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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슈 정치 인혁당 사건의 진실, 길지만 대충대충이라도 읽어봐
닉네임이아니므니다 추천 0 조회 1,292 12.09.27 22:15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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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9.27 23:57

    첫댓글 인민혁명당 ... -_- 아무리 근거를 보여줘도 안믿는 요상한 세상.

  • 12.10.04 14:32

    글쓴이 글에서 1차 인혁당 사건은 잘 모르겠지만 2차 인혁당 사건은 당시 고문으로 인한 허위 진술이 많았고, 재판 당시 내용이 조작되어 기록됐으며 이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를 했고 무죄가 판결이 났습니다. 이런것 쯤이야 이미 알고 계실꺼라 생각하는데 글 아래에 증거라며 쭉 붙혀놓기 해논것도 법원 사이트를 가보니 폐기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글에 첨부한 부분과 이미 무죄로 판결 났음에도 이걸 인혁당의 진실이라며 올리는건 무슨 의도인지 이해가 되질 않네요

  • 작성자 12.10.04 17:28

    김일성 총화사업보고서 전문을 소지했고 공산주의 서적이 증거로 발견되었는데도 무조건 감싸기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이라면서 억지로 사실을 외면하려고 하지마세요.
    김일성 총회사업보고서도 전깃불도 없이 라디오만 듣고 받아적었는데 어떻게 틀린부분없이 그대로 적습니까?
    무죄판결을 받은 이유는 긴급조치때문에 위헌 때린거지 간첩혐의를 부정한게 아닙니다.
    판결문 다시 읽어보세요.

  • 12.10.04 20:10

    75년 그 당시에 해당 재판과 관련해서 외신기자 출입 제한, 변호인들이 신청한 증거 무시, 검찰 측 증인 신문 시 변호인들은 가택연금까지 당했습니다. 이는 당시 변호인들이 얘기한 부분이고, 그렇게 나온 저 판결문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사실을 외면하려 하긴커녕 과거사진상위에서 발표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간첩협의는 부인한다 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건 보수진영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거겠죠. 갖은 고문으로 진술서를 조작하였고, 사형을 선고 받은 지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 되었으며, 그 8명중 2명은 시체 조차 돌려 주지 않고, 고문을 은폐하기 위해 바로 화장해 버렸습니다.

  • 12.10.04 20:11

    국가를 이어가기 위해 권력 남용으로 무고한 목숨을 빼앗아 간 것이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며 이는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 작성자 12.10.04 22:52

    1차 인혁당에서 빨갱이 혐의 인정받고 형 살다나온 사람들이 2차 인혁당 멤버에요... 님이 말씀하신 위원회에서 고문했단 이유로 증거까지 부인하고 그 곳의 발표는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용공세력이라는 박정권 시절의 판결이 조작된 것이며, 북한의 방송을 몇 번 청취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공산혁명세력은 아니고 단지 한일협정과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세력이라는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민주화 새력이 왜 불도 안들어오는 지하에 숨어서 북한방송 청취도하고 그걸 받아적었습니까? 또, 공산주의사상책들이 발견된 그 무리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관련자들까지 인혁당은 인민혁명당으로 빨갱이들이 맞다고 증언하는데.

  • 작성자 12.10.04 23:16

    김일성의 대남적화정책인 총화사업보고서 전문을 소지했다는 것 자체가 빨갱이라고 증명해주는 꼴인데... 그런 건 다 부정하고 그냥 헌법에 위반되었으니 그 사건도 무죄고 고문이 있었으니 다른 증거들도 인정 안하겠다고 하는걸 왜 믿습니까? 증언이 거짓일지라도 발견된 증거들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지않나요?

  • 작성자 12.10.04 23:31

    물론 고문했다는 것과 20시간만에 사형 시킨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분명히 잘못한게 맞고 오히려 그 쪽 사람들에게 무죄를 준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간첩행위가 부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빨리 사형시킨건 당시엔 북한도 잘 살았고 그 때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이 많았던 시대 배경을 고려해보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 작성자 12.10.04 23:40

    The Marxist party in South Korea, the Revolutionary Unification Party, is weak in numbers. It has about 3,000 members. They have representatives in several factories but they are illegal and their activities are much impaired. Making active efforts among workers and peasants, and fighting openly against Park Chung Hee, would result in the liquidation of its leaders. This is why we have instructed the members of the Revolutionary Party to join the ranks of the legal opposition parties and increase their influence among them, is still weak.

