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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세파에 지친 나그네를 따뜻이 환대하는 우리 교회!
각종 진귀한 예술품과 문화유산을 간직한 고색창연한 유럽의 대성당들을 방문하며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많은 성당들은 그저 수많은 관광객들이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이지, 주님의 은혜로운 복음이 우렁차게 선포되는 장소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주일 대미사가 거행되는데, 미사 참례자 수는 손을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조만간 우리 한국 교회에 닥쳐올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유럽 교회는 성당 여기 저기 설치된 성화며 값진 예술품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우리 성당들은 그럴 상황도 아니니, 참으로 암담할 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말씀 한 마디가 더욱 가슴을 찌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오늘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 제맛을 잃어버린 소금 같은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됫박으로 덮어버린 등경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지나친 폐쇄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순례성, 개방성, 유연성, 연대성...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어떤 성당은 세상과의 경계가 되는 담을 너무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어떤 성당은 마치 대단한 성채, 단단한 철옹성 같아서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떤 성당은 그 구성원들이 다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찾아온 나그네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지상의 나그네를 환대하는 집이 교회가 아닐까요? 목말라하는 나그네에게 시원한 물 한잔과 쉼터를 제공하는 곳이 교회가 아닐까요? 세상과의 전투에서 상처 입은 부상병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야전병원이나 응급실이 교회가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들과 날개가 부러진 사람들과 기가 꺾인 사람들이 원 없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의 에너지 충전소가 교회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고립되고 폐쇄된 교회에서 빨리 걸어 나와야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만의 교회, 끼리끼리 교회를 고집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세상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을 가슴 쳐야겠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 그 누구든 스스럼없이 찾아올 수 있는 열린 교회, 산 위의 등불 같은 우리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매력적인 교회로 탈바꿈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돌아오게 할 수 있겠는지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빛과 소금이 되려 하지 않을 때 무엇이 되는지 안다면?
병원비와 교육비, 해외 유학 경비까지 공짜인데 국가에 내야 하는 세금도 없으며 결혼하는 부부들에게는 집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매년 생활비까지 1억 원씩 나눠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 나라에 살면 정말 행복할까요?
과거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면서 이와 같은 혜택을 국민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결국 지금은 파산하여 호주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나우루 공화국’입니다.
서울의 용산구 정도의 크기인 호주 근처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엔 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1798년 유럽인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이 섬나라는 다른 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이 이 섬나라를 발견하여 무기와 술을 제공하자 이들은 서로 작은 땅을 차지하고자 싸웠고 인구가 3만 명에서 1/3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나우루 공화국이 갑자기 잘살게 된 것은 바로 새 똥 덕분이었습니다.
앨버트로스라는 새 똥이 쌓여서 만들어진 인광석이라는 물질이 나우루섬 전체를 뒤덮고 있었는데, 인광석은 질 좋은 화학비료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어서 1970년부터 인광석을 수출하여
큰돈을 벌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1980년부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이 만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나우루 국민이 얼마나 사치스럽게 살았냐면,
일반인들이 개인 전용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 같이 쇼핑과 외식을 하러 갔고
심지어 도로도 별로 없는데 고급 차를 타다 기름이 떨어지면 그냥 차를 버리고 새 차를 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에 주유소는 29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물건을 들고나와 차에 실어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나우루에서 일하는 공무원까지 모두 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천국이 따로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몰락은 금방 찾아왔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인광석 광산의 채굴량이 감소하였고 머지않아 인광석이 바닥날 참이었습니다.
정부는 바닷가에 항구를 만들어 국민이 일하게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나우루 국민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우루 국민은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바닷가에서 해수욕이나 즐기고 있었습니다.
일할 사람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인광석 채굴로 사라졌습니다.
물론 장년층이 아니면 농사짓는 법도 고기 잡는 법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나우루에서는 수입산 가공식품만 먹는다고 합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인광석 채굴량을 줄이고 여러 사업도 시도해 보았지만,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국민의 소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나우루 정부도 부정부패가 워낙 심해서 정부 예산을 개인들이 수시로 횡령하였으며 마구잡이로 투자해 줄줄이 말아먹었습니다.
