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깨달음의 핵심 열쇠는 언어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걷기명상
원혜 스님, 박승옥 공저
붓다는 사람은 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 삶의 고통은 왜 생기고,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해결하기 위해 출가했다. 선정을 배워 당시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선정으로는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을 불사하는 고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고행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쑤자따라는 어린 소녀가 공양한 유미죽(우유와 쌀을 섞어 만든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붓다는 통찰 명상의 사유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의 ‘자아’를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다가 자아가 다섯 개의 개념 덩어리, 즉 오온(panca-khandha, 五蘊)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붓다는 늙어 죽음은 왜 생기는지 그 발생 원인이 되는 조건을 탐구해 나가다가 마침내 명색(名色, 빨리어 namarupa)과 식(識, 빨리어vinnana)이 상호의존하면서 끝없이 계속 언어로 된 오온의 구성물을 낳고 쌓아가고 있음(集)을 알았다. 붓다의 이런 탐구 과정은 원인이 되는 조건을 역순으로 찾아간다고 해서 12연기의 역관(逆觀)이라고 부른다.
붓다의 연기법은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함을 말한다. 그런데 무명(無明)으로부터 차례로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12연기의 행(行), 식, 명색, 입처(入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는 난해하다. 늙어 죽음은 태어남이 있기에 생기고, 존재가 있기에 태어남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취착으로 인하여 존재가 생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붓다의 연기법은 우선 용어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다. 무명(avijja), 행(sankhara), 식, 명색, 입처(ayatana), 촉phassa) 등 개념부터 요령부득이다. 빨리어로 명색은 나마루빠인데 해설자들이 이를 정신과 물질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해설자는 명색을 물질과 정신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류이고, 사물을 이름과 형태로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붓다는 나마루빠를 십이연기를 설명하는 한 단어의 주요한 개념어로 사용했다. 두 개의 개념어라면 아예 두 개의 단어로 분리해서 개념어를 사용하면 된다. 현미경처럼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분석했던 철저한 논리와 철학의 추구자 붓다가 굳이 이름을 뜻하는 나마(영어로는 name)와 색을 뜻하는 루빠를 결합해서 새로운 개념어를 쓴 까닭이 있을 것이다.
결국 명색이란 우리의 '자아'가 이름붙인(named) 사물과 사건(rupa)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언어로 구성된 자아(五蘊)가 언어로 세상을 분별하는 것, 그것이 명색이다. 결국 늙어 죽음, 태어남, 자아 등은 명색으로서 모두 언어의 개념일 뿐이다. 눈, 귀, 느낌, 생각, 신발, 사과, 코끼리, 가족, 국가, 걷기명상, 푸른 하늘. 걷는 붓다 등 한 단어 또는 여러 단어로 만들어진 개념어가 모두가 명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언어입니다. 언어야말로 붓다 깨달음을 꿰뚫어 이해하고 실천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약 4만 5천년~4만년 시기의 신석기 혁명과 인류 문명의 대도약에서부터 인간 지능의 폭발, 농업의 발견과 국가 형성, 문명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핵심 열쇠도 언어입니다. 21세기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LLM)의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 또한 언어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본디 모름’(無明)의 상태다. 아기는 열심히 온몸을 움직여 근육의 힘을 키우고, 열심히 모든 것을 행동을 통해 익히면서 세상에 적응해 나간다. 뜨거운 물이든 뱀이든 눈으로 본 사물은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고 냄새 맡으면서(行) 세상을 알아(識) 간다. 갓난아기는 어머니 아버지와 가족들, 집에 오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한다. 아이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걷기와 언어다. 대체로 생후 9~12개월에 옹알이를 하다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배우면서 아이는 이름으로 세상을 분별하기 시작한다.(名色) 언어는 훨씬 더 긴 배움의 과정이 있어야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고 언어를 구사할 줄 알게 된다.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대체로 3.5~4살부터 남과 구분되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기억이 시작되는 출발 지점도 대체로 세 살 때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붓다 깨달음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발달 덕분이다. 뇌과학과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면 붓다의 오온 개념과 무아론 등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텅 빈 공간만 나온다고 설명한다. 텅 빈 공간(空)의 세포들이 모여 사람이라는 생명체(色)가 이루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사람의 몸도 세상도 늘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상(無常)의 이치는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오늘날 뇌과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아가 몸과 뇌가 없어진 이후에도 존재하는 독립된 실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몸을 단순히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격하시킨 데카르트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아란 몸에 단단히 통합된 뇌신경 세포의 연결망과 프로세스 결과물로 본다. 자아란 언어로 구성된 서사의 집적물이다.
오온 또한 언어의 집적물이다. 문제는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사성제를 이해하고 연기법을 꿰뚫어 알고 그러면 삶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오직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 뿐인 삶의 기적 같은 현존이 오롯이 드러난다. 붓다가 탐진치(貪瞋痴)를 버릴 수 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한 것이 팔정도이다. 붓다가 열반하면서 마지막 유훈으로 남긴 말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늘 정진하라는 당부였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똑같다. 무지와 무명이다.
우리는 걸으면서도 사실은 걷고 있지 않다.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걸어가고 무의식의 흐름이 걸어가고, 근심 걱정이 걸어가고, 후회가 걸어가고, 내일의 과제가 걸어가고, 탐욕이 걸어가고, 성냄이 걸어가고, 어리석음이 걸어간다. <어떻게 걸어야 하나: 걷기명상>은 걷기 방식을 바꾸라고 권하는 가이드 책이다.
이 책은 걷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붓다의 깨달음과 명상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보통 사람들은 붓다의 깨달음을 심오하고 어려워 쉽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출가한 스님들조차 수십 년 수행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경우가 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2천 6백년 전 붓다 시대와 달리 뇌과학과 양자역학이 발달한 21세기에는 누구나 금방 붓다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붓다 깨달음의 핵심 열쇠는 언어이며 언어를 이해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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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원혜 스님은 1954년 경남 갈촌에서 태어나 1973년 공주 마곡사에서 일현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98년~2006년 봉은사 주지, 2009년~2013년 마곡사 주지를 역임했고, 지금은 충남 공주 사곡면에 있는 화림산방에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 <천년을 향기로운 생명으로>, <아름다운 생활수행>, <네 안의 부처님을 보라>, <열린 마음 열린 불교>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공저자 박승옥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학생운동과 출판문화운동, 구로 지역 노동운동을 거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 연구위원을 지냈다. 돌베개출판사 편집장,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회장,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지금은 충남 공주 사곡면에 있는 햇빛학교 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