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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는 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조선이 해방되기 전 일제시대.
조선드림을 꿈꾸는, 260만의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넘어와 조선인 피빨아 부를 축적하며 살고 있었음
2. 전쟁에서도 패했겠다- 이제 일본인이 본토로 돌아가야 하는데, 미군이 재산 반출을 제한함.
현금은 1000엔, 휴대가 가능한 보따리 정도.
당시 기업의 8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가진 게 많던 게네들은 재산을 포기하고 싶지 않음.
3. 잔존 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싶었던 이승만은 인적자원 확보랍시고
그들을 본국으로 보내지 않고 남게 해 그대로 대우해주고 싶어함.
4. 많게는 130만의 잔류 들, 족보 사고 성씨 만들기,
유명한 족보에 끼워넣기(김씨 박씨 많은 이유) 등으로 신분세탁하며 잔존하게 됨.
YMCA에 모여 조선어를 공부.
5. 입장이 뒤바뀜.
정말 의병의 나라에서, 걸리면 조선인한테 돈 뺏기고 쥐어터질테니
조선인이 많지 않은 곳에 터를 잡고 자기네끼리 여기 저기서 모여살기 시작.
6. 1세대들이야 얼굴 아는 사람도 있을테고 한국말도 모국어처럼 못하는데
2세대들은 생긴것도 동양인이요, 한국말도 잘하니 사회로 기어나오기 시작하고 정계로 진출함
7. 그들이 속한 당은 민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한당- 지금의 국민의 힘
여담아닌 여담이지만 재벌, 정치인, 또 종교 활동을 이끄는 자들의 80%는
호적 세탁한 잔존일본인이란 말이 있어.
일본이 장악하던 은행에서 시드를 얻었다고.
80년대 100대 기업중에 30명이 진주 산골마을의 같은 초등학교 동문임.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등.
그곳의 풍수지리가 좋아서 그렇다는데.. 글쎄?
여전히 집에서는 일본 잠옷을 입고 일본 이름을 지어 서로를 부르며,
문앞에 일본 명패를 붙여놓는 들.
ex) 이명박 형
밑의 영어는 'Only as for the Japanese'
정말 우리 국민이 그들로부터 해방된 게 맞는 걸까.
대한민국 근간을 허무는 잔류 왜구
이유는 1. 전쟁 등 난리 통에 고아로 태어나 조상을 알 수 없음과 2. 신분 세탁일 것이다. 근대 역사에 있었던 급작스럽고, 수많은 신분세탁의 이유는 왜구의 패망이다. 왜정시대 때 265만 명의 왜구가 이 땅에 와서 살았다. 해방직전 남한에 187만, 북한에 78만 정도라 한다. 이중 131만 명만 ‘히키아게샤(引揚者)’로 돌아갔다. 그중 77만 명은 북한 거주자였다. 그러면 북한에 1만 명, 남한에 133만 명이 남는다. 이것이 일제 패망 후에도 남아있던 토착왜구의 숫자다. 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900만 추정) 이승만은 이것들이 재산을 보존케 해주었다.
이 왜구들은 당연히 일제 때 조선인 착취로 번 돈이 많았을 것이다. 당연히 원자폭탄을 맞아 쑥대밭이 된 섬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것들의 후손이 지금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물론 뭔지도 모르고 돈 몇 푼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간 정신 나간 놈들도 있을 것이다.
일제라는 집단이 우익[Right]이었으니, 그 후손을 뉴라이트(New Right)이라 불러도 무방하지만, 이것들은 뉴트리아 같은 외래종이라 토착왜구라 부르는 것이 맞다.
* 히키아게샤(ひきあげしゃ)는 일본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조선, 만주, 중국, 대만 등에서 거주했다가 1945년 패망할 때 섬나라로 돌아간 왜구를 일컫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갔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첸판즈(遣返者)’라 부른다.
* 돌아가지 않은 왜구를 중국에서는 遗华日侨, 遗华日本人, 滞华日侨, 滞华日本人, 遗中日侨, 遗中日本人, 遗中日侨라 부르고, 왜구들은 中国残留日本人, 中国在留邦人이라 부른다.
현재 잔류왜구 추정치는 다음과 같다.
왜정시대 때 265만 명의 왜구가 이 땅에 와서 살았다. 해방직전 남한에 187만, 북한에 78만 정도라 한다. 이중 131만 명만 ‘히키아게샤(引揚者)’로 돌아갔다. 그중 77만 명은 북한 거주자였다. 그러면 북한에 1만 명, 남한에 133만 명이 남는다.
질문 : 1945년 한국에 살고 있던 265만 명의 일본인 중 귀국하지 않은 사람이 133만 명이었다면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숫자는 몇 명이 되는가?
답(챗 GPT) : 1945년 당시 한국에 살고 있던 265만 명의 일본인 중 133만 명이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남아 현재까지 후손을 남겼다면, 현재 그들의 후손의 수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세대 간격, 출산율, 사망률 등을 고려하여 계산할 수 있습니다.
