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내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조각조각 흩어져 있습니다.
오직 붙들 것은 주의 말씀 밖에 없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겨 자비를 베푸소서.
주의 보혈로 헐몬산의 이슬같이, 아론의 수염에 흐르는 기름과 같이 나를 덮으소서.
내가 주의 보혈로 깨끗함을 얻으리이다.
내 영혼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도 십자가로 나아가오니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시고 죄의 몸은 멸하여 오직 거룩한 불구자로 살게 하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마 23:23-28
제목 :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조차 걸러내는 하루살이가 바로 나입니다.
23.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뿌리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율법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구나. 그러나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24. 소경 된 인도자여,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구나.
25.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면서 그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
26. 소경 된 바리새인들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27.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다. 겉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은 시체들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
28. 너희가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
* 나의 묵상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하신다.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십일조를 구별하여 바치는데 철저하였다.
박하나 회향은 양념 및 향신료를 가리키고, 근채는 뿌리채소로서 미나리과에 속하는 향기가 짙은 식물로 주로 양념이나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식물들은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는 율법(신 14:22-23)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로서 주로 십일조는 토지 소산 중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등의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것 외에도 일반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사소한 부분까지 십일조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자체를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사소한 것에는 열심을 보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간과하는 그들의 영적 무지와 남에게 보이는 데만 치중하는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했던 것은 이런 양념류나 향신료의 십일조와 비교해서라기보다 모든 율법 조항과 비교해서도 더 중요하고 우위에 있는 것이 바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다.
정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하며, 긍휼은 자비로써 불쌍한 자와 고통받는 자를 향한 친절이나 호의를 말한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써 이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영적인 것들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모습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주께서는 이들을 가리켜 소경 된 인도자라고 하시면서 이들을 보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고 말씀하신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포도주를 만들 때 거기서 모기나 각다귀가 번식한다.
이러한 곤충은 몸에 해로울 뿐 아니라 율법에서 부정하여 먹어서는 안 되는 동물로 규정하고 있다(레 11:20, 23).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건강상의 이유든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든지 포도주에 번식된 이런 종류의 곤충들은 채로 철저하게 걸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규정한 곤충들을 먹음으로써 자신이 부정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한편 낙타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큰 짐승에 속하며 이 역시 율법에 부정한 동물로 규정한다(레 11:4).
물론 낙타를 삼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과장된 표현이다.
사람이 작은 입으로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낙타를 삼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사소한 것은 작은 율법 조항들은 저촉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면서도, 정작 중요한 율법의 근본 정신인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인 정의와 이웃을 돌아보아야 하는 긍휼 그리고 믿음는 너무나 쉽게 저버리는 큰 악을 자행하는 표리부동한 그들을 책망하는 것이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게 하면서 정작 그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마치 겉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나 속은 시체의 뼈들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의롭고 멋지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을 꾸짖고 계신다.
나는 목사로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갈등의 소지가 아니다.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드릴 수 있다.
왜냐하면 목사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당연히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목사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다면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당장 성도들이 입을 댈 것이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에는 아무런 고민없이 감당하지만, 정작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에는 민감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 나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와 같다.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겉으로나 속으로 의롭다고 칭찬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나의 행동과 가르치는 말만 보고 들으면서 평가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나의 모습은 정말 깨끗하고 정결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도 과연 그렇게 보실까를 생각하면 나는 뒷골이 당길 정도로 아찔하다.
나는 표리부동하고 이중적인 모습 앞에 나 스스로가 놀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대접이며 회칠한 무덤이다.
무엇보다 나는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걸러져야 할 모기나 각다귀와 같은 하루살이의 존재다.
나는 설거지하는 씽크대의 수채구멍에 걸려 있는 음식찌꺼기와 다름 아니다.
그처럼 내 속은 탐욕과 방탕 그리고 시체의 뼈들로 가득하다.
수채구멍의 채에 걸러져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져야 할 존재가 바로 나다.
이곳저곳이 터지고 구멍나서 그곳으로 냄새나는 썩은 물들이 줄줄 새어 나온다.
나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쓸 만한 곳이 없는 완전 부패한 자이다.
내가 가야할 곳은 바로 지옥 자식들이 가야할 바로 그곳이다.
정말 끔찍하고 아찔하다.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대로 살면 되는데 나는 그러질 못한다.
어제 오후예배 때는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전했다.
하마르티아(죄의 세력), 파라바시스(범법), 파랖토마(범죄), 그리고 죄의 세력과 옛 사람 그리고 죄의 몸에 대해서 설명하고 영적 눈을 열어 이러한 죄의 세력과 죄의 유통과정을 볼 줄 알아야 죄를 이길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정작 넘어지는 나의 모습 속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본다.
심지어 그들조차 걸러내는 하루살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더 이상 내게는 소망이 없음을 고백한다.
오직 소망은 주님께만 있다.
소망 없는 나를 주님은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부끄러운 곳을 가린 무화과 옷을 벗겨주시고 친히 만드신 가죽옷을 입혀 주셨다.
그 옷은 바로 주의 옷, 그리스도의 옷이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이 나 역시 겉으로 비쳐지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행하면서도 정의는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심판으로 나에게 찾아 오셨다.
그리고 나를 심판하심이 내게 복임을 나는 안다.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나의 죄악상을 낱낱이 밝히고 드러내는 말씀의 검은 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내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심판하심을 믿는다.
나는 오늘도 말씀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
말씀은 내 심령을 도려내며 산산조각 내지만,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임을 알기에 잠잠히 나를 말씀 앞에 내어 드린다.
그리고 말씀이 메스가 되어 나의 부패하고 탐욕과 방탕으로 얼룩진 곳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그것만이 나를 살리는 길이기에 견딘다.
그러나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그 무덤 속에 거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외식, 보란 듯 한 신앙의 겉모습, 표리부동함,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속마음, 시체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드러낼 것이다.
부끄럽고 그지없이 수치스러우나 이미 나는 주의 보혈로 덮어 주셨기에 내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당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인자와 자비 그리고 긍휼이다.
나를 용납하시고 대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본다.
그 십자가, 그 험한 십자가에서 능력과 한없는 자비의 샘이 흘러 나온다.
일만 달란트의 셀 수 없는 긍휼과 자비를 받은 나는 가슴이 먹먹하여 흐르는 눈물로 주님께 나아간다.
내 영혼ㅇ[ 비춰주시는 은혜의 빛으로 나를 새롭게 해 주심을 느낀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주의 품안에서 빛되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살게 하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걸러내는 하루살이와 같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겉은 깨끗한 것 같으나 속은 탐욕과 방탕 그리고 시체의 뼈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진물이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덮으셨나이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와 같은 나의 인생에서 주님은 열쇠가 되어 주셨나이다.
이제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아 1번 생명으로 살아가오니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보다 주의 품에서 안식하게 하소서.
그 안에서 평강을 누리기 원하나이다.
그곳에 비치는 주의 영광을 빛으로 숨쉬기 원합니다.
내 영에 주의 숨결이 느껴지게 하시고 주의 호흡이 곧 나의 호흡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