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국화
한송주칼럼
국화 옆에서
가을이 깊었다. 절기의 이 길목에선 누구나 한번 쯤 무상(無常)에 사무치게 젖어들기 마련이다. 오곡은 걷히고 잎들은 물들어 조락을 기척한다. 우리도 저렇게 떠나가리라, 상념에 잠겨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다보게 된다.
그러나 가을이 가르치는 건 조락의 무상만이 아니다. 오상(傲霜)의 절개를 깨우치기도 한다. 찬 서리에 벋서서 유향을 피워 올리는 국화의 지조를 보고 세사에 지친 마음을 재우쳐 추스르는 슬기를 배우는 철이다.
봄이 매화의 것이라면 가을을 주재하는 꽃은 단연 국화이다. 누가 뭐래도 은일한 풍류를 논할진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지나칠 수가 없다. 그가 녹봉(五斗米)에 허리를 굽히다(折腰) 지쳐 전원으로 내려가서 초가집 동쪽 울타리에 국화를 심어놓고(埰菊東籬下) 남산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悠然見南山) 경개는 바로 소요군자의 최상승 기틀이다.
국화를 다른 이름으로 동리(東籬)라고 부르는 데서도 도연명의 애국을 일품으로 쳤다는 걸 알 수 있다. 국화는 본래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숙왕 때 들어온 것으로 '양화소록'이라는 책에 적혀 있다. 이때부터 우리 선조들도 국화를 옆에 두고 그 품향을 즐기면서 국화주나 국화전 등도 빚어 맛보는 세시풍속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화를 노래한 시가도 많이 생산되었다. 가사문학의 종장으로 받들리는 담양 출신 면앙정 송순의 시조도 널리 애송되는 국화송이다. "풍상이 섞어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은반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이야 꽃이온 양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하는 가구에는 연군(戀君)의 정이 뚝뚝 듣는다.
국화의 절개를 소박하면서도 지극하게 드러낸 손속으로는 이정보를 들 만하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오랜 인고 끝에 성숙한 아름다움을 이룬 누님의 자태로 국화를 읽어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현대에 들어 우리의 심금을 가장 절절히 울려준 가창일 것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한데 이 국민시를 놓고 시인이 일본의 번영을 송축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은 이가 있어 얼마 전 화제를 모았다. 그는 서정주의 친일 성향에 눈을 들이대고 이 시에 나오는 시어들이 일본의 개국, 황실의 문양, 충성의 서약 등을 상징한다는 논리로 우리의 애송시 하나를 박살냈다. 그 글을 읽어보니 그럴듯한 아귀맞춤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대체 서정시를 그런 식으로 헤집어서 염장을 쳐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고 서글퍼졌다.
어쨌건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즐겨 읊던 국화송 한 곡이 덧없이 꽃잎을 산산이 떨구며 내 마음에서 아프게 시들어 가는 상실감에 한참을 젖어있어야 했다.
이래저래 나의 가을은 도리없이 조락과 무상의 손짓으로 마감될 수 밖에는 없나 보았다.
때마침 국화 노오란 한국의 10월, 22년 전 서릿발 치던 독재 정권의 두 형제가 결국 일발 총격으로 영화를 끝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락의 절기. 세상은 또 한바퀴 무상의 수레를 돌려 그 형은 기념관을 짓는다고 시끄럽고 그 동생은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신청을 했다 해서 설왕설래이다.
역사가 무상한 건지 인생이 무상한 건지 계절이 그래서인지 허랑한 가을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어 그저 무상하다.(200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