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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멍에, 나쁜 멍에
마11장 28절 ~ 30절
1. 태풍카눈 회복을 위한 기도
지난 주간에 우리나라에 폭염과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서 전국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난달에 대구에 편입된 군위군에서 피해가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국제적인 행사인 청소년들의 올림픽과 같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 전세계 청소년들 4-5만명이 참가한 행사에 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엄청난 국제적인 행사를 치러놓고 잘못하면 행사를 망쳐 국가적인 망신만 당하지않겠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무사고 없이 어제 서울 잠실올림픽행사장에서 마무리를 잘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교회도 이번에 카눈 태풍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와서 보훈병원 앞그랑에 물이 넘쳐나서 보훈병원에서 사거리까지 흑탕물과 온갖 쓰레기들이 쏟아져 경찰들이 병원쪽으로 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공사를 했습니다. 우리교회에 본당과 계단에 물이 새어 들어와서 한 참 물퍼내고 청소하고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방역을 한다고 본당 에어콘을 틀어보니 전기가 누전되어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그것도 토요일 저녁이라 마땅히 연락할 곳도 없고 콘 작동이 안되면 내일 당장 주일예배에 지장이 많은데 어떡하나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스트레가 되었습니다. 여러곳에 연락을 하다가 상인동 쪽에 전기공사 업체를 수소문해서 연락을 했습니다. 이분이 전화를 받고 아는 지인들끼리 저녁 약속을 하고 밥상에 막 앉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평화교회는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신세를 졌는데 저녁모임을 포기하고 장비를 챙겨서 촐장을 왔습니다. 예전에 우리교회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사, 찬양대 회식으로 많이 갔던 수밭마을 통나무오리식당 아들이었습니다. 처음 식당을 개업했을 때 평화교회에 자주와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교회에 여러모로 많은 신세를 졌다고 감사해하면서 정성껏 수리해 주었습니다. 전기를 점검해보니 마침 큰 고장 없고 차단기가 고장나서 교환하니 수리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쉬원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수리를 못했으면 오늘 땀흘리면서 불편한 가운 예배를 드릴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셨습니다.
2, 현대인의 스트레스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매우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질병의 증세는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 알코올중독, 각종 암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모든 유형의 현대인들의 질병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80% 이상의 원인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각종 취미활동, 사교활동, 여행, 등산, 에어로빅 혹은 다양한 신체적인 운동의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누구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병이 온다'는 것은 현대의학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인간은 근본적인 치유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병원 문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병원이나, 의사 선생님이나, 병원과 의료에 필요한 약품들은 우리들에게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다 더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의사 한 분을 보내주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께로 나와서 참된 쉼을 얻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 정치와 경제적인 여러 혼란 속에서 시달리고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여러분, 다 내게로 오십시오. 나는 여러분들에게 쉼을 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천년 전 유대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한 약속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기쁜 소식 (Good News)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음이라고 말하고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교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3. 좋은 멍에, 나쁜 멍에
성경에 보면 ‘멍에’라는 단어가 제법 많이 나옵니다. 제가 찾아보니 대략 50번 정도가 나옵니다. 젊은 사람들은 ‘멍에’라는 말을 잘 모를 겁니다. 그리고 나이가 제법 있으신 분들도 시골에서 농사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멍에’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멍에’라는 말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니 예수님도 ‘멍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시고, 멍에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나 교훈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멍에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멍에의 뜻을 살펴봅시다. 멍에란 소나 나귀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둥그렇게 생긴 막대입니다. 이 멍에는 나쁜 의미도 있고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나쁜 의미의 멍에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죄의 멍에, 가난의 멍에, 질병의 멍에, 사탄의 멍에, 무거운 세금의 멍에, 강제 노동의 멍에, 술의 멍에, 마약의 멍에, 도박의 멍에... 등등입니다. 반면 좋은 의미의 멍에도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멍에란 하나님의 뜻이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는 십자가나, 고난, 희생, 헌신, 노력, 책임감, 사명... 등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믿는 자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안 믿는 불신자보다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신자보다 바르게 살아야 하는 부담감이 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개인적인 자유가 속박당하는 겁니다.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싶어도 성경이 가로막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그리고 주일 날 예배 안 드리고 놀러가고 싶은데 마음이 영- 찝찝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멍에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멍에는 있습니다. 부모가 되고, 아내나 남편이 되면 멍에가 씌워집니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어도 일을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합니다. 여성의 경우 매일 식탁을 차립니다. 청소나 빨래 등 여러 가지 집안 살림을 합니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 돌보느라고 자기를 가꿀 틈도 없습니다. 역시 아내라는 멍에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27-28 말씀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한국 속담에도 이런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예수믿는 성도들에게 멍에를 씌워주셨습니다. 성도, 집사, 권사, 장로,직분자라고하는 멍애를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자유가 속박당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주일날 예배를 안 드리거나 혹은 일찍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좀 세상적으로 지냈었는데, 이제는 이런 직분을 맡다보니 주일에 어디를 갈 수가 없습니다. 아침부터 늦게까지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분은 자기는 나중에 죽을 때가 되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일찍부터 하나님 믿으면 믿는 자의 멍에가 씌워져서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불편하다는 겁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기도회 등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다 보니 세상 친구들 만날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술 마실 자리도 없어지고, 술친구들도 자연히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대신 주님이 주신 멍에가 생겼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서 맡겨주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멍에를 일찍부터 씌워주시기를 원합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멍에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9-30)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예수님 믿지 않고 세상적으로 사는 것보다 인생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겠느냐?”