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턴절 이브에 술을 마시자던 계획은 취소된다.
송숙 선생님께서 퇴직 후 계속 기간제로 일하시는 동안 약산에 가 뵙기로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전 교장이 이미 퇴직하신 문교장까지 모셔 같이 술을 마시자 했는데,
취소하고 새해 1월에 차분히 만나자 한다.
잘 됐다. 어제 토요일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금 토엔 술을 많이 마셨다.
일요일 아침 정준이 집에서 비를 맞고 나와 김교장 부부의 차에 동승하여 광주로 돌아와
내내 골골했다. 오후에 목욕탕에 가 술독을 빼고 또 술 먹으러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
전화하니 전교장이 답해 왔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교직원공제회 이벤트로 신과 함께 예매구너 두장을 받은지라
오전에 얼른 산에 다녀오자고 맘 먹는다.
더 얼른 나서면 해 뜨기 전의 무등에서 상고대나 설화를 볼 수도 있을 테지만 나의 몸은 느리다.
9시 45분쯤 집을 나선다. 싸맷는데도 춥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가끔은 젊은 부부나 학생도 온다.
대학생같은 젊은이를 보면 내 자식 생각이 난다. 어려서부터 일찍 산에 같이 다녔어도
여전히 스스로 산에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산 따르기 싫어했던 둘째는
더러 혼자나 친구들과 지리산에도 간다. 세상 모를 일이다.
사진도 황새정에 이르러서야 한번 찍고 계속 오르막을 오른다.
정상엔 40여분이 지나 닿는다. 다리를 난간에 올려놓고 운동하는 여성이 있다.
더 지나 금당산 표지석에 서서 무등산을 또 본다.
서석대 위쪽으로는 하얗다. 나는 게으르다.
옥녀봉을 지나 원광대병원 쪽까지 걷는다.
오늘도 옥녀봉의 할머니는 나와 계신다. 막걸리를 사 먹지 않으니
미안해 고개만 숙이고 지나간다.
허릿길 3km 남짓을 부지런히 걸어 다시 풍암정에 닿는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각 12시다.
낵 또 1주일 먹을 국 끓이고 반찬 만들던 바보는 점심 차릴라고 전화하려 했다고 한다.
이삭주워 온 배추에 삼겹살을 먹자해 기훈이를 부른다.
바보의 제주행 선물 한라산 두병에 다른 약한 술을 겹치며 마시다가
영화보려고 택시를 급하게 타고 롯데시네마로 간다.
영화는 만화다. 그래도 몇 번 눈물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