼쇼이홀. 1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최고의 콘서트전용홀이다. 축제 개막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올 때 모든 청중은 기립했다. 오전 11시에 있었던 공개리허설 때에도 이미 가득했던 객석은
입석자리까지 완전히 매진되어 숨쉬기조차 곤란할 만큼 열기로 충만했다. 음악감독인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과 함께
꽃으로 장식된 무대로 등장했다.
아직도 유럽을 겨냥해서였을까? 개막 연주회는 독일
작곡가의 작품 일색이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장엄한 1악장 도입부가 열기를 뚫고 가슴으로 전해져왔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30대 초입의
키신은 이제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닌 거장적인 면모를
보이며 전통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완벽한 앙상블을 만들어갔다. “역사적인 순간에 연주할 수 있게 되어 제겐 크나큰 영광입니다.”
연주회 후에 키신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가 연주된 후반부는 영웅의 도시를 영원히 지키려는 듯 오케스트라의
유장한 화음이 내내 이어졌다.
다음날은 블라디미르 미닌이 지휘하는 모스크바 챔버
콰이어가 러시아 합창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축제 3일째인 30일, 예프게니 키신의 독주회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이 끝나고 청중전원 기립박수를 얻어냈다. 한해의
마지막 31일, 신년 이브 콘서트로 요한 쉬트라우스의
왈츠가 연주되자 객석은 일순 무도회장으로 변하는 듯
술렁거렸다.
감동적인 연주회장을 벗어나서 네프스키 대로로 나갔다. 영하30도에 육박하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스 노?
고 덤!” 새해인사를 낯선 이방인에게 웃음으로 건네준다. 시내 곳곳에는 300주년 축하 점등이 불을 밝히고 마침내 2003년 0시, 시 발상지인 페트로파블로프스키 요새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며 축제는 절정을 구가했다. 혹한의 겨울, 기나긴 밤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예술을 일상의 축제로 즐기며 300년 역사를 일구어 온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러시아)=유혁준·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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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300주년 행사
미술품 순회展, 도밍고 공연, G8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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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상트 페테르부르크 300주년 축제 개막무대서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상트 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을 지휘,예프게니 키신(피아노)과 협연하는 모습./사진작가 신진주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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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민들과 러시아 국민들이 도시의
300주년 축제를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한껏 드러내는
모습은 ‘정도(定都) 600년’을 넘긴 서울을 비롯해서
유서깊은 문화도시를 많이 거느린 우리로서도 지켜볼
만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당국은 250만점 미술품을 소장한
에르미타주박물관, 유엔이 선정한 매력적인 도시(8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 전체를 알리는 것을
축제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에르미타주박물관은 2차대전 때 독일에 앗겼다가 되찾은 비장의 미술품을
특별전시하는 한편, 뉴욕·워싱턴·볼티모어 등 미국
순회전시에 오른다. 음악축제는 연중 푸짐하지만, 본격 축제는 5월 26일부터 6월 6일까지 열린다. 오페라
‘피터 대제’가 5월 27일 키로프극장에서 초연된다.
기간 중 열리는 300주년 축하공연에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주역가수들이 참가할 예정. 키로프오페라극장은 6월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으로 진출해 300주년 기념무대를 펼친다. 베를린(2월) 뉴욕(4월)에선 ‘상트 페테르부르크
300년-세계로 열린 러시아’ 전시회가 열린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선진8개국 정상회담을 비롯, 발트해 국가회의, 북구장관회의, 유럽연안지역회의 등 올해 굵직한 주요 국제행사를 페테르부르크 시로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