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둔 시장안 황금분식에 김밥 20줄을 가지러 가며 채훈이를 태운다.
채훈이가 먼저 전화해 같이 가면 안되냐기에 된다고 나오라 했다.
농협 마트에서 간식을 사 재동서원으로 오니 아직 8시 20분이 채 안되었다.
간식을 늘어놓고 채훈이와 앉아 논다.
곧 차 두대가 들어와 흥양연구회원들이 내리고, 장은미 학부모는
호준이네 태우고 온다고 3분 후 도착한댄다.
모두 모이자 꽤 큰 원이 그려진다.
김대장이 구령을 붙이며 준비운동을 한다.
안전을 한번 더 강조하고 대충 일정을 말하고 재동서원을 둘러보자고 나에게 맡긴다.
아이드과 어른이 함께 있는 해설은 어렵다.
초딩 아이들은 흘려들으라 하고 칠현신기적비와 묘정비 서동사와 창효사를 말한다.
우리 문화를 어떻게 전할까?
간식을 나눠 넣은 배낭을 매고 마동으로 걷는다.
봉두산을 말해도 별 관심도 없다. 빨간 지붕이 내가 사는 곳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노란 벼가 익어있는 논길을 따라 동네로 들어서 냇가옆으로 난 농로를 걷는다.
송계명 애국지사비를 보게 한다.
고흥 북부의 안규홍 의병에 참여한 이들을 잘 모른다.
운정 송선생은 보성에 안대장, 고흥에 신대장이 있었다 하셨는데 당신도 신대장의
행적을 몰라 서훈 추천에서 빠졌다며 아쉬워 하셨다.
불과 100년 전의 일들이 까맣게 잊혀져 버렸다.
마동마을안내판을 소개하고 신여량장군 정려에 가 오래전의 번호로 맞추니 열린다.
아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김대장은 시작과 끝을 명확히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란다.
마을길을 따라 버드샘에서 잠깐 멈춘다.
아이들에겐 샘의 기억이 없다. 나는 샘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덕촌으 박씨 정려도 소개하고픈데 지나친다.
서적굴의 송씨쌍충정려에 가니 담장 아래 철망을 치며 공사중이다.
트럭이 막고 있어 옹색하게 몸을 움추려 계단으로 올라간다.
공사 관리자도 안보인다.
문도 안 열리고 해 안내팜만 읽게 하고 돌계단에 앉았닥 마을로 내려온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달리고 쫒으며 걷는다.
가온이와 기온이는 엄마 가까이에 있다.
아이들을 눈 밖에 두어도 괜찮다고 말하려다 참는다.
안사장의 지정공 유적비와 해방식수 최근 문화재가 된 김해김씨 정려도 지나친다.
자칫 자기 성씨 자랑질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10시가 다 되어가니 출발 한시간 반이 지난다.
김대장이 길 건너 농로로 내려가려는데 내가 회고정으로 이끈다.
서늘한 바람에 간식을 먹고 물도 마시라 한다.
좋은 곳이라며 모두 즐거워한다.
흥양수군길은 이순신과 관련지만 찾아다닌다.
난 그건 일부이고 우리 고흥인 조상들의 관련지는 다 알려주고 싶다.
나무에 밝은 김희라 선생이 팽나무가 아니라 검팽이라는 푸조나무라고 한다.
화수헌의 광봉이도 푸조라 했는데 난 여전히 팽이라 한다.
김대장은 참 좋은 곳이라며 걷기길이 더 풍성해질 것 같다는 표정을 한다.
푸조나무를 올려다 보고 대사간 직모공의 기적비를 앞면만 읽어준다.
한자를 띄어읽기하는 것이 공부의 초짜라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나 이쪽 어른들은 관심이 없다.
유상선 형이 한자말에 설명을 붙인다.
10시 20분에 갈을 건너 갱번으로 내려간다.
일행의 행렬이 동네 어른들한테 구경거리다.
뒷쪽엣 걷다가 밭에서 전화받으며 쇠스랑질을 하는 이는 마서 이장이시다.
인사를 하고 11월 7ㅇㄹ 서원 답사에 동네사람들 같이 오라고 한다.
뭔 사람들이냐 궁금해하신다.
김홍렬이 다녀간 길인지라 따라가는데 나도 안 가본 마을 뒷길을 잡는다.
산 아래서 멈추었다가 작은 고개를 넘어 골목을 지나 서호마을로 내려간다.
경운기에 예초기를 싣고 있는 밀짚모자 사나이는 1년 선배인 송준기다.
마을 공동체 연수에서 송상기와 올 때 본적이 있는지라 인사를 한다.
10년 전쯤 귀향하여 욱식이의 안내로 비닐하우스 농사를 한다신다.
마을공동체 일은 귀촌한 이들이 열댓명 되는데 그들이 다 도와준다고 한다.
모두 솜씨가 있어 일하기 편하고 바쁠 때는 하우스에도 와 도와준다고 한다.
그가 부럽다. 그의 인상이 선하니 마을에 들어 온 이들과도 잘 화합이 되는 모양이다.
난 번재등에서 덕촌으로 내려와 살면서 마서도 마동에도 정붙여 함께 할 친구나 어른이 없다.
영면 선배도 몇 년 전 내려와 날마다 회관에서 노느라 심심해 한다고 한다.
일행이 나무 아래 쉬고 있고 아이들은 체육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도 있다.
회관 문을 열고 영면형 있소 하고 외치니 안에서 여성이 오늘은 없소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송씨쌍충일렬려에 들어간다.
신여량장군 정려는 한칸 쌍충정려는 두 칸, 이 쌍충일렬려는 세 칸이다.
난중일기를 분석한 김대장은 진주성 싸움과 장군의 인급횟수를 설명하지만 듣는 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옆쪽 열암 송정희의 글씨인 비석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그것보다는 아직 이른 점심이지만 빵굼터에 가는 것이 더 즐겁다.
차나 커피 마시길 즐기지 않은 난 빵굼터도 여즉 들어가 보지 못했다.
연기자의 부친인 신행호 전 문중회장이 운영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은 바뀌었단다.
김밥을 먹게 하고 한줄로는 부족할 듯해 빵을 사러 들어간다.
흥양연구회원과 동강 아이들 팀이 따로 탁자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난 사진을 역기저기 찍어준다.
어제 망주에서 현래가 준 복분자를 조금 마신다.
아이들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난 밭을 지나 윗쪽 신행호 족장의 가족묘를 둘러본다.
시간 여유가 많은지 김대장도 재촉을 않는다.
입구를 나와 길 건너 몇 개의 고인돌과 무덤이 있는 산아래를 지나 작은 저수지를 한바퀴 돈다.
12시 20분을 지나 빵굼터를 나와 남양마을로 걷는다.
차들이 세게 지나가지만 다행이 인도가 넓은 편이다.
돈산정 입구의 율곡제를 지나 다시 길로 나와 남양저수지 둑을 걷는다.
고개를 지나며 방정자와 남극정에는 오르지 않고 세모재로 들어간다.
애국지사 송주흥의 표충비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자 현판을 읽어주고 그 글씨를 누군지 알려줘도 별 관심이 없다.
한시가 지나 동편버스정류장에서 재동서원으로 가겠다고 김대장등 어른들에게 인사하라 한다.
김대장은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우도까지 걸으며 다리 아픈 걸 경험해야 더 좋을텐데.
다리가 아프기도 전에 마친다.
돌고개를 넘어 재동서원에 와 채훈이를 호준이네 집앞에 태워다 준다.
하연이는 동생과 논다고 가온 엄마가 유둔에 데려다 준다해 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