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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시30;1-12절)
영국 황실의 유명한 바이얼리니스트인 피터 구르티가 스트라디바리우스 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얼린을 가지고 핀란드에서 연주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악기로 연주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흥분한 구르티는 그만 실수로 연주하는 도중에 바이얼린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바이얼린은 깨어지고 줄은 끊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실망하게 되었고 연주할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런던 시내의 어떤 악기점에서 일하는 기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한 번 그 바이얼린을 고쳐 보겠습니다.’ 기사는 온 정성을 다하여 그 바이얼린을 고쳤습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그 후 구르티는 고친 바이얼린으로 시범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새것이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온 관중을 매료시켰고 연주는 대성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과거의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과거가 깨어질 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과거보다도 더 아름답고 찬란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찬양에 탁월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훨씬 이전 그의 어린 시절부터 찬양에 익숙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나 천부적인 시적 감각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본시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의 기도를 살펴보면 다윗은 사경을 헤맬 정도의 심각한 질병이나 아니면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심한 고통을 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30:2-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치유 사역입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심은 물론 환난에서 건져주시며 궁핍한 자들을 부요하게 하여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치유의 한 영역이며 특히 영적으로 곤고한 자들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도 중요한 치유입니다. 예수님도 병자들의 병 고침과 죄 사함의 사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고 온 이스라엘을 두루 다니시며 불쌍한 자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라고 한 것은 그가 단순히 의사의 도움이나 약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치료의 역사로 인하여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러한 기적적인 치료의 역사 속에서 다윗은 자신을 결코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에 가면 당대의 유명한 단편 소설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의 흉상이 서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의 3대 단편 작가로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검은 고양이’ 입니다. 그런데 그의 흉상 아래 씌어있는 글귀가 박물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재능은 뛰어났으나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은 더욱 비참하였다.” 그는 재능과 물질과 명예는 가지고 있었으나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종말은 아주 비참하였습니다. 다윗은 대적과 원수로 인한 고통을 그의 경험을 통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목동으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나라 안과 밖으로 수많은 원수와 적들이 있었습니다. 수 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고 또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습니다. 스스로 피해를 입는가 하면 억울한 도피의 길도, 유랑의 길도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질병인들 없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죽음의 문턱까지, 음부의 권세까지 내려갔던 심각한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적 고난이나 정신적인 고난, 정치적인 고난이나 경제적인 고난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난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가장 큰 고통으로 체험한 것은 다름 아니라 죄로 인한 고통입니다. 베개가 썩도록 그는 참회하여야 했습니다. 일생을 죄에 대한 고통으로 고생합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모든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몸만 아픈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몸이 아플 때 오히려 죄책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 실패해서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 실패가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여 그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고통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다윗은 죄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 것 같은 아픈 채찍을 몸으로 느낍니다. 그는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시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하나님의 은총을 봅니다.
*시30: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일시 망각했던 교만한 자이었으나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 오히려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미하는 영광의 사람으로 변하게 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변함없이 더 큰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대적에게서 구원해 주시고 질병을 기도 중에 고쳐주시고 음부에서 끌어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그 강권적인 은혜에 대하여 깊이깊이 감격하고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절망 중에서 허덕일 때 그에게 소망을 주시고 엘리야가 고독 속에서 울 때에 조용히 찾아와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시던 하나님의 사랑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깊이 깨닫습니다. ‘내 존재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구제불능인 인간을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사랑해 주시기에 오늘 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진노는 곧 은혜이며 진노보다는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 사랑의 불변의 원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지만 그 은총은 평생토록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가 상상하는 것도 아니며 지금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니라 이미 경험한 실제요 명백한 진리였습니다. 물론 다윗에게 임한 고통은 기나긴 겨울밤과 같이 지겹고 인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인내한 후에는 찬란한 아침과 같은 기쁨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다윗은 사람들이 보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를 건져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다윗은 세 가지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첫째로--하나님의 진노의 한시성입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하십니다. 이 진노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깐입니다. 회개하는 즉시 물러갑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동시에 노여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은 결코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둘째로—은혜의 영원성을 말합니다.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화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은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신 속성으로 인간의 통회함을 보시고 그 분노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나 최종적인 열매로는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잠시 당한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으며 무한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은총이 평생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로--이 진노는 적극적이고 교육적입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통하여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가로막기도 하고 생각을 고치기도 합니다. 진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기도 합니다. 교만을 겸손으로, 게으름을 부지런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노는 하나님의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사람은 진실한 만큼 자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만큼 행복합니다. 진실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고통과 불행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미국의 브라이언 킹 박사가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여 거짓말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는데 성인은 보통 일주일에 열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 거짓말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남을 속이는 거짓말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반사회적인 것으로 속이고 속는 우리 사회의 병폐입니다.
