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없는 결혼식, 주례사는 양가 부모님의 덕담으로
가을을 실감케 하는 날씨이다.
더불어 친지들이 보내오는 결혼 청첩이 늘어난 것도 실감케 하는 계절이다.
지난 토요일(북한은 9.9절이었지만 조용했음)
마누라와 함께 예식장에 다녀 왔다.
가짓수만 많고 정작 먹을 것 없는 뷔페 상차림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이것저것 먹었는데 속이 편치 않았다.
잘 끓인 갈비탕과 잔치국수 한 그릇이 그리웠다.
결혼은 경사(慶事) 중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주례였다.
주례는 말 그대로 ‘결혼식을 주재하여 진행하는 사람’이다.
누구를 주례로 모실까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한 말씀 하는 것이라서 꺼리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망가나 고위 인사를 모셔 은근히 결혼식의 아우라를 더하려는 경우엔
문제가 더 까다롭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일때 교수님들을 주례로 모시고 동료나 후배 결혼식에
사회를 많이 보았던 관계로 예비 신랑이 어떤 교수님을 주례를 모시고자 할 때는 나에게
먼저 청탁(?)하였던 일도 있었다.
수많은 결혼식을 보면서 느낀 점은 주례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례의 자격은 나이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한 경우도 아니며,
정치 권력을 가져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략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결혼을 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때는 천주교 신부님들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특수한 경우이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둘째, 이혼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경우에 사별은 예외로 한다.
셋째, 자식을 낳고 혼인을 시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신랑 신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주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보았던 최악의 주례는 신랑 신부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표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틀에 박힌 주례사를 하는 정치인이다.
나는 대학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들에게 주례 부탁을 받았을 땐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과연 내가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나
싶어서였다.
그래서 다른 은사님이나 직장의 상사를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하였지만,
제자의 답이 신통방통했다. “저를 잘 모르면서 의례적인 덕담이나 해주는 분들보다
교수님의 축하를 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원칙을 굽힐 수 없어 중간선에서 타협을 하곤 했다.
나의 연로한 지도교수님이나 선배 교수님을 내 대신 주례로 모시는 방식이다.
이러한 철통같은 나의 원칙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은 오사회 모임에서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S친구이다.
무엇보다 검정고시 동기에다 남편과 사별하고 억세게 가장 노릇하며 자식들을 올곧게
키웠기에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주례이다.
주례라면 누구나 자기가 주례를 서 준 신랑 신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렇게 원만하지 못하다고 한다.
생각이 여러 가지로 교차한다.
이제 ‘주례없는 결혼식’이 늘고 있어 신랑 신부가 주례를 모시는 일도, 주례는 자기가
주례를 서 준 신랑 신부가 잘 살고 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의 덕담으로 주례사를 대신하는 결혼식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부분 ‘깨인’ 신랑 신부의 건강한 사고방식 때문인 듯하다.
하객은 물론 신랑 신부도 귀담아 듣지 않는 주례사보다는 이 편이 훨씬 진솔해서
보기 좋다.
그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나는 둘째 딸에게 “너희들 결혼식은
주례없이 한다.”고 하였더니 의외로 좋아하는 표정이다.
주례를 누구를 세우느냐에 따라 집안의 아우라가 달라지던 시절,
주례를 구하지 못해서 발버둥을 치고 구하지 못하면 예식장에 부탁해서 전문 주례를
돈 주고 샀던 일이 어제 같은데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