경제부 장관도 자신은 경제에 대한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였습니다.
해외 부동산을 사들여 임대업을 하고 스위스처럼 은행을 만들어 검은돈을 은닉하는 조세 회피처
사업도 했지만, 9·11 테러 이후 나우루는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되어 그나마 들어오던 돈도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호주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빛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고 소금은 자신을 녹여 세상에 맛을 줍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은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왜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짐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라사 지방에서 ‘군대’라는 마귀 들린 이를 치유한 적이 있으십니다.
그 마귀들은 자신들을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허락하십니다.
돼지 떼는 스스로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유의지로 세상을 밝히고 세상에 맛을 주는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이끄는 삶이 바로 이런 삶입니다.
남이 주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는 삶입니다. 나우루 공화국 사람들은 천국을 돼지 떼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망했습니다.
돼지 떼는 자신들이 공동체를 위해 어떤 희생도 하지 않기에 공동체 의식도 없습니다.
군대지만 떼거지지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떠한 공동체도 유지되려면 각자가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2022년 5월 10일 미국 플로리다 주 롤린스 칼리지 졸업식장에는 4.0 만점에 4.0 졸업 평점을 받은 미국 여대생의 졸업 연설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5분 30초 동안 침묵을 지켰고 한마디 없이 그녀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졸업생들은 모두 일어나 손뼉을 쳤습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이 여학생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봉커’입니다. 그녀는 언어능력을 상실한 자폐인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아주 호기심 많고 마음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말도 재잘재잘하며 활력이 넘쳤습니다.
적어도 15개월 무렵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만에 모든 게 변해버렸습니다. 이름을 불러도 못 알아듣고, 입을 다물고 바닥에 머리를 찧곤 했습니다.
부모로서는 보기 무서웠고 그녀를 잃은 것 같았습니다.
여섯 살까지 아이가 뭘 느끼는지 뭘 원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분노가 끓어오를 때 자기 손으로 자기 얼굴을 때렸습니다.
부모로서 이런 아이를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보다 큰 고통이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엄마는 자폐아의 의사 표현을 도와준다는 사람을 만나 엘리자베스에게 타이핑 교육을 해보았습니다.
한 달에 일주일씩 다섯 달을 배우고 그녀가 처음 표현한 단어는 ‘AGONY’(괴롭다)였습니다.
여섯 살 아이는 자폐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그녀는 자폐 때문에 무엇이 가장 괴로운지 표현하라는 말에 “NOT TALKING”(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정상적으로 이어 나간 그녀는 대학에서 4.0 만점을 받아 연설하게 된 것입니다.
한 글자씩 쳐서 음성변환을 한 그녀의 연설을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자폐증 증상으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또 신경운동의 문제로 혼자서는 양말을 신지도,
셔츠 단추를 잠그지도 못하죠.
저는 자폐인이지만, 운 좋게도 글씨를 통해 의사 전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침묵의 감옥에서 벗어나 저의 영웅 헬렌 켈러 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과 마찬가지로 저도 꿈이 있죠. 그것은 모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 세계 언어 장애 자폐인이 3,1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침묵의 감옥에 갇혀 있죠.
저는 그들이 침묵의 고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길을 개척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목소리를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2차 대전 때 나치 암호를 해독했던 알란 튜링을 인용하며 연설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을 해내는 사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됩시다. 빛이 됩시다.
‘빛이 있으라!’ 감사합니다.”
[출처: ‘4.0 만점에 4.0! 완벽한 졸업 평점을 받은 미국 여대생의 놀라운 비밀’, 유츄브 채널, ‘마따 TV’]
디팩 초프라는 자녀들에게 “먹고 사는 거는 아버지가 다 책임질 테니까 너희는 이웃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지만 생각하며 살아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말합니다.