(고후6:14) 농부가 밭이나 논을 갈기 위해 소에게 멍에를 메울 때 종종 두 마리를 엮어서 같이 멍에를 메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 마리가 혼자 멍에를 메고 일하는 것보다 몇 배의 힘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와 소가 아닌 소와 나귀를 묶어서 멍에를 메우면 소와 나귀가 힘과 성격이 서로 다르기에 도리어 힘이 들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와 믿는 자가 같이 엮여서 일을 하다 보면 서로가 힘들 수 있습니다. 자칫 믿는 자가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적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고로 이런 면에서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주님의 멍에를 메는 자에게 마음의 쉼과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단의 무거운 멍에, 죄의 무거운 멍에, 저주의 나쁜 멍에를 벗겨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8:4 말씀입니다.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애급의 멍에를 꺾으리라.”(겔30:18)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14:25)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각자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지고 살면서 천국에 갈래? 아니면 주님을 떠나서 사단의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다가 지옥에 끌려갈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무슨 멍에가 더 쉽고 가벼운 멍엔지 잘 감이 오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혹시 “목사님, 인생을 좀 더 살면서 나중에 결정하면 안 될까요?” 하고 말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젊었을 때에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팽개치고 살다가 어느덧 뒤돌아보면 그만 인생이 허무하게 많이 지나간 것을 느끼며 뼈저리게 후회하게 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때요,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4. 에수님의 초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이 짊어지고 다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정체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태초부터 계셨기 때문에 그는 인생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수고'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입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죄를 범했을 때부터 수고가 찾아 왔습니다. 범죄한 첫 번째 사람 하와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부터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범죄한 첫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종신토록 땀을 흘리며 수고할 것이라."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 즉 예수가 오신다는 사실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할 것이다" 질고라는 말은 질병, 고통 이런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질병,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고 우리에게는 치유와 안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 앞에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이 또 하나 내 인생의 짐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 당시의 대표적인 종교였던 바리새 종교를 향해서 "저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 위에 지워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종교를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목회를 하면서도 예수 만나지 못하고, 예수 체험하지 못하고, 교회생활을 하면 교회생활 하는 것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사람, 예수를 체험한 사람에게는 교회생활이 자유의 표현입니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해서 자기 가정의 종교를 버리고 떠나 젊은 날 인생의 긴 방황 끝에 돌아와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쓴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의 얘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했지만 젊은 나이에 신앙을 떠났습니다.그러나 그가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그는 신앙론이란 글을 쓰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나간 55년간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의 최초의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18세 되던 나이에 내 친구는 나에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의 종교, 가족의 종교인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종교는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다.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는 다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은 것이다." 성도 여러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4. 예수님께 와서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냥 배우라고 하지 않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오해할까봐 친절하게 30절에 보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내 멍에는 쉽다"라는 단어를 더 정확하게 옮기면 "내 멍에는 편리하다" "잘 맞는다" 그런 뜻입니다. 멍에는 본래 소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도 농사가 있고, 소가 있고, 멍에를 만듭니다. 그리고 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멍에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멍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쉼을 얻을 것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그리고 내 짐은 가벼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쉽다’는 ‘유익한, 가치 있는’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전체의 의미는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잡고 가는 것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서4:3에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는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는 동역자를 이야기합니다. 운명 공동체인 것입니다. 같이 멍에를 메고 복음 전파에 힘쓴 동역자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멍에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 가장 가치가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복음 전파입니다. 마태복음27:32 말씀에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채찍으로 맞고 매도 맞고 피 흘리며 겨우 겨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군병이 지나가는 구레나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가복음15:21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시몬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소개합니다. 루포에 대하여는 로마서 16:13에 기록되기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라고 사도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루포의 집안은 신실한 믿음의 가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왔다가 십자가를 대신 진 루포의 아버지. 성경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의지로, 스스로 내 멍에를 내려 놓지 않으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는 함께 가십니다. 절대 나 혼자 지고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전서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갈 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멍에를 담당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벼움 멍에를 메고, 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멍에를 메시고 함께 가신다고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 만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붙잡고 가기 때문에,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29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내 짐을 지고 가십니다. 주님의 멍에를 지고 끝까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행복과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분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우리 곁에 다가오시면서 오늘 이렇게 약속하시는 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여 내게로 오십시오. 예수님주신 멍에는 쉽고,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그 짐은 가볍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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