둘째로 감상적인 거짓말이 있습니다. 내가 느낀 감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개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생각 안의 것을 현실로 말하니 거짓이 됩니다.
셋째로 과장적인 거짓말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보다 약간 보태어서 이야기합니다. 그 보탠 만큼 과장된 부분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둘러대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남한테 비난받기 싫어서, 또는 변명하기 위하여 순간적으로 둘러댑니다. 자기 위주로 순간적으로 임기응변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비밀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 있습니다. 진실하고 싶지만 비밀을 지키려다가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는 이에 해당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거짓은 하나님 앞에 용서될 수 없습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어떤 피아니스트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고 지방신문에 광고를 내는데 자기 소개를 하면서 당시의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리스트의 제자라고 소개를합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자기는 리스트를 모를 뿐 아니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가 있기 며칠 전에 리스트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오게 되었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거짓이 탄로가 나면 음악가로서 자신의 일생은 끝이 나고 맙니다. 전전긍긍합니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이제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리스트가 마을에 왔을 때 그는 용기백배하여 리스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빕니다. “제가 선생님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은 주제에 감히 당신의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리스트는 조용히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당신은 크게 잘못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얼굴을 보니 당신이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일어나서 내 앞에서 한 번 연주해 보시오.” 그는 벌벌 떨면서 리스트 앞에서 연주를 합니다. 리스트는 연주 중간 중간에 멈추게 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줍니다. 연주를 마치자 리스트가 말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당신을 가르쳤으니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당신의 연주가 끝나면 제가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관중들에게 그렇게 소개하십시오.” 며칠 후 마을의 그 연주회는 엄청난 기쁨과 환호와 영광의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에게 용서해 준다는 말 한마디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실수를 다 만회해 주어야 합니다. 리스트는 그 시골 피아니스트의 실수를 다 치유해 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영광을 누리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이런 것입니다. 다윗에게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복하고 회개하고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해 주시고 엄청난 위로와 구원과 축복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과거에 걸어온 길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겪은 고난의 원인은 자신의 자만했던 죄였음을 고백합니다.
*시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사방의 대적들을 정복하면서 자신의 힘을 과신했고 그만큼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이 약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에게 진노하셨으며 그로 인해 그는 죽음의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시30: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배반하던 그 순간부터 그를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는 다윗에게 질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그를 영영히 버리기 위함이 아니요 자만하던 그의 심령을 낮추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에 그는 보잘 것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30:8-10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그리고 그동안 찾지 않았던 여호와를 간절히 찾고 그의 긍휼에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슬픔에 잠겨 그 마음이 초밀 같이 녹았으나 하나님의 응답으로 그 심령이 회복됨으로 춤을 추듯이 기뻐하였습니다. 다윗은 굵은 베옷을 입고 자신의 자만 죄를 회개했으나 하나님은 그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옷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다윗은 확실히 깨닫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여러분! 슬픔이 어떻게 변하여 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슬퍼 통곡하면서 신나게 춤을 추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슬픔을 기쁨으로, 춤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다윗은 더 이상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의 마음속은 하나님을 찬송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시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다윗이 자만할 때에는 주를 찬송하지 아니하고 잠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과 육체가 회복된 후에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이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도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윗의 슬픔을 춤으로 바꿔주시고 다윗의 굵은 베옷을 기쁨으로 띠 띠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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