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0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1장 33절 - 46절 - 주인으로 살려는 패역함을 버리고 종으로써 주인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의를 세우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어제 분주한 일정으로 인해 오늘은 늦게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특별히 어제는 조집사님 가정에 귀한 생명의 기쁨을 주셔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새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또한 주 안에서 강건하게 성장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의 삶에 주어진 모든 상황들은 때론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곤고함과 근심을 주기도 합니다.
원하는 상황이 아니고 계획한 상황이 아니기에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상황에서도 주님은 선한 길을 예비하시고 걷게 하심을 고백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은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시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의 악함을 지적하는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포도원은 모든 은혜를 베푸신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한다. 또한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이들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도하기에 합당한 조건들을 마련해 주셨음을 보여준다.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종들은 선지자들을 의미하며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다는 것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종들을 계속해서 보낸 주인의 모습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포로기 시대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유업이었던 가나안 땅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이에 그들은 새로운 유업을 기대했는데 이는 메시아를 통해 얻게 될 유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를 통해 얻게 될 유업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에 하늘의 유업을 이야기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임으로써 종교적 이권을 유지하는 것에 머물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는 바로 이러한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님은 악한 농부들에 대한 결과를 질문했고 사람들은 정당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23절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자신이 그들에게는 버림받는 자가 되겠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메시아로 세우실 것을 선언하신다. 건축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을 의미하며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 기둥의 네 모서리에 놓이는 기초석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세워질 교회 공동체의 머리가 되실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거부한 자들에게 심판이 주어질 것을 선포하신다. 이는 과거 하나님을 거역한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당시 예수님을 거부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향한 책망과 심판에 대한 선언을 듣고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라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 즉 여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아닌 자기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죄악과 문제점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비유를 통해 포도원 주인인 하나님과 포도원을 맡게 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그들이 가진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비유에서 등장하는 농부들은 그야말로 배은망덕하고 패역한 모습임을 보여준다.
주인에 대한 공경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 배만 채우려는 악한 본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이 바로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드러내셨지만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죄악된 본성과 그에 따른 무지와 무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는 바른 기준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즉 옳은 것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진정한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것에서 어긋난 것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무게를 재는 기준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얼마만큼의 무게가 나가는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준이 없는 삶, 진리에 대해 무지한 삶은 그 자체로 무질서를 의미하며 방종을 의미한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삶은 진리에 대한 무지, 기준이 없는 삶, 무질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들 스스로는 진리를 따른다고 생각했으며 분명한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고 질서를 지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닌 사람들의 여론이었으며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 기준이었다.
이렇게 땅에 속한 것으로는 바른 진리가 세워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땅에 속한 것으로 진리를 세우고 그 가운데 자기 이익을 따르는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질서를 지키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문제가 없으면 의로운 사람이 되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이기심이 가득하며 배타적인 모습이 가득하다.
그 이유는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세상의 선악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죄악과 문제와 거짓과 추악함을 모른다.
그래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차지하여 스스로 선이 되고 능력이 되어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진리요 옳은 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유에 나오는 악한 농부들의 모습도 동일한 모습이다.
그 비유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이 최선이며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 주인의 종들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이는 것이었다.
만약 농부들이 그들이 가꾸고 있는 밭이 자신들의 소유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도원 주인이 외부 침입자라면 농부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의 밭을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소유권을 주장하는 행위는 악한 것이 된다.
결국 기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어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악한 것이 되며 거짓이 난무하고 죽고 죽이는 관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기준이 되시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 선이 되며 의가 된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으로 드러내시고 당시 지도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러나 기준이 무너진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거부하고 멀리하게 된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의 여론, 즉 자기 기득권을 지키는 것에만 있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은 오직 탐욕과 분쟁과 시기와 패역함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인생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6~21)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반응이 사람들의 행위를 규정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것이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된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모든 인생이 선한 삶과 결과를 얻게 되고 진리를 따라 의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될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의 삶이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되고 진리를 따라 의로운 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인생의 방향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선이고 의이며 빛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자리는 의로움을 경험하게 되며 선한 열매를 맺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의 의로움과 교만과 악함과 거짓이 드러나게 됩니다.
인생의 지혜를 주셔서 모든 순간마다 주님을 인정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의로움과 선함과 온전함을 경험할 수 있는 주의 백성으로 서게 하옵소서.
포도원의 농부가 저의 모습이라는 사실도 늘 기억하고 주인의 자리에 앉지 않고 종의 자리에서 주인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일깨워 주시고 자신을 바르게 깨닫고 주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행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