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쓰기에 대하여
/ 유기섭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 많으신데 제가 이런 좋은 발표기회를 얻게 되어 영광이면서도 부끄럽습니다. 더 좋은 수필을 쓰라는 뜻으로 받고
부족하지만 평소에 수필을 쓸 때 중요시해 왔던 것들, 좋은 수필을 쓰도록 영향을 준 요소 등을 중심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수필은 제게 있어
어쩌면 선천적으로 함께 태어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은 태생에 관한 것과 자연환경 등 저를 둘러싼 주변 배경이 글로 엮기만 하면 한 편, 한
편의 수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의 중간서열로 태어나서 위, 아래 형제들과 자갈돌 구르듯 다듬으며 자랐습니다.
유년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희생적인 교육열로 올바른 인성의 형성과정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고향은 세 고을의 물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동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조용한 산골마을 경북 영덕입니다. 일급수에서만 사는 은어가
헤엄치는 오십천이 시내를 흐르고 있습니다. 중학교까지 이런 맑고 순수한 낭만과 서정이 깃든 자연환경 속에서 지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도시의
객지생활로 이어졌고, 직장생활 역시 대도시로 이어져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평생을 몸 담아온 금융계 직업의 성질상 정확과
철두철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무미건조한 생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제가 타고난 인성은 변하지 않고 그 속을 토해낼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퇴직이라는 전환점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보통 오랜 기간 조직생활을 하다 갑자기 소속되지 않은
몸이 되면 공허하고 회의에 빠지기 쉽다고 하는 데 저에게는 그럴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 몸을 추스르고 평소 마음으로만 벼르고
있던 제2의 문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찌기 문학의 길로 예비된 신부를 만나듯 문학소녀였던 아내를 만났습니다. 결혼 당시에는 초등교사였던 아내가 퇴직 후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직장 말기에 아내가 소속된 문학단체 행사에 참관했다가 영혼이 맑고 순수한 사람들의 집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겐 새로운
세계였고, 또한 동경해오던 세계였습니다. 물론 글읽기를 좋아하던 저는 직장에 있을 때도 아침에 출근하면 신문 문화면에 게재된 시나 평론, 칼럼을
먼저 들춰보고 하루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신문에서 ‘시가 있는 아침’이나 문학관련 칼럼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늦은 시각에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여서도 자정 무렵 시작하는 심야방송의 문학관계 토론은 빠지지 않고 청취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그런 것들이 내재되어 쌓이고 쌓여서 분출의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내를 따라 간
문학행사장에서 제 가슴 속에 저장되어 오던 문학의 알갱이들이 툭툭 일어서는 용트림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고려대에서 수필강의를 하시던 오경자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교수님의 세심한 배려와 격려에 힘입어 그간
쌓였던 저의 잠재의식을 글로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후련해졌습니다. 그 후 캐나다
문학심포지움, 호주 뉴질랜드 문학세미나 때 강석호 회장님을 만나고 더욱 문학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속터미널
서점을 지나다 한권의 수필집을 발견했습니다. 여류수필가의 ‘누구나의 가슴에도 빙하는 흐른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문장이 깔끔하면서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영향에 더하여, 고인이 되신 강석호 회장님의 올곧은 수필을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강회장님의 글 중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소재로 평범하면서 접근하기 쉬운 주제와 솔직하고 담백한 글의 전개가 저의 수필을
다듬는데 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덧붙여서 강회장님의 글은 쉽고 미사여구나 어려운 전문용어가 없이 쓰시면서도 꼭 배워야할 생활철학의 굵은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쓰고자 하는 수필의 방향은 남에게 편안함을 주면서도 올바른 삶의 지혜가 담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저의 주된 이야기가 묻히지
않으면서 남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구성하고자 노력합니다. 글이 완성되면 아내인 김윤자 시인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시인인
아내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수필도 엄연한 문학장르이고, 그래서 글 속에 문학의 향기를 담아야 하고, 가능하면 시처럼 사물을 이미지화,
형상화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무생물을 생명체로 여기고, 산을 바라볼 때 아버지로, 꽃을 바라볼 때 어머니로 등 그런 글의 시각을 키우고
있습니다. 평소 강석호 회장님께서도 항상 수필도 시처럼 써야한다고 강조하셨던 교훈을 가슴에 담고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크고 작은 여러 문학단체에 가입하고 문단모임에 참석하여 부족한 문학적 소양과 감성을 함양하고, 가까운
지인들과 문학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고 격려하는 기회를 꾸준히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문학평론가들의 생각을
저의 것으로 만드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평범하며 맛나는 한편의 수필을 내놓기 위하여 많은 시간 생각을 거칩니다. 길을 걸어갈 때나 혼자
있을 때 수필 제목에 맞는 소재를 찾고 글의 골격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랜 직장생활로 부족한 인문학 부문의 의식과 지식을
보충하여 글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을 종합하면 유년기 부모님의 크신 사랑과 많은 형제의 중간서열에서
다듬어진 성장과정, 산과 물이 티없이 맑은 사고를 키워준 자연환경, 문학소녀였고 시인이 된 아내를 만난 깊은 인연, 오경자 교수님을 스승님으로
만나 많은 글을 쏟아내도록 베풀어주신 격려와 용기 , 수필문학 문단에 등단하여 강석호 회장님의 올곧은 방향으로 수필쓰기를 이끌어주신 가르침 등
이런 요소들이 오늘의 저로 키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더 좋은 수필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