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9. 촬영한 사진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원평집강소(院坪執綱所)
이곳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했던 곳.
1894년 전주화악 이후 동학농민군
전봉준 장군과 전라감사 김학진은
관민상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건물은 '백정출신 동록개'가
당시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며 헌납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신분을
해방하는 등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원평 집강소는
1882년 4칸의 초가로 지어졌으며
집강소로 활용된 이후에는 일제
강점기 금산면사무소와 원불교
종교시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폐가로 방치되었으며
현재는 철거되었다.
2014년에 문화재청은
원평 집강소의 가치를 인정하여
긴급 매입하였고 2015년 12월에
동학 농민혁명 집강소 시기 원형으로
보수정비를 완료하였다.
전라도 일대에 설치되어
농민통치를 실시했던 집강소는
지방자치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
하였다. 동학농민군들은 집강소를
바탕으로 폐정개혁을 추진하는 등
행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집강소를 통한
농민의 권력 참여는 한국근대사의
새 장을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집강소의 운영은 동학농민혁명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집강소에는 1인의 집강 아래
서기·성찰(省察) ·집사 · 동몽(童蒙) 등의
임원을 두어 각 지방의 대민
행정업무를 처리 하는 지금으로 치면
민간 행정처리 기관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집강소는 호남 지방 각 군현에 설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원평집강소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원평장터(전북 김제면 금산면)
5일장이 서는 김제 원평장터는
현대적인 교통수단이 없던 조선시대에
보행 교통의 중심지로서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전라도 각 고을의
동학 접주들이 모임을 가졌고,
전라도 대도회소(大都會所)가 있어서
1893년 3월 금구원평취회가 열렸으며,
동학농민군이 전주(全州) 입성 하루 전에
선전관 이주호(李柱鎬) 외 4명을
참수하여 혁명의 결연한 의지를 다진
곳이다.
◯학수재
학수재 위령각은
금산면 출신으로 동학농민혁명
대접주인 김덕명 장군과 원평장터에서
기미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9명의 애국지사들과
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활약한
이종희 장군, 6.25 전쟁시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한
안영권 하사 등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신 애국지사들의
우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재각과 제단이다.
▼수류성당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수류로 643
▻수류성당은 오랜 역사의 성당 건물.
영화 <보리울의 여름>촬영지
▻1889년 5월
배재성당으로 설립되었고,
1895년 성당이 금구면 배재에서
수류(현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로
이전됨과 동시에 수류성당으로
개칭되었다.
되재성당, 화산성당과 함께
호남의 3대 성당 중 하나였던
수류성당은 동양에서 가장 많은
신부와 수도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수류성당은 1907년 48칸의
웅장한 목조건물로 지어졌으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소실되었다. 현재의 수류성당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인 1959년,
교우촌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증산법종교본부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로 260
▻증산법종교는
증산교의 파벌 교단으로 강순임이
설립한 신종교이다.
강순임은 증산교를 창설한 강일순의
외동딸로 1904년 음력 1월 15일 출생하여
6세 때 아버지 강일순을 여의었다.
강순임은 34세 되던 1937년 11월
전주 남고산성에서 성부께서 주시는
불덩이를 받고 신력을 얻어 후일
증산법종교라 불리는 새 교단을
세웠다고 한다.
1909년 강증산이 39세의 나이에
죽으면서 증산교는 여러 파로 갈라져
선도교, 보천교, 미륵불교, 제화교,
태을교 등 수십 개의 독립교단이
창설되었고 한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종교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순진리회도
증산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금평저수지
주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464
둘레길 : 3.82km (1시간 30분 소요)
<1970. 2. 11일 57회 졸업생은 272명>
그 시절 앨범은 아예 없고
각반별 사진과 전체사진 2장뿐이다.
▼금산사 (金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
<금산사서적>에 의하면 600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신라 경덕왕 때인 762~766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중창하여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 법상종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고려 초 1079년에 혜덕왕사가
광교원을 설립하는 등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도량으로 만들었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암자와 건물 40여 채가 불타
버렸으나 1601년 수문대사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 완공했다.
조선 고종 때 미륵전· 대장전· 대적광
등을 보수하고 1934년 대적광전·
금강문·미륵전 등을 보수했다.
문화재로는 노주(보물 제22호)·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5층석탑(보물 제25호)·
석종(보물 제26호)· 6각 다층석탑
(보물 제27호) 등이 있다.
▲금산사 미륵전 부처님 사진촬영할 경우
벌칙 108배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어
벌칙 108배는 시간관계상 곤란하여
2023. 10. 29. 촬영한 사진으로 대체
◯영조생모 숙빈 최씨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왕의 후궁이 되고, 훗날 왕의
어머니가 되는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
사후 아들 영조로부터 '화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추증되어 화경숙빈으로
불리거나 궁호인
'육상궁(毓祥宮)'으로 불렸다.
변변치 못한 신분인 숙빈 최씨는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임신까지 하여 후궁으로 신분이
수직상승했다. 1693년(숙종 19년)
처음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으로
책봉되었고 그해 10월 6일
아들 영수(永壽)를 낳았다.
이 아들은 두 달 만에 조졸했는데,
바로 영조의 친형이다.
희빈 장씨보다 11살이 어린
숙빈 최씨가 회임하고 후궁이 되자
당시 왕비였던 희빈 장씨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떠올랐다.
그 탓에 인현왕후가 복귀되기 전까지는
고초도 많이 겪었다.
▼정읍 태인초등학교 (최폴리 모교)
◯ 정읍 태인초등학교
1911년 6월 30일 설치인가를 받아
그 해 9월 15일 태인군 군내면에
위치한 향교 부설의 사립 인명학교
(仁明學校)건물을 가교사로 하여
수업을 개시하였다. 10일 후인
9월 25일 태인공립보통학교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1911년 12월 1일 객사를 수리하여
교사로 사용하기로 하고 학교의
위치를 옮겼다.
당시 학교 규모는 교실
3칸(총 71평), 교원실 1실(8.5평),
화장실 1실(1.5평)이었다.
1912년 11월 15일 우천시 체육활동
등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강당 1칸(10.7평)을 완공
하였다.
1913년 3월 28일 태인공립보통학교
부설 태인공립간이농업학교
설치인가를 받았다.
1922년 5월 2일 수업연한을
6년제로 인가받았다.
1926년 여학생 수업연한을 6년제로
인가받았다. 1931년 9월 25일
개교 20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개교기념 100주년 행사
(2011.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