가정: 세대 간격: 25년
출산율: 1세대 (1945년 ~ 1970년): 부부당 평균 4명
2세대 (1970년 ~ 1995년): 부부당 평균 2.5명
3세대 (1995년 ~ 2024년): 부부당 평균 1.5명
사망률: 각 세대마다 인구의 20%가 사망한다고 가정
세대별 계산:
1세대 (1945년 ~ 1970년)
시작 인구: 133만 명
출산 인구: 133만 명 / 2 = 66.5만 쌍
자녀 수: 66.5만 쌍 * 4명 = 266만 명
사망률 반영 후: 133만 명 + 266만 명 = 399만 명 → 사망률 20% 반영 = 399만 명 * 0.8 = 319.2만 명
2세대 (1970년 ~ 1995년)
시작 인구: 319.2만 명
출산 인구: 319.2만 명 / 2 = 159.6만 쌍
자녀 수: 159.6만 쌍 * 2.5명 = 399만 명
사망률 반영 후: 319.2만 명 + 399만 명 = 718.2만 명 → 사망률 20% 반영 = 718.2만 명 * 0.8 = 574.56만 명
3세대 (1995년 ~ 2024년)
시작 인구: 574.56만 명
출산 인구: 574.56만 명 / 2 = 287.28만 쌍
자녀 수: 287.28만 쌍 * 1.5명 = 430.92만 명
사망률 반영 후: 574.56만 명 + 430.92만 명 = 1005.48만 명 → 사망률 20% 반영 = 1005.48만 명 * 0.8 = 804.384만 명
최종 결과: 1945년에 한국에 남은 133만 명의 일본인이 후손을 남겼다면, 현재 약 804.4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주의사항: 이 계산은 단순화된 가정에 기반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 경제적 변화, 혼인 패턴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87
대부분 일본에서 가난한 자들이 건너와 부자가 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고 싶어 하였다. 당시 일본은 조선총독부에 공문을 보내 ‘너희들은 돌아오지 말고 조선에 남아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 공문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원래 일본에서 하층민으로서 조선에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고 일제가 이들에게 조선인 토지를 몰수해서 나눠줬다. 패망할 때까지 부를 축적하였고 재산이 엄청났다.
패망 후 거의 빈손으로 일본에 돌아가느니 한국에 남아 한국인으로 살고자 하였다. 미군정이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에 남으려고 하였다. 몽양 여운형이 일본인들을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보호해줬는데 일본에서 이를 이용하였다.
일본인 돌봄회가 그래서 생겨났고 전국에 20군데가 있었고 1년 반 동안 활동하였다. 일본인 돌봄회가 처음 시작한 사업이 한국어 강습소 만들기였다. 잔류하고자 하는 부자 일본인들을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말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또 이들이 토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대신 팔아 돈을 많이 만들어 이동하기 쉽게 해 주었다. 지방에 있는 일본인 부자들은 도시로 갔을 것이다.이는 지방에 있으면 자신들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다 알기 때문으로 신분을 숨기고 한국인으로 호적을 바꾸는 신분 세탁이 쉽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공무원들도 다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호적을 한국인으로 바뀌는 일은 쉬웠다. 요즘도 할아버지, 아버지 호적을 바꾸면 쉽게 되는데 그 당시는 더 쉬웠다. 특히 돈을 주면 더 쉽게 신분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호사카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확증하면서 “천 엔만으로 나가라고 했는데 지금 돈으로 2백만 원인데 이걸 갖고 어떻게 나가, 굉장한 부자들 많았다. 2백만 원 갖고 어떻게 나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만난 사람 중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 여러분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일본인 출신이니까 저한테 이야기했다. ‘제 아버지도 일본사람이다.’ 지금 76세 정도다. ‘아버지가 창씨개명해서 아버지가 일본인 이름으로 갖고 있었던 그 얘기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김이라는 자기 이름은 그냥 한국에서 사용한 것이다. 원래 일본 이름이었었다. 정확하게 저에게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당시) 그러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제가 물어봤어요. 당시 선생님 같은 분이 많았나요? ‘패전 당시 여섯 살 일곱 살이었기 때문에 잘 모른다.’ 알고 있어도 말을 못 하죠.”
호사카 유지 교수가 말한 이 사람은 김씨이고 현재 76세 정도로 보인다. 호적을 바꿔 성을 김씨로 하고 이름도 한국 이름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호사카 교수가 혹시 몰라 일제 치하 창씨개명한 조선인이니 아니냐고 물으니까, 절대 아니고 원래 일본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부자의 꿈을 꾸고 식민지 조선에 건너온 원래 일본인이라는 소리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안다는 것으로 보아 식민지 때 모은 재산으로 더욱 재산을 불리고 권력도 움켜쥔 인물로 보인다.박정희, 전두환 때는 오히려 숨죽이고 숨어있다가 소위 민주화되면서 정권이 5년마다 바뀌는 것을 알고 친일파 정권을 세우기 위해 일본인 극우세력과 연대하여 공작에 나섰다. “일본국가기본문제연구소”가 뉴라이트와 관련된 대표적인 일본 극우단체다.
그 결과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어 결국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재벌 창업주들 이력 보면 일제시대 부농의 자식or 아버지가 공장경영 +일본 대학 유학 이력 가진사람 많음...
정치계 학계는 훨씬 더 많겠지 일제시대 일본대학 유학 다녀와서 해방후 한국에서 교수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코스가 많다고 생각함
당시 조선인은 초등학교도 진학률이 20%
조선인은 공부를 계속 하는 경우에도 대개 소학교-고등보통학교-전문학교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데,
일본인은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 (혹은 대학예과)-대학의 길을 밟아 올라갔다.
애초에 일제시대 제대로 된 대학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음
해방후 이들은 이 경력으로 한국의 각계각층 고위층을 차지함
이승만이 못배워먹은 조선인이 아니라 당시 엘리트였던 이들을 적극 기용했고
군 고위공무원 교수 경찰...뉴라이트가 박정희보다 오히려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하는 이유가 있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876074?type=recommend
이런주장도 있으니 판단은 각자하시길 바랍니다
일본 국민 66% " 윤석열 탄핵 반대한다! "
첫댓글 충격적이고 치욕적인 일이지만ㅡ상당히 합리적인추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