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가 쓴 글에서 머슴들이 북한군에 적극 협력했다고 했는데,
그러한 내용을 더욱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를 또 찾았다.
미국 여권을 가진 최재영 목사가 북한의 황해도 신천군을 방문했을 때, 한국전쟁 무렵 신천군에서 가난한 노비와 빈농 및 소작농 같은 하층 계급들이 좌익 계열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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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ktoday.kr/?p=3802
내가 만나 본 신천 출신의 실향민들은 6.25 당시 일부 지주와 중농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의 사고 의식의 저변에는 노비와 빈농 출신들이 대부분인 좌익 계열의 주민들을 매우 업신여기고 모멸하는 정서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나에게 “그런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김일성 정부가 들어서며 시절이 바뀌니까 몇 달간 어디 가서 빨갱이 교육을 받고 와서 우리들 앞에 나타나 거들먹거리며 상전 노릇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중략).. 결국 보복이 두려우니 그들을 안 죽이면 내가 죽으니 그들을 먼저 죽였어야 마땅하다”는 말을 당당히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작농이 지주에게 내는 소작료가 수확물의 절반을 상회하였고, 심할 경우 80%에 달했기 때문에 소작농과 빈농들은 1년 내내 아등바등 죽어라 일해도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중국의 간도(지금의 연변지역) 등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양보와 타협과 배려는 전혀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방이 되자 국민(인민) 구성원의 절대 다수인 농민들의 최대 숙원이자, 사회의 최대 현안 문제로 떠오른 것은 토지개혁 문제였다. 1946년 3월에 시작된 이북의 대대적인 토지개혁은 지주들의 땅을 모두 몰수한 후에 이들을 타지로 보내서 그곳에서 땅을 재분배해 주는 ‘무상 몰수’와 ‘무상 분배 방식’이었다(알려진 대로 지주들에게 무조건 강제로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결국 좌우 대립의 단서가 됐던 토지개혁 문제는 황해도 지역의 교회를 둘로 분열시키고 말았으며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출석했던 개신교 교회 안에서는 토지 개혁 문제로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지게 됐다.
지주나 부농 출신의 신자들은 토지개혁을 적극 반대하는 반면 전답이 없는 신자들은 적극 찬성함으로써, 결국 교회가 찬반양론으로 나눠져 급기야 좌익과 우익으로 분열했다. 교회안의 좌우익 분열 현상은 점차 사회로 확대되어 사회도 좌와 우로 양분되는 사태로 확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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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선시대 노비를 다룬 어느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
조선 시대에 노비들을 저렇게 학대했으니 조선이 망했다는 소식에 노비들이 만세를 불렀다,
혹은 노비들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한테 협력했으면 조선이 망했을 것이다, 라거나 임진왜란 때 조선이 망했어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위의 문장처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노비와 빈농 소작농 같은 하층 계급들이
좌익에 적극 가담했고,
심지어 남한에서도 수십 만 명이 북한군에 협력한 부역자가 되었으니,
대한민국도 망했어야 할 나라인가?
조선 시대 노비들 가지고 조선을 욕하는 건 아주 잘도 하면서,
왜 대한민국 시절인 한국전쟁 때 노비나 머슴 같은 하층 빈민들이
북한군에 적극 협조했던 일이나
심지어 1960년에도 남한의 시골에서 부림을 당하던 머슴들이
무려 24만 명이나 되었던 사실은
다들 외면하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