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糟糠之妻)
오 영 환
내가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랄 때의 기억이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날, 짧은 해는 하루를 마감이라도 하듯 서서히 몸을 숨긴다. 동네의 초가지붕 굴뚝에서는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우리 집 사랑방 큰솥에서는 아버지께서 소죽을 쑤기 시작한다. 나무 장작을 때니 방은 금방 따듯해진다. 두어 시간 후 동네 어른들이 우리 집 사랑방으로 마실 을 온다. 새끼를 꼬는 사람, 긴 곰방대로 풍년초 담배를 피우는 노인, 그리고 구수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때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씀 중에 우리 동네에 사는 아무개는 자기 ‘조강지처를 버렸다’라고 한다. 당시 나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다.
조강지처(糟糠之妻)란 쌀겨나 지게미와 같은 거친 식사로 끼니를 이어가며 어려운 시절을 같이 살아온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옛날 중국의 후한(後漢)시대에 송홍전(宋弘傳)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의 어른들은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이라는 말을 했다. 비록 못생기고 보잘것없는 조강지처이지만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부부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혼을 하는 건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진다. 황혼기의 이혼 건수도 덩달아 늘어난다. 통계에 의하면 2013년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는 11만 5200여건으로 하루 평균 316쌍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1999년 IMF 시기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혼율이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혼의 사유를 보면 부부간의 성격 차이가 45.2%로 과반을 차지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와 70대는 경제적 어려움을, 30-40대는 배우자의 외도를, 50-60 대는 배우자의 폭력을 이유로 이혼을 많이 한다.
요즈음 대다 수의 젊은이들은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권장 사항이며 나아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40대를 훌쩍 넘은 미혼의 젊은이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간다. 부모님의 마음을 애태운다. 어쩌다 걱정 스런 말을 하면 ‘내 인생 내가 살 테니 걱정말라’고 한다. 해가 바뀌어 또다시 이야기하면 이땐 짜증을 낸다. 부모가 되었던 형제가 되었던 간섭받고 사는 것을 싫어한다.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환경은 멀리하고 오직 나 혼자만의 편리한 삶을 추구한다. 이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명절을 쇠러간다. 명절 당일 깜깜한 새벽 4시에 일어나 이것저것 챙긴다. 장거리 고속도로 운전은 자신이 없어 꼭 아들이 운전한다. 잠에서 덜 깬 손자를 등에 업고 승용차에 태운다. 두어 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하면 훤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모처럼 큰 형수님 댁에 가족이 모여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조카며느리들은 바쁘게 제례음식을 준비한다. 모두 열대여섯 명의 가족이 모인 것이다. 모두가 부부의 연(緣)으로 함께 제례에 참여한 것이다.
이때 먁내 조카딸은 큰 형수님 곁에서 홀로 서 있다. 나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한다. 조카딸은 50 이 훌쩍 넘도록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산다. 시댁이 없으니 어머니 집으로 명절을 쇠러 온 것이다. 답답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남들은 다하는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고 있으니․ ․ ․ 하고 혼잣말을 해본다. 오랜만에 조카딸의 얼굴을 곁에서 바라보니 아릿다운 여성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마에 잔주름이 조금 보인다. 세월은 못 속이는 것 같다. 마치 혼자만의 삶을 살아온 인생 계급장 같다. 마음이 답답하여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다. 오늘따라 조카딸이 안쓰러워 보인다. 지난날 어쩌다 조카딸에게 혼인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몸을 숨긴다. 낳아준 큰 형수님 마음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세월이 수십 년 지난 지금 나도, 조카딸도, 큰 형수님도, 이제는 당연한 듯 서로 마주 보며 산다. 혼자 사는 조카딸의 삶이 자신의 행복 추구권을 내세우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얼마 전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40대 후반의 중년 부인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며 신세 한탄을 한다. 남편이 바람이 나 며칠째 집을 안 들어오고 생활비도 안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린 것이다. 힘은 들지만 식당일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근근덕신(勤勤德臣) 겨우 산다고 한다.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하며 별에 별 생각이 다 든 다고 한다. 하루빨리 보기 싫은 남편과 헤어지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년 부인은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얼굴에서는 가느다란 눈물이 흐른다. 나도 곁에서 눈물이 핑 돈다. 수건을 가져와 중년 부인의 눈물을 닦아준다. 손등을 바라보니 거친 모습이 역력했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고생의 흔적이다. 순간 우리 집은 무언의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나는 말문을 연다. 이번 한 번만 남편을 용서해 주라고 했다. 다시는 외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남편 자필로 쓰고 공증을 받으라고 했다. 어길 경우 법의 심판을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집을 나서는 중년 부인의 어두웠던 표정은 조금 사라진 듯 밝은 표정이다. 문밖까지 나가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을 했다.
며칠이 지난 후 서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중년 부인의 목소리다. 첫 마디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상의한대로 남편을 용서해주고 각서를 받아 지금은 부부가 화목하게 잘 산다고 한다. 자녀들도 가정의 화목에 반가워하며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한다. 나는 이때 ‘잘하셨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가정에 행복이 찾아왔네요.’ 하며 축하와 기쁨의 말씀을 드렸다.
법을 이용하여 한 가정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헤어지게 하는 아픔을 주는 것 보다, 부부지간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화합하여 가정을 아물게 하는 도움을 준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이 세상 누구에게나 소중한 인연이다. 처음 만난 시절의 애틋한 사랑으로 일평생을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요즈음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인생의 종착역인 무덤에 가는 날까지 부부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의지해서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으면 한다.
프로필 사진 및 약력
오 영 환
약 력
◆ 청주교육대학교 졸업
◆ (전) 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청주봉정초등학교 교장
◆ (현) 청주대성고등학교 생활지도사
◆ 효동문학상, 제5회 충북대학교 수필문학상
◆ 푸른솔문학 신인문학상 (수필가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