  • 작성자 12.10.04 23:41

    위 글은 1975. 6.2~6.5 불가리아 방문한 김일성과 불가리아 총리 토도르 지르코프간 3시간에 걸친 대화 내용입니다.
    http://legacy.wilsoncenter.org/va2/index.cfm?topic_id=1409&fuseaction=home.document&identifier=DF492A79-071B-A124-DACE195CD44B8BCB&sort=Subject&item=Korea,%20unification%20of
    직역하면
    "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 , 혁명통일당 수는 미약하나 3,000 명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간 많은 노력을하고, 박정희에 대해 공개적으로 싸우며 청산될 것이다. 우리가 야당 대열에 합류하고 거기에서 노동자와 농민간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혁명당 구성을 지시한 이유이다"

  • 12.10.05 00:12

    전 당시 우리나라에 간첩이 없었다고 부정한적은 없습니다. 다만 위의 댓글은 인혁당 피해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네요. 증거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앞서 말했듯이 변호인의 증거 무시, 가택연금, 공판조서 변조, 또 당시 재판은 피고인의 가족 중 단 한 사람만 참여가 가능했고, 이때 피해자의 부인이 증언한 바로 재판 당시 판사가 국가 변란을 도모했냐는 질문에 피고는 아니요 라고 말했지만 후에 공판조서에는 예라고 써있을 만큼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는데도 당시의 증거를 운운하며 간첩이라고 할 수 있나요?

  • 12.10.05 00:13

    저도 글쓴이 처럼 그 당시 시대 배경을 고려해왔을 때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민주주의 시위를 하던 사람들과 또 그 사이에 교묘히 숨어들어간 간첩들에게 본보기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고 말도 안되는 죄목을 갖다 붙히며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사건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작성자 12.10.05 00:19

    그렇다고해서 실제로 발견된 수 많은 증거들을 다 부정할 순 없죠. 고문을 했단 이유로 모든 증언들을 무시하고 수 많은 증거들을 무시해서 빨갱이들을 민주화투사로 만들어준 꼴이란 말입니다. 가장 무서운 게 이겁니다. 어떻게 그 당시 관련자들의 증언과 명백한 증거까지 무시해가며 인혁당 사람들을 민주화투사로 탈바꿈합니까? 이게 중국이 행하는 동북공정이랑 다를게 뭡니까? 사형을 빨리 시킨건 잘못이고 긴급사태가 위헌인것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인간들이 민주화투사로 탈바꿈되는 것 자체가 웃긴겁니다. 그 당시 상황이 그랬고 그런 취급받은 거 사실일지라도 빨갱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으니 빨갱이는 빨갱이죠.

  • 12.10.05 00:23

    (나) 피고인 하재완은 동공판조서 제380면에서,
    문: 그러면 검찰이 고문 등 강압적으로 진술케 하였단 말인가.
    답: 아닙니다. 검찰에서는 자유분위기속에서 진술하였읍니다.
    (출처 : 대법원 1975.4.8. 선고 74도3323 판결【대통령긴급조치위반·국가보안법위반·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반공법위반·뇌물공여】
    사형 집행 후 시신을 수습한 유가족의 두눈으로 사체에 고문의 행적들을 보았다고 하는데 글쓴이가 읽어보라던 판결문에 이렇게 써있네요.

  • 작성자 12.10.05 00:38

    전 고문이 없었다고 주장한 적 없습니다 고문 때문에 모든 증거를 눈감아주고 그들을 민주화 투사로 탈바꿈하지 말란 말이죠.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1차 인혁당 사건 때 잡혀서 형 살고 나온 사람들이 2차 인혁당 사건때 또 걸려서 사형 받은 거에요... 1차 인혁당 사건때 유죄선고 받은 김배영은 월북했다가 공작원 신분으로 넘어왔다가 걸려서 사형 당했고 똑같이 1차 때 유죄선고 받은 우동읍 역시 월북했다가 우홍선으로 개명한 후 우리나라에 왔다가 걸려서 사형당했습니다. 이래도 무고한 시민들입니까?