“저는 돈 버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아닌 어떻게 하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을 소진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는 마음에서 우리는 천국의 백성 자격이 있음을 증명받습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소금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음식을 맛나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도 방부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자신이 지닌 참맛을 잃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소금은 사도들이 전해준 말씀으로 가득 찬, 참된 지혜로 가득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마음을 소금에 비유하는 것은 소금의 좋은 맛과 신선함 때문이다.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13절) 우리가 믿음과 지혜를 버린다면, 우리는 당장에 이단에 빠지거나 믿지 않는 이들의 어리석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악의 세력에 넘어가 제맛을 잃고 믿음의 은총을 잃어버린 신앙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세상의 빛”(14절). 주님은 태양이시고 이제 빛줄기 같은 제자들을 통하여 온 세상에 당신 지혜의 빛을 쏟아 주셨다. 우리는 진리의 빛을 보여줌으로써 오류의 어둠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달아나게 해야 한다. 십자가 위에 매달린 그 등불, 빛은 교회 안에 머무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신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15절) 등불은 아버지와 아들이 켜고, 그 등불은 말씀이다. 말씀의 등불은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길을 알려주도록 빛을 내는 것이다. 등경은 생명의 말씀을 지닌 교회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지닌 모든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함지라는 것은 악덕으로 등불이라는 덕을 감추는 것인데, 빛을 피해 어둠으로 숨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한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16절). 이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 남이 보더라도,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행이 알려지도록 두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이는 사람들이 우리 신앙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착한 행실을 삶을 보도록, 빛나고 그들을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캐나다 강연자 톰 우젝이 했던 ‘마시멜로 챌린지’가 있습니다. 이 챌린지는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지요. 그 챌린지는 이렇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스파게티 면과 실, 테이프를 이용해서 18분 안에 탑을 최대한 높게 쌓고 맨 위에 마시멜로를 꽂는 게임입니다. 그 팀은 대기업 경영자 팀, 변호사 팀, MBA 학생 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치원생 팀이 있었습니다. 이 중 어느 그룹이 가장 좋은 성적을 냈을까요?
놀랍게도 유치원생 팀이 가장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다른 팀은 시작하면서 먼저 계획을 세우거나 전략을 짜면서 제한된 시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생은 마시멜로를 맨 위에 올려놓고 그에 맞춰서 탑을 쌓았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쌓은 것입니다. 도중에 탑이 무너지면 다시 쌓았을 뿐입니다. 일단 시도하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은 원하는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지요. 신앙생활의 변화도 생각만, 계획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최종 목표인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냥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염려와 걱정만 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과 빛은 이 세상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소금은 예부터 아주 귀하게 여겨서 고대와 중세에는 화폐나 임금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임금을 받는 이들을 흔히 ‘샐러리맨’이라고 하는데, ‘샐러리’라는 말이 소금(이탈리아어)에서 나왔을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또한 음식의 맛을 낼 뿐 아니라 썩는 것을 막아줍니다. 바다의 염분은 모든 것을 정화해 주고 생명의 원천으로 돌려주기에 중요합니다.
빛도 중요합니다. 어둠을 환하게 밝혀줘서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잘 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제대로 보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빛 역시 소금과 같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즉,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 또한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아버지를 세상이 찬양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납니다.
오늘의 명언: 낱말 하나가 삶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 말은 바로 사랑이다(소포클레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빛과 소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고,
가치가 있는 것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녹아들고,
불을 밝히고 자신을 내어주면서
기뻐하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우리가 자기 안에 갇혀
사람들과 삶을 나누지 않고
차단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본질적 삶이 아닙니다.
소금과 빛은 보존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교회의 복음 선포가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빛이 세상을 비추고,
소금이 음식 안에서 녹을 수 있을 때
복음 정신은 내 안에서 살아있게 되고
주님 강생의 신비는 계속 이어지게 되며
창조가 지속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기쁨과 희망의 빛을 밝히고
소금이 되어 삶 안에서 녹을 수 있기를 청합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께는 늘“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18-22
형제 여러분, 18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