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모임에서였다. 법원장인 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서울법대를 졸업한 법조인 백 명중 서울법대에 들어간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알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비율이 낮아요. 몇 명 되지 않더라구요.”
아버지가 공부를 잘했다고 아들도 잘한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법관 출신의 한 분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서울법대를 들어 갈 때는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아들놈 대학 입시 때 보니까 서울법대 가 다시 쳐다 보이는 거예요. 들어가기가 정말 힘든 학교예요. 그때 처음으로 안 것 같아요.”
보통 부모의 머리가 좋으면 유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것 같았다. 부모들과는 다른 길로 가는 법조인 자식들이 훨씬 많았다. 엄마가 대법관이고 아버지가 검사장인 집 아이가 미용학원에 다닌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한 법원장은 나를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아들을 불러 소개 시키기도 했다.
조선의 양반같이 신분이 세습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그런 세상이 괜찮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법조인 중에 자신의 과거나 집안 환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내가 법원에서 판사업무를 배울 때 옆에 있던 판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가 택시 운전사를 하면서 아들들을 키웠어요. 아버지는 자식 신세를 지지 않겠다면서 지금도 핸들을 잡아요. 저는 아침에 법원으로 출근하기 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아요. 택시 안 뒷좌석까지 물걸레로 깨끗이 청소해요. 더러 오물들이 묻어있어요. 내가 택시 청소에는 베테랑이죠.”
그는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판사였다. 근무를 하다가 배가 출출하면 그와 함께 법원 뒷골목 작은 빵집에 가서 우유와 단팥빵을 같이 사 먹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검사는 넝마주이출신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길거리에는 큰 광주리를 등에 걸치고 길다란 쇠집게로 폐지나 병들을 줏어 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검사는 넝마주이 시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대학 후배가 되는 한 인권변호사와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가 교만한 귀족 판사에게 물병을 던지는 장면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우리 아버지는 사북탄광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 출신이예요. 가난하게 살면서 우리들을 키우다가 추운 겨울날 눈 덮인 논에 엎어져 죽었어요. 아들인 나는 냄비 장사를 했어요. 거래처 사장이 어떻게나 갑질을 하는지 잘못이 없으면서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적도 있다니까요. 더러워서 고시에 도전하고 합격을 해서 그 굴레를 벗어났죠.”
그뿐만이 아니다. 변호사란 영화는 노무현대통령의 고시공부 시절을 모티브로 했다. 상고를 나오고 고시 공부를 하던 노무현이 법서를 잡히고 돼지국밥을 외상으로 먹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인권변호사를 하다가 대통령까지 된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인생을 반전시킬 수 있는 세상이 재미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고시 공부를 시작할 때 집안에서는 말렸다. 빈민촌에 살던 노동자인 숙부는 “되는 집안이 따로 있지 우리 집안사람이 고시에 합격 되겠느냐?”고 내게 말했다. 좋은 두뇌는 유전인데 집안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서울법대를 나온 고시 낭인들이 수없이 많은데 헛고생하지 말라고 했다. 고시 뒷바라지할 능력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했었다. 나는 고시원의 쪽방이나 암자의 뒷방에서 수많은 고시낭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인생 반전의 비결을 엿보게 됐다.
간절한 염원은 하늘에 닿는다는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반응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 인간의 영혼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능력의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간의 유전적인 지능이나 운명을 넘어서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존재와 능력을 믿는다. 두뇌와 세포 속의 DNA의 문제가 아니다.
[소소헌]
글 | 엄상익 변호사[필명, 소소헌]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