  • 작성자 12.10.05 00:37

    강제성을 띄는 증언들은 무죄 처리되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이 무시되었던 것도 인정하는데... 분명한 증거들이 있는데 중국이 동북공정하듯이 빨갱이를 민주화열사로 바꿔버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1차때의 주동자가 2차때 사형받은 걸 분명히 아셨으면 좋겠네요

  • 12.10.05 00:44

    전 위의 글은 고문을 지적한게 아니고 판결문 자체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진짜 혐의가 있었고, 국가 변란을 도모 했다면 무엇이 캥겨 공판조서를 변조하고 사형은 왜 빨리 집행했고, 재판은 왜 외신기자 출입을 제한했으며, 변호인은 왜 가택연금했는지 궁금하네요

  • 12.10.05 00:40

    저는 인혁당 피해자들을 민주화투사라고 말한적도 없고 그냥 무죄라고만 말했습니다. 거짓 증언과 재판도 피고에게 몹시 불리하게 진행됐지만 이러 이러한 증거가 있으니 아무리 과거사진상위에서 무죄를 했든 증거만 보고 인혁당 피해자는 빨갱이라고 보라는 건가요? 저는 그 증거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고문을 떠나 당시 공판 조서까지 변조하는데 증거라고 제출한 것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까? 더불어 변호인들이 제출한 증거들은 무시되었다고 들었습니다.

  • 12.10.05 00:43

    사법부에서 조차 4월 9일을 암흑의 날로 정했고, 결국 무죄로 판결났습니다. 물론 무죄 판결에 간첩 협의는 제외한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위에 올린 댓글처럼 고문을 했다고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재판 당시에는 고문을 당한적이 없다고 진술된 저 75년도 판결문에 쓰여진 저 증거물들... 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진술 및 증언은 거짓일지 몰라도 증거물은 맞을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요? 왜 거짓이 가득한 저 판결문 일부를 기재하고, 대법 홈페이지까지 올리시면서 다른 사람들의 혜안을 흐리는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12.10.05 00:45

    만약 공산주의 사상이 판치던 시대에 그들이 무죄라도 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을겁니다. 진짜로 베트남처럼 적화통일 되었을지도 몰라요.
    아마 그렇게 한 이유는 고문을 해서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겟죠. 그게 밝혀지면 빨갱이들 없애는 게 곤란해지니까요.

  • 작성자 12.10.05 00:50

    이건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고문으로 얻은 증언이 있는 사건이라 그런 날로 지정된 것이지, 빨갱이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에 증거물 마저 사실이 아니라면 재심했을 때 그것 또한 밝혔겠죠. 근데 못했죠. 증거물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 12.10.05 00:57

    하 이제 답변 달기도 힘드네요... 당시 배경을 보면 빨갱이 누명을 씌우던 빨갱이던 빨갱이와 반정부 시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 운동을 하며 정부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이들에게 본보기 삼을 사건이 필요했겠죠. 그래서 진술도 증언도 증거도 엉터리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생겨났고, 정말 죄가 있었더라면 이런 거짓된 과정이 필요했을까요?

  • 작성자 12.10.05 01:04

    분명한 증거를 보고도 엉터리라고 믿는 게 이상하네요. 고문으로 인한 증언은 무시하더라도 위 글에 나와 있듯이 인혁당 관련자가 현 시대에 와서 그 당시 인혁당에 대해 증언한 건 뭡니까?
    증거들이 전부 거짓이라면 김일성 총화사업보고서 전문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용택 수사국장은 왜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 안당합니까?
    분명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않으시겠다니요.

  • 작성자 12.10.05 01:07

    가만히 있으면 민주화투사로 불리고 영웅이되고 보상금까지 받는 상황에 왜 그 사람들이 빨갱이었다고 비난하는 그 당시 사건 관계자들이 있을까요?

  • 12.10.05 01:35

    그럼 이용택 수사국장은 인혁당 무죄판결 때 뭐했답니까? 저도 제 이야기 안굽히고 글쓴이도 제가 백날 떠들어도 인혁당이 빨갱이라 믿을테니 소귀에 경 읽기네요. 댓글로 이렇게 길게 얘기해보긴 처음이네요 득도 없는 이야기 잘했습니다.

  • 작성자 12.10.05 02:00